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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인가수가 시상식에 참여하게 되면 하루종일 폴더인사를 해야한다.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에 동경했던 가수들이 눈앞에 있으니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너무 잘 보고 있어요."
간혹가다 칭찬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열심히 활동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선배님들의 대기실을 돌아다니며 앨범을 배분하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든 시금치처럼 비틀걸음으로 대기실로 향하고 있는데 눈앞에 정국이가 보였다. 하지만 나는 평소처럼 환한 얼굴로 정국이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정국선배, 박수 안무 짱 멋있어요."
프리스틴의 주결경. 플레디스에서 손에 꼽히는 미녀다. 평소에 넉살이 좋아서 아무하고나 잘 지내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웃어주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국이는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다. 진짜 싫다. 고작 이런 모습에도 질투하는 내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이렇게 기분 나빠야 하나. 항상 즐거울 수는 없는 걸까.
"햄아."
"윤기야."
"별로 신경 쓰지마. 친한 사이일 뿐이니까. 원래 전정국 웃는 상이잖아."
어째서 전정국은 모르는 내 마음을 윤기는 나를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는 걸까.
"오랜만에 보는 건데 웃어. 즐거워도 되잖아."
"그래.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러고 싶은데."
어째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국이만 생각하며 행복했던 만큼 정국이를 미워하는 마음도 커져 버리는 걸까. 왜 행복한 모습만 보여줘야 할 윤기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마는 걸까. 내가 기대야할 건 전정국인데.
"이리 와."
윤기는 내가 우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나의 대기실로 나를 이끌고 들어갔다. 윤기는 나를 안아서 위로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을 흘리는 나를 가만히 지켜봐주고 있을 뿐이었다.
"나 마음 접고 있는데."
"
"안 되도 정말 노력하고 있는데. 너한테 심통까지 부려가면서."
자꾸 흔들리게 하지 마. 너를 뺏어오고 싶게. 욕심나게 하지 마. 햄아. 다음번에는 너 혼자 두고 가거나 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윤기는 나를 대기실에 홀로 두고 나가버렸다.
"나 진짜 못났다. 진짜."
나쁘다. 그냥 참아 넘길 수 있는 건데. 연예인이면 이것보다 더 한 경우도 많을 텐데. 왜 나는 정국이가 다른 사람에게 웃어준 것만으로 이렇게 속 좁게 구는 걸까. 나는 왜. 윤기조차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린 걸까. 생각해보면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정국이가 아니더라도 바쁜 스케줄에 밤낮 틈새로 잠시 잠드는 것이 아니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것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판단하며 남기는 수많은 글들에. 의식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주변의 시선들에. 그래. 나는.
"너무 지친다."
내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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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아. 무슨 일이야? 스타일리스트 언니는 눈물범벅이 되어서 지워져 버린 메이크업을 보며 화들짝 놀라서 황급히 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언니."
"많이 힘들어? 쉬운 일이 아니지. 어린 나이에 연예인 하는 게."
"
"한창 마음대로 하고 싶을 나이에 모든 걸 참아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스타일리스트 언니는 차분히 내 마음을 헤아려 주셨다. 그래. 조금 더 참아봐. 무대에 설 때만큼은 행복하잖아. 이렇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햄이는 무대에 설 때 제일 예뻐. 행복해 보이고. 분명 잘못 온 건 아니야. 제대로 길을 걷고 있어. 그게 조금 힘들 뿐이야."
"고마워요. 언니."
또 눈물을 흘리려는 나를 언니는 황급히 말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또 흘리면 무대 전에 다시 화장을 할 수 있을지 몰랐기에. 나는 언니에게 기운을 얻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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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는 방탄소년단 대기실로 들어오자마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정국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윤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다른 멤버들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 얼굴을 했다.
"뭐야. 갑자기?"
"뭐야? 갑자기? 너 자각은 하고 있냐? 햄이가 네 여자 친구라는 거."
"당연히 알고 있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그럼 제대로 챙겨."
"내가 왜 너한테 그런 말을 들어야하는데?"
정국이 날카롭게 반응했다. 정국에게도 윤기에게도 햄이는 민감한 문제였다.
"안았을 거야. 위로했을 거야. 백번이고."
"
"차여도 고백했을 거야. 싫어해도 키스했을 거야. 날 사랑할 때까지."
그 상대가 전정국 네가 아니었다면. 포기 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윤기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다시는 내 앞에서 햄이가 울게 만들지 마. 다음에는 안 참아."
윤기는 정국의 멱살을 놓아주고 무서운 얼굴로 대기실을 빠져나가 버렸다. 정국은 그제야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햄이를 울린 것이다. 정국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혼란스러워했다.
"뭐가 이렇게 어렵냐.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확실한데도 이렇게."
햄이 아닌 누구도 정국을 위로 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