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태형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파편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서로 이어지지 않던 장면들이, 이제는 천천히 줄을 맞추고 있었다.
연화 그룹.. 그리고 재계 서열...
“…아.”
태형은 천장을 바라본 채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맞다.. 나, 형이 둘 있었지'
어릴 적부터 늘 앞에 있던 두 사람.
그들은 영악한 행동을 많이 했고, 그래서 언제나 태형은 뒤였다.
후계자 발표 날,
아버지의 차가운 시선이 기억을 스쳤다.
“막내, 너는 재계 서열에 관심이 없구나.”
그 말 한마디로 끝났던 자리...
그래서 태형은 손을 꽉 쥐었다.
'인간 세계의 나는, 끝내 선택받지 못했었지....
그런데 지금은 달라. 신계의 기억을 가진 채, 인간 세계에 서 있는 나거든
차기 신 시험을 받고 있는 존재, 김태형
“… 어렵지 않겠어 ㅎ”
태형은 작게 웃었다.
'신의 자격을 시험받으면서, 인간 세계에선 후계자 자격조차 없었다니..
이 몸은 대체 뭘 하고 살았던거야?'
그리고, 아주 조용히 결론이 내려졌다.
'그럼 받아내면 되지. 이 인간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으로'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조용한 기류가 흘렀다.
하늘은 태형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태형 씨, 오늘 일정 있어요? 제가 보고 받은 게 따로 없어서요..!”
“네, 있습니다.”
“…오! 어떤 걸까요?!”
태형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회사 출근요”
“…회사요?”
“네. 연화 그룹 ㅎ”
하늘의 눈이 커졌다.
“…갑자기요?”
태형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하늘을 봤다.
“수트… 준비해줄 수 있어요?”
“…네?”
“아, 그… 아버지 좀 뵙고 오려구요”
“…아!”
"저 기억 많이 돌아왔어요 ㅎㅎ"
하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딘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런 것 같긴 하네욥... 알겠어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ㅎㅎ”
연화 그룹 본사,
높은 건물 앞에 서자, 태형은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가… 김태형이 밀려났던 회사인가'
로비로 들어서자, 바닥의 광택이 눈에 들어왔다.
“…어?”
몇몇 직원들이 태형을 보고 멈칫했다.
“도… 도련님?”
"안녕하세요.”
태형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낮은 직급의 직원들만이 조심스럽게 인사를 돌려줬다.
그 외의 시선들은 수군거림이 더 많았다.
“왜 왔지…? 서열도 낮은 양반이”
“기억상실이라며…”
“괜히 문제만 생기는 거 아냐…”
태형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김태형의 입지구나.'
하늘은 태형 바로 뒤에서 묵묵히 따라왔다.
괜히 더 어깨에 힘을 주고, 태형 옆에 꼭 붙어있었다.
“…괜찮아요?”
하늘의 작은 속삭임을 건넸다.
“네, 뭐 이정도 쯤야 ㅎㅎ”
태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랬던 거라서요, 별 상관 없어요.”
"그..그렇다면 다행이구요..."
"회장실로 안내 부탁드려요."
"넵!!"
회장실 앞에서 하늘이 노크했다.
"회장님, 막내 도련님 오셨습니다."
"...? 들어오라고 해요"
문을 열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재개발 구역은 우리가 가져가고, 보상은 최대한 줄이면 됩니다.
어차피 밀어내면 다 나가게 돼 있어요.”
태형의 두 형이 이미 와 있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태형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아버지.”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왔다.
“…태형?”
큰형은 피식 웃었다.
“야, 왜 왔냐? 기억도 없다며?”
태형은 그 말들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해졌다.
"저도 재개발 건, 의견 드릴려구요"
"니가?"
"넵"
"니가 재개발이 뭔지나 알아?ㅋㅋ"
“재개발 건 말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태형을 바라봤다.
“...? 너희 둘은 조용히 해봐라, 태형이 너가 말해봐.”
“지금 방식대로 가면, 분명 빠르긴 하겠죠.”
형들이 눈을 굴렸다.
“근데요.”
태형은 말을 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다릅니다. 강제로 밀어내면, 소송으로 몇 년은 끌릴 거예요."
아버지의 눈빛이 변했다.
“…그래서?”
“그 지역 주민들과 협의체를 만들고, 지분 일부를 넘기는 방식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형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 지금 사업 다 말아 먹으려고 왔냐? 그렇게 되면 손실이 더 커"
태형은 형들을 보지 않고, 아버지만을 바라봤다.
“단기 이익은 줄어도, 브랜드 이미지랑 장기 수익은 남을 수 있습니다.
부디 현명하게 판단해주세요, 아버지”
잠시 정적이 일고...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지.”
“…최근에요 ㅎㅎ 공부 좀 했습니다.
저도 재계 물려받을 생각이 생겼거든요.”
아버지는 태형을 오래 바라봤다.
'막내가…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던가.'
“…그 안으로 검토해보자.”
형들의 얼굴이 굳었다.
"네에??? 아버지!!!!!"
"너희 둘은 이만 돌아가봐라, 넓게 보지를 못하는 구나"
"ㅇ.. 아버지!!"
"돌아가래도!!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복도를 나오자마자,
“야.”
큰형이 태형의 어깨를 잡았다.
“너 뭐야. 갑자기? 괜히 나서지 마 ;”
작은형도 다가왔다.
태형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봤다.
“…형들.”
“왜 불러?”
“…그렇게 살면.”
태형은 아주 조용히 웃었다.
“벌 받을지도 몰라요.”
“…뭐?”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바람이 세게 불었다.
형 둘이 동시에 휘청였다.
“어, 뭐야,,,!”
천장에서 물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둘은 물벼락을 맞았다.
“끄아아악 !!!! 야!! 뭐야 이거!!!”
"~~~ 그럼 전 이만 ~~~"
태형은 이미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늘은 눈을 크게 뜬 채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 도..도련님이 하신거에요?”
태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제가 한 거 아닌데요?”
“…네?”
“우연히 벌 받았나보죠 뭐 ㅎ”
하늘은 말을 잇지 못했다.
“…태형 씨.”
“네?”
“…아까 그거…”
“그거?”
“…ㅇ..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태형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하늘 씨.”
“네?”
“… 태양이 보고 싶네요.”
“…갑자기요?”
“네, 오랜만에 그 녀석 보고 싶어요 ㅎ
하늘 씨 집 가서, 라면도 끓여주면 안 돼요?”
“… ㄹ.. 라면요 ??”
“…기억 찾은 기념으로요 ㅎㅎ”
하늘은 잠시 태형을 보다가 말했다..
“라면 하나로는 부족할 텐데요 크크”
“…그럼 두 개? ㅋㅋ”
"콜!!"
그렇게 두 사람은 태양이를 보러 하늘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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