아침 공기가 조금 달랐다.
연화가의 정원은 여전히 조용했고, 햇빛도 어제와 비슷했는데....
태형만이 그 차이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이상하네.”
“뭐가요?”
하늘은 태형 옆에서 커피를 들고 있었다.
태형은 잠시 손을 내려다봤다.
“어제까진… 그냥 하루하루 버티는 느낌이었거든요.
당황스러운 사건도 있었고 ㅎ”
“오늘은요?”
“…오늘은.”
태형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에요.”
하늘은 그 말을 곱씹듯 바라봤다.
“…기억 돌아온 영향이에요?”
“아마도요?”
어제의 순간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페스타의 카센...
그리고,
인간 세계에서 1년을 버텨야 하는 임무까지
버티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
태형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 씨.”
“네?”
“저… 시험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하늘은 잠시 멈칫했다.
“… 엥? 시험이요? 무슨.. 시험?”
“네. 그냥 살아보는 게 아니라…”
태형은 말을 고르듯 천천히 이어갔다.
“사람으로서, 선택하는 시험.”
하늘은 아무 말 없이 태형을 봤다.
“…??? 저 하나도 이해가 안 가는디요 -_-”
"ㅎㅎ 저 기억 조금 돌아왔다고 했잖아요, 제가 원래 연화가에서
막내로서 해야 할 책무가.. 기억이 났어요"
"오! 뭔가요 ?!"
“오늘부터...”
태형은 작게 웃었다.
“좀 제대로 살아보는 것?”
“…어떻게요?”
“제가 오늘 가자는 곳 한 번 같이 가시죠”
그날 오전,
태형은 비서의 안내를 받아 연화 그룹 계열 병원으로 향했다.
“… 막내 도련님 오시지도 않다가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이람?!”
“도련님께서 직접 요청하셨다고 하네요...”
"아 망했어 ㅠㅠ 도련님 오시기 전에 다들 빨리빨리 정비해!"
"ㄴ..네넵!"
직원들은 태형의 방문에 다들 조급해졌고,
생전 처음 방문하는 그의 등장의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
.
태형이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 분주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약간 잦아드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 연화 병원이라....”
하늘은 태형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원래 재벌가 사람들은 잘 안 온다네요... 숫자로만 보니까 ;;”
“…숫자요?”
“매출, 손익, 효율요.. 재벌들이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ㅇ... 헙 맞다”
"왜요?"
"도련님도 재벌이시잖아요... ㅈ..죄송해요... ^^;;"
"아, 아녜요. 들리는 바로는 저도 연화병원 방문이 첨이라고 하더라구요?"
"앗 그건 기억이 안 나셨었나보군요..?"
"근데 여긴 왜...."
그렇게 둘은 대화를 나누며 복도를 지나던 중,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아니, 보호자분이 아직이라니까요-!”
“그럼 이 환자, 이대로 죽게 냅둡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한 아이가 침대에 누워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간호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 무슨 일 이래요...??”
하늘이 주변 간호사에게 물었다.
“수술 동의서 문제래요.”
“…동의서요?”
“보호자가 서명해야 하는데, 아직 도착을 못 했대요.”
태형은 발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카센의 목소리가 스쳤다.
'너희의 힘이 아니라, 선택을 믿어라'
“…잠깐만요.”
태형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모두의 시선이 태형에게로 쏠렸다.
“…제가 책임질게요.”
“…네?”
의사도, 간호사도, 보호자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제가 이 병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순간 정적이 일었고,
비서가 급히 다가왔다.
“도련님-!”
“…괜찮아요.”
태형은 아이를 바라봤다.
작은 손이 이불을 꽉 쥐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절차보다 사람이잖아요.”
"도련님...!"
"제가 보호자하면 되는 걸까요?"
의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사건이 해결되자 모여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하늘은 태형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태형 씨.”
“…네?”
“아까랑, 완전 달라요!!!”
“…그래요?”
“네!! 완전요! 방금… 되게 좋은 사람 같았어요 ㅎㅎ 완전 자비로운 재벌!”
태형은 그 말에 가슴이 묘하게 울렸다.
태형은 병원에 기부금 5억을 전달하는 의사를 밝히고 일정을 마무리했다.
하늘은 속으로 태형이 말한 해야할 일이 이것인가 생각했다.
연화가로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조용했다.
“…하늘 씨.”
“네?”
“…무섭지 않았어요?”
“뭐가요?”
“제가 나서서, 그런 선택한 거요.”
하늘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무섭긴 했죠... 제가 책임져야할까봐 ㅋㅋㅋ ^^ ;;; 하핳”
“… ㅎ 아 그런 이유ㄹ..”
“근데요.”
하늘은 태형을 봤다.
“이상하게… 믿음은 갔어요!! 도련님이라면 잘 할 것 같은 기분?”
태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근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뭘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태형은 창밖을 바라봤다.
“…근데, 안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하늘은 그 말을 조용히 들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사람, 뭔가 기억이 점차 나나봐...'
그날 밤.
태형은 혼자 방에 앉아 있었다.
손바닥을 펼치자, 아주 희미한 빛이 스쳤다.
신력이 남아있지만 아직 약했고, 불안정했다.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그는 느꼈다.
이제부터는,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 휴대폰이 진동했다.
알 수 없는 번호와 짧은 메시지 하나.
'잘 봤어 ㅎ'
태형은 눈을 감았다.
“…석진.”
시험은,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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