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얼마 지나지 않아 기획사측에서 정국이의 보도가 왜곡되었다고 공식 발표를 정정했다. 결국에 나와 정국이는 공식적으로 열애설이 난 사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상하네. 정국이가 없는 소리를 왜 했지? 진짜 뭐 없었던 거 맞아?"
매니저 오빠가 계속해서 상황이 미심쩍은지 나에게 연신 질문을 해댔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모든 정신이 전정국에게로 쏠려 있었다. 미동도 없는 폰을 손에 쥐고 껐다 켜는 것을 반복했다.
'전화 받아. 전정국.'
나 지금 무지 불안하니까. 제발 전화 받아줘. 전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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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내 바람과 달리 정국이는 연락이 없었다. 이번 일은 누가 봐도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정국이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국이와의 열애설로 인한 노이즈 마케팅 때문인지 스케줄이 빈틈없이 잡혔다.
'정국아. 전화 좀 받아. 내가 다 잘못했어. -햄.'
내가 할 수 있는 건 틈이 나는 대로 문자를 보내는 것뿐이었다.
"햄아. 이거 팬이 보낸 것 같은데?"
매니저 오빠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들고 대기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제는 제법 팬도 생겨서 종종 팬들이 선물을 보내줬다. 상황은 상황이지만 팬들의 마음이 소중해서 품에 안아들었다.
"근데 이거 발송인이 없네요?"
"부끄러움이 많은 팬인가 보지?"
나도 그러려니 하고 상자를 열었다. 나는 상자를 여는 순간 보이는 물체에 소리를 지르며 상자를 떨어뜨리며 소리를 질렀다.
"햄아. 무슨 일이야?"
놀란 매니저 오빠가 나에게 달려왔다.
"오빠, 상자 안에..."
내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몸을 파르르 떨자 매니저 오빠가 나를 대신해서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악! 이거 뭐야. 닭 머리 같은데."
매니저 오빠는 상자 안에 든 물체를 확인한 뒤 상자를 곧바로 대기실 밖으로 들고 나갔다. 몸이 진정되지 않는 중에 상자 안에서 떨어져 나온 종이로 다가갔다. 피로 물든 종이를 떨리는 손으로 들어 올리고 나는 한 번 더 소리를 내질렀다. 종이에는 붉은 피로 '우리 오빠한테 손 대지 마.' 라고 쓰여 있었다.
"흐아.."
온 몸이 경직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연예인이 되고나서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어 약해진 몸과 지친 마음에 충격까지 더 해지니 똑바로 서있는 것조차 어려워 자리에 주저앉자 급히 메이크업 아티스트 언니가 뛰어 들어와 나를 부축했다.
"햄아. 괜찮아?"
"하.."
"햄아. 정신 차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숨이 막혔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이 목끝까지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있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언니. 나 숨 쉬기가 너무.."
"햄아. 진정해. 숨 쉬어봐. 괜찮아. 햄아!"
"힘들어.. 힘들어요.."
죽을 것 같아서 눈물이 나왔다. 온 몸에 힘이 바짝 들어감과 동시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경직된 몸은 계속해서 불안한 떨림을 만들어냈다.
"5분 뒤에 무대인데 어떡하죠?"
"햄아. 무대 설 수 있겠어?"
"하.."
숨이 막혔지만 무대 위로 올라가야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내가 이 무대에 올라가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나는 대답대신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 저대로 올라가도 괜찮은 거예요?"
스타일리스트 언니가 매니저 오빠에게 항의했지만 행사 측 입장도 있기 때문에 매니저 오빠도 곤란해 하는 눈치였다. 무대 위에 오르자 수많은 관중들의 함성이 들렸다. 몸은 진정되지 않아서 여전히 떨렸다. 수많은 관중들이 어지러워 보였다. 어쩌면 저 중에 나에게 그 박스를 보낸 사람이 있을 지도 몰라. 누군가 나를 죽일 지도 몰라. 불안한 생각이 마음과 몸을 괴롭혔다.
그 와중에 노래의 반주가 흘러나왔다. 웃을 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었다. 사람들이 너무 무서웠다. 항상 멋질 거라고 생각했던 이 자리가 미치도록 두려워졌다. 노래를 불러야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가 들리지 않았다가를 반복했다. 시야가 또렷이 보였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끝내 무대의 끝을 나는 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