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무대 리허설이 시작된다. 나는 무대 중앙에 서서 환한 빛을 받으며 나타난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반짝반짝 아름답게. 정국이와는 달리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무대 리허설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서 방탄소년단이 단체로 관객석에 앉아 내 무대를 지켜본다. 그곳에는 정국이도 있었다.
"마이크 볼륨 좀 올려주세요."
"지금은 괜찮나요?"
"아. 네. 이정도면 되겠어요."
능숙하게 리허설을 하는 모습에 태형이와 지민은 엄지를 척 들어보였지만 정국이는 어쩐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리허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어요. 햄이씨."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가기 전에 방탄소년단 선배들에게 인사를 했다. 사적으로는 친할지 몰라도 공적으로는 예의를 지켜야했다.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햄아. 기다려."
정국이가 나를 불렀다. 분명히 들렸지만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금 정국이의 눈을 마주보면 다시 울컥할 것 같아서 못들은 척 대기실로 걸어 들어갔다. 정국이가 내 뒤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대기실 문을 닫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정국이가 내 대기실로 걸어 들어왔다.
"왜 그냥 가?"
"
"내가 뭐 잘못했어? 햄아?"
잘 안다. 정국이한테 나쁜 의도는 없었다는 것쯤은. 정국이도 나에 못지않게 바쁘고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 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어리광 부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웃어야했다.
"아니. 정국이가 뭘 잘못해? 거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랬어. 알려지면 곤란하잖아. 우리 사이."
"거짓말."
"
"거짓말하네. 햄이."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나도. 하지만 정국이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그게."
"너 울었다며."
"
정국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윤기가 정국이에게 내가 울었다고 말한 걸까. 그래서 정국이가 계속 저기압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미 정국이를 신경 쓰이게 만들어버렸다. 자신의 일로도 벅찰 정국이를 혼란스럽게 해버린 거다.
"미안해."
"뭐가. 뭐가 미안한데."
"정말 미안해. 정국아."
"왜 그래. 햄아. 나 불안하게."
정국이에게 미안했다. 이 와중에도 나를 감싸안고 불안한 얼굴을 하는 정국이에게. 나는 지금 이순간조차 너에게 행복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정국아. 내가 너한테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
"나는 계속 너의 사소한 행동에 질투할 거고 웃어줄 수도 없고 예민하게 굴 거야. 그러다가 결국에는 지쳐서 애매한 행동들로 널 혼란스럽게 만들겠지."
정국이를 사랑한다. 이제는 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정국이를 보고 있다. 그래서 가지면 해로운 욕심을 부리게 된다. 그게 정국이를 힘들게 만든다.
"그만하자. 우리."
"햄아. 그거 무슨 뜻이야? 그만 하자니."
정국이는 이미 눈치를 챘음에도 애써 웃으며 평소의 분위기를 이어가 보려고 했다. 괜찮을 거야. 너는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지금처럼 그 사람들 사이에서 빛나면 돼. 정국아.
"나 너무 지쳐. 정국아."
너를 마음껏 사랑할 수 없어서. 그게 너무 지쳐. 아픈 건 나 혼자 할게. 어두운 건 나 혼자 다 할게. 그러니까 넌 그냥 웃어. 나를 만나기 전의 그 환한 모습으로 지내줘. 짧은 시간에 내뱉은 말은 두 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정국이에게 내 마음이 다 전달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정국이를 지나치려 했다.
"가지마. 햄아."
정국이는 날 붙잡았다. 금방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았지만 티 낼 수 없었다. 정국이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했는지 잘 알기에 그걸 포기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국이의 손을 뿌리치고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대기실을 빠져나오면 정국이가 나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그랬다.
"햄아."
"...윤기야."
"너 왜 또 우는 건데."
왜 내가 가면을 벗었을 때, 진실된 얼굴을 보였을 때 그곳에 서 있는 건 윤기일까. 나를 지켜보는 윤기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일렁였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 걱정 시키고 싶지 않았다. 손으로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았지만 눈물은 금세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정말 최악이야. 내 뒤편에서 대기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기는 그와 동시에 나를 품에 안았다. 내 모습이 정국이에게 보이지 않게.
"그냥 말을 하지."
"
"나보다 민윤기가 더 좋아져 버렸다고."
그냥 말하지. 햄아. 정국이의 차가운 목소리가 타들어가는 속을 시리게 찔러댔다.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건 전정국 넌데. 내가 너무 너를 좋아해서. 그 정도가 넘쳐서 너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서 두려울 뿐인데. 너는.
"민윤기. 햄이 아프게 하지 마. 나는 울게 만들었지만 너는 웃게 해줘."
고개를 돌린 곳에는 정국이의 뒷모습이 있었다. 점점 멀어져 가는 정국이의 쓸쓸한 뒷모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