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갱"
이란 말이 있다.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영원한 구렁텅이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Ep1. 무저갱
유난히도 더운 초여름.
귀에선 울려 퍼지는 참매미 소리와
쨍하게 내비치는 햇살이 커튼을 열자 나를 반긴다.
"아..더워"
앏은 이불을 팽개치고
말라가는 목을 축일 시원한 보리차부터 찾는다.
열자마자 보이는 건 커다란 수박 하나.
내가 찾는 보리차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할머니, 보리차 어딨어요?"
내 부름에 어여쁜 꽃무늬 바지를 입고
천천히 나오신 할머니는
아까는 분명 보이지 않았었는데
귀신 같이 구석에서 뚜껑이 파란 병을
내게 꼭 쥐어주곤 이거 하나 못 찾나
젊은 것이 눈이 어둡다며
핀잔을 주시곤 뒷짐을 지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치, 분명 아까 없었는데'
일어나자마자 꾸지람을 들어서일까
컵에 보리차를 한 사발 부어
벌컥벌컥 들어마시고
입을 슥 닦는다.
내 심정을 아는지
야속하게도 날은 유난히도 좋을 뿐이었다.
ㆍ
ㆍ
ㆍ
ㆍ
ㆍ
여름방학 일주일째.
방학을 맞아 혼자 할머니댁에 놀러갔다.
엄마 아빠는 같이 가재도
일 때문에 바쁘다며 나 혼자 가란다.
모처럼의 여름방학에
여긴 촌동네라 전파도 잘 안 터지고
음식도 푸릇한 야채만 밥상에 올라온다.
그럼 심심할 땐 뭘 하냐고?
마루에 지나가는 개미들을 보면
의외로 시간이 빨리간다.
오늘 같이 아침부터 혼이 나서
기분이 꿀꿀하땐
산책을 주로 한다.
여기 최고 장점은 공기가 엄청 좋다는 거다.
쾌청한 날씨에 푸르른 밀밭을 걷다보면
나도 모르게 풀벌레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기 일쑤다.
"흠~흠흠"
오늘은 냇가에라도 가볼까
걸음을 재촉하며 시원한 물줄기 소릴 따라 가면
어느샌가 도착해 있다.
그리고 개구리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구리 알들도 많고
가끔 희귀하게 도룡뇽도 보인다.
평소처럼 냇가에 쭈구려 앉아 있는 그때였다.
"야, 여기서 뭐하냐?"

키는 어림잡아도 180은 훌쩍 넘어보이는 애가
쭈구려 있는 내 뒤에 바짝 다가와 말했다.
"어..?"
당황한 나는 되물었고
그는 강한 햇빛에 인상을 찡그리곤
앞에 흐르는 강물을 보는 가 싶더니
내 옆에 같이 주저 앉아
바람덕에 부스스해진 머릴 한 번 쓸고선
"뭐 보고 있었냐고"
ㆍ
ㆍ
ㆍ
그 모습이 흡사 어릴 때 봤던
동네 무서운 오빠들 같았다.
그 애의 차가운 분위기와
유독 강한 햇빛때문에 찡그려진 표정 덕분일까
조금 굳어진 채로 잡고 있던 나뭇가지로
괜시리 물을 휘휘 젓곤
"그..냥 이거 보고 있었는데.."
물 속 도룡뇽 알들을 가리키며
날 빤히 보는 그 애의 시선을 피했다.
"..그래? 야, 그거 좀 줘 봐."
대답도 하기 전
내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휙 낚아채곤
알들을 물 속에서 빼낸다.
"야! 뭐하는 거야.!"
잠시 무슨 일인가 싶어 멈칫한 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알들을 보곤
소스라치게 당황해
그 애 옷깃을 잡으며 말렸다.
그리고 걘 내가 말리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는
그것들을 아랫쪽 물가에 살포시 놓아준다.
"이래야 물살이 약해서 안전해"
그 알들을 모두 죽여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그 애는 그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줬을 뿐이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옷깃을 잡곤
극구 말려댔으니..
이제서야 몰려오는 쪽팔림이
여간 심한게 아니었다.
"근데 이거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야?"
"뭘..?"
..!
그제서야
내 손이 아직 그 애의 옷자락에서
떨어지지 않았단 걸 안 나는
급히 손을 놓으며 사과한다.
"미..미안"
그 애는 당황해 하는 날 보며
조금은 늘어난 옷자락을 정돈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띈 채.
_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