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으아아! 어째서야? 어째서인데? 왜 어째서 네가 윤기형이랑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정국이의 문자를 확인하고 정국이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정국이는 이미 폭주상태였다. 정말 완전히 윤기로 굳어져 버린 건가. 원래 가상 연애 프로그램은 사전에 함께할 인물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촬영 전까지는 상대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상대가 방탄소년단 안에서 정해지다보니 정국이가 미리 알아버린 것이다.
"근데 이거 해야 할 것 같아. 매니저 오빠가 이건 절대 거절 안 된다고 그랬어."
[그럼 윤기형랑 햄이는 연애도 아닌 결혼을 할 거란 말이야?]
"어차피 가상이잖아. 진짜도 아닌 걸."
솔직히 나는 정국이랑 결혼생활을 하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강하게 남는다. 하필이면 상대역이 또 윤기여서 정국이가 엄청나게 신경 쓰겠구나 싶었다.
[진짜 결혼은.]
"응?"
[진짜 결혼은 나랑 해야 해. 햄아.]
갑작스럽게 결혼이라니. 나는 정국이의 돌직구 고백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버렸다. 정국이랑 연애한 지 그래도 꽤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는데 정국이의 저돌적인 면은 변화가 없다.
"갑자기 결혼이라니."
[왜? 윤기형이랑은 결혼하면서 나랑은 안 할 거야?]
"그건 가짜라니까."
[몰라! 그래도 결혼이야!]
정국이 질투는 알아줘야한다니까. 완전 질투왕자야.
"우리 정국이 질투했어?"
[우리 정국이라고 부른다고 내 마음이 풀릴 줄 알아?]
"우리 꾸꾸 꾸꾸해!"
[애교 부리면 풀릴 줄 아냐구우! 왜 그걸 아냐고오!]
정국이는 단순하다니까. 다른 것에는 덤덤한 편인데 내 애교에는 사르르 녹아내려버린다. 정국이는 나를 참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정국이를 만나기 전에는 그런 기분 가져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정국이를 만나고 나서는 나를 위한 것도 생각하고 이기적인 생각도 하게 됐다. 그만큼 나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거겠지.
"정국아."
[웅.]
"고마워."
[뭐가! 나 아직 윤기형이랑 결혼하는 거 허락 안 했어!]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뭐?]
정국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방대했다. 나는 정국이한테 고마운 일이 너무 많았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게 해줘서."
[...]
"그 외에도 많은데. 정국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나한테 계속 좋은 일만 있었던 것 같아."
[나도 그래.]
"응?"
[햄이를 개인 홈페이지에서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햄이한테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었어. 그게 나를 움직이게 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자리에 있게 해준 것 같아.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에너지가 치솟게 하지만.]
정국이는 혼자서 뒷말을 흐리며 궁시렁거렸다.
[정국아! 이제 통화 그만하고 와! 핸드폰 들고 무대 올라갈 거야?]
정국이의 폰으로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무대에 올라가야할 시간인 모양이었다.
"정국아. 이제 무대 하러 가! 멋있게 해야지."
[응. 힘낼게. 햄이도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했으니까. 꼭 모니터 하기다?]
"알았어. 정국이 멋진 모습 보고 있을게."
방탄소년단의 무대는 v앱을 통해 생중계 됐다. 무대 위에 방탄소년단이 올라오자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저걸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손이 닿는 곳에 정국이가 있다. 원할 때면 언제든 정국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약간의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영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내 남자친구라니."
더군다나 나한테 결혼을 하자고도 말했다. 아직은 먼 일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새 정국이와의 결혼생활을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에 있는 정국이. 부스스한 정국이. 같이 양치질을 하는 정국이. 아침밥을 준비하는 정국이. 머릿속이 온통 정국이 뿐이다.
"어쩌면 좋을까."
나는 이제 정국이를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국이라는 사람에게 너무 깊게 빠져 버렸다.
.
.
"윤기야. 우결 진짜 안 할 거야?"
방탄소년단 매니저는 윤기를 설득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윤기가 귀여운 꼬마요정 이미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우결에 출연하는 것은 예능에서의 첫 발을 내딛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물론 팬들은 원하지 않겠지만.
"안 해요. 나는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지. 예능에는 관심이 없다니까."
"그렇지만 햄이는 너랑 작업도 같이 하고 사이도 좋잖아. 요즘 팬픽에서도 너랑 햄이 엮는 글들이 많아. 물론 햄이는 사진을 쓰는 정도지만."
"그건 정국이 시켜줘요. 정국이가 그런 거 하고 싶어 했잖아요. 방금 못 봤어요? 곧 죽어도 자기가 하겠다는 거."
"정국이는 지금 포지션에서 우결하는 게 위험하지. 냉정하게 봤을 때 정국이가 지금 팬층이 두터운 걸. 물론 너도 빠지는 건 아니지만. 질투는 덜 받을 거 아냐."
"됐고. 전정국 시켜요. 아참, 그리고 정국이한테는 한동안 계속 내가 우결 상대배역이라고 알게 해줘요."
윤기는 정국을 놀릴 생각에 즐거운지 입가에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민윤기. 너 은근히 사악한 구석이 있어? 얼굴은 애처럼 해맑게 생겨가지고."
"남자의 질투도 무서운 거죠."
"질투?"
"그런 게 있어요."
정국은 윤기의 미끼를 물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