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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아네모네는 그대를 사랑해.》
꽃에 대해서 안다면 이것이 언어유희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나도 얼마전까진 꽃에 무지 했지만..
'퀘스트로 꽤나 단련 되었다!'
제목은 여러가지로 해석 된다. "빨간 아네모네의 꽃말은 그대를 사랑해" 와 "빨간 아네모네가 그대를 사랑해" 로 나뉘는데, 그냥 아네모네의 꽃말은 배신이기 때문이다.

"빨간 배신이 그대를 사랑해, 로도 해석할 수 있겠네."
그나저나, 이것이 리뉴얼 된 제목인데 원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50번이나 리플레이한 게임의 제목을 잊을리가 없는데 말이다.
"제목이 뭐였지.. 좀 진부하고 로판 느낌 나는 양산형 같았던건 기억나는데.."
그렇다면 게임의 스토리를 짚어봐야겠다. 게임의 설명이나 장르 같은건 기억이 나니까.
장르 19금 로맨스 판타지
내용 어느 날 신성력이 넘쳐나 제 2의 성녀가 되었다! 실비아의 치료 방법은 바로 신체 접촉? 현생에 지친 당신까지 치유해버릴 역대급 치유물♡
.. 지금 생각해보니 이 게임 치유물 아니잖아.. 아니다 못해 데드엔딩 수천가지 피폐 감금 집착이 난무하는데?
그러고보니 실비아는 성녀였지. 신체 접촉이나 타액으로 상처를 무한정 치료할 수 있다는 설정의!
"으음, 제목에 성녀가 들어있진 않았는데.."
그러고보니 곧 있으면 치유의 힘이 개방될 차례이다. 치유의 힘이 개방 되면서 여기저기 실비아를 데려가려고 난리가 나지.

'잠깐, 생각해보니 게임창이 왜 요즘 안 뜨지? 오류 생겼나?'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내 눈 앞에 게임창이 나타났다.
~{챕터 1. 힘의 개방}~
파아앗-
드디어 프롤로그가 끝나고 챕터가 시작되었다. 챕터가 시작이 되자 놀랍게도 내 외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째서.. 머리카락이 밝아졌잖아..?"
처음엔 빛에 비쳐서 그런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내 머리칼은 분명한 금발이 되었다.

"이랬던 적은 없었는데.. 애초에 실비아는 흑발인걸."
나는 금발을 만지작 거리다가 나에게 그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탓이었다.
"내 안의 신성력이 바뀌어서 일시적인건가? 그러면 상관없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굳어버렸다. 방금한 대사는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말이 왜 자동으로 나오는거야..?'
그리고 나는 신성력이 바뀌면 머리색이 바뀐다는 것도 모른다. 내가 여기 주민도 아니고 일개 게이머일 뿐인데 어떻게 그걸 안다는 말인가.
"그치만 몸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르니까 의사를 불러야지. 아리엘!"
이제는 몸과 말 모두 지 멋대로 움직였다. 나는 아리엘이 누군지 방금 간신히 기억해냈다. 그 뇌물 시녀장이었지.
문은 기다렸다는듯이 활짝 열리고 아리엘이 나타났다.
"주인님, 원하시는것이 있으십니까?"

"아리엘, 의사를 불러줘! 내 몸에 이상이 생겼나봐!"
"알겠습니다. 더 말씀하실건?"
"없어."
이건 말도 안 된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물론 이 몸은 내 몸이 아니니까 문제 없을지도 모르지만.. 아니, 문제가 있다. 마치 인형이 된 듯한 기분이다.
심지어 내가 모르는게 정상인 사실까지 자꾸만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실비아가 된 듯 말이다.
"설마, 이 안에 진짜 실비아도 들어있는건가?"
말이 아예 안 되지는 않는다. 실비아는 여주인공이고.. 나는 그런 실비아의 몸에 있는거니깐.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야.."
나는 나와 함께 바뀐 게임창을 터치해보았다.
-상태창-
이름: 실비아 아므리엔 (플레이어)
업적: 없음
칭호: 없음
스킬: 치유와 성녀의 힘
체력: 90/100
명성: 10
-호감도 현황-
김석진 아므리엔 / ♥︎♥︎♡♡♡
??? / ♥︎♡♡♡♡
??? / ♡♡♡♡♡
??? / ♡♡♡♡♡
박지민 / ♥︎♥︎♥︎♡♡
??? / ♡♡♡♡♡
??? / ♡♡♡♡♡
무언가 바뀌었다 하기 애매하게 바뀌어있었다. 내 스킬 이름도 바뀌어있었고, 업적은 아예 사라졌으며 명성과 호감도가 약간 올라갔다.
나는 게임창을 모두 끄고 침대에 다시 엎어졌다.
예전에 각 캐릭터 마다 엔딩을 스포 당한적이 있었다. 이 게임은 개인엔딩 중 여주인공이 해피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보지 못한 엔딩이 하나 있다.
'바로 미연시 게임의 꽃, 다같이 사는 역하렘 엔딩이지.'
사람들은 모두의 호감도가 100이 되어도 이상할만큼 역하렘 엔딩이 나오지 않자, 없는 엔딩으로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역하렘 엔딩은 분명 있다.
사실은 자기합리화다.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그거뿐이니까. 그 엔딩을 보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개고생을 해야만 한다.

"정 안 되면 자살해서 시간 되돌리지, 뭐."
그때, 문이 활짝 열리고, 밖엔 놀란 표정의 의사가 멍하니 서있었다.
"ㅂ, 방금 무슨 말을.."
"어, 그, 그게 아니라.. 그냥 책 얘기.."
이런, 망했다. 게임 얘기를 들켰나보네.
"자살이라뇨! 절대절대절대 안 됩니다요!!! 제 25년 의사 인생을 걸고 그것만은..! 신께서 저주하실텝니다..!"
"아."
게임이 들킨게 아니었구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내 머리카락은 어느새 검정색으로 돌아와있었다.
"확실히.. 진단이 필요하겠어요. 이렇게 아프신줄 알았으면 뛰어왔어야 했는데에에..."

"어우, 아니에요. 연세도 있으신데 연골 나가요."
"어찌 고작 제게 말을 높이십니까.. 편하게 하대하십시오. 그게 저도 편합니다!"
딱봐도 50은 넘어보이는 할아버지에게 반말을 하기엔 내안에 있는 유교 사상이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실비아가 되기엔 확실히 이르다.
"그만큼 한 명 한 명 모두 소중한거로지요. 저도 이게 편해요."
적당히 대충 둘러대자, 의사 할아버지가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눈망울로 변했다...
"아, 이럴때가 아니지! 잠시 진찰 좀 하겠습니다."
의사 할아버지는 내 맥을 짚고 당황하더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급하게 뛰쳐나갔다.
십분 정도 지난 후의사 할아버지가 데려온건..
"우아아아아악!!!!"

"아므리엔 영애?"
"여기 왜 있어요!!! 나가!!"
.. 박지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