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4 깜빡임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ㆍ
그 애가 떠난 뒤
그날 밤은 유난히도 반딧불이의 빛이 밝아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신경쓰여
잠이 오질 않았다.
***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어떤 사람은 비가 오면 잠이 잘 온다던데
난 정반대였다.
창문 밖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어찌나 사납던지
꼭 누군가 괴성을 지르는 것만 같다.
베개로 귀를 막아봐도
이불을 뒤집어 써봐도
그 사납던 이명은 그치질 않는다.
그때였다. 파직, 소리와 함께
"에구 이게 무슨 일이래.."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멈췄다.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시더니
촛농에 불을 붙이셨다.
"할머니..! 저희 집 정전난 거예요?"
할머니께선 고개를 끄덕이시며
"응..그런거 같다야..
가끔 이러는디..두꺼비집이 좀 오래 되었어야지
아무래도 나사가 빠진 거 같은디.."
할머니가 제 손에 몇 천원을 갑자기 들이미시더니
요 앞 슈퍼에서 드라이버를 하나 사오라며
날 집 밖으로 거의 내쫓다시피 하셨다.
비 오는 날은 가뜩이나 싫은데
이어서 심부름이라니, 철심이 하나 나간
우산을 간신히 쓰고선 슈퍼로 향했다.
흰 색 운동화엔 꾸정물과 빗물이 튀겨
금방 더러워졌고, 양말에 조금 들어간 빗물과
함께 걷는 느낌이 물컹한 것이 기분 나빴다.
오래되에 고장난 건지 걸어가는 길에 드문드문
서있는 가로등 빛이 자꾸만 깜빡거렸다.
-파직
소리와 함께 등의 빛이 환하게 길을 비췄고
빛과 어둠 경계 사이로
헐렁한 청색 바지에 다 늘어난 나시티를 입은
그 애가 버려진 하룻강아지마냥
우산도 없이 떨고 있었다.
ㆍ
ㆍ
ㆍ
"뭐야 너 왜 그러고 있어?.."
목소리를 높혀
황급히 우산을 그 애 쪽으로 기울였고
조금씩 젖어가는 내 등보단
지금 눈에 홀딱 젖은 그 애가 더 신경쓰였다.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잔뜩 움츠려든 채
몸을 떨기만 했고 미미하게 떨리는 입술은
몇 번을 씹은건지 붉은기가 가득했다.
꼭 깜깜한 구덩이에 떨어진 사람처럼
간절하고 다급한 손길이 필요해 보였던 그였기에
"일단 우리집으로 갈래?"
좀 전 낮에 내게 보드를 알려주던 그 애와는
사뭇 다르게 같은 사람이 맞는 것인지
고개를 떨군채 희미하게 끄덕거리곤
군말없이 내밀어진 내 손을 잡고
일어서더니 여전히 시선은 바닥인 채로
물 웅덩이가 가득생긴 길을 지나쳤다.
하나의 우산으로 매우 가깝게 걷고 있던 우리.
톡 하고 그 애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내 어깨를 적셨다.
이렇게 가까이 서 보니 키차이가 더 선명히 느껴졌다.
새삼..크구나 속으로 생각하던 난
힘겹게 우산을 위로 뻗으며 걸었고
조금 뒤 말없이 그 애는 자신이
우산의 손잡이를 잡았고 둘 사이에선 빗소리와
질척이는 길 걷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침묵과 함께 걷던중에도 왜인지
그 애의 손은 꼭 내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ㆍ
ㆍ
ㆍ
얼마나 걸었을까
익숙한 대문이 반겨주고 들어가려던 찰나
할머니의 심부름을 깜빡한 것이 이제서야 생각났다.
속으로 아 망했다..라며
그 애 때문에 정신팔려 드라이버 사는 걸
깜빡한 나 자신을 후회했다.
그리고 미처 데려올 땐 생각하지 못했지만
생판 모르는 애를 늦은 시간에
집에 데려왔으니 혼나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쫄딱 젖은 애를 거기다 두고 갈수는 없잖아..
분명 할머니도 보시면 수건과 따뜻한 물은
챙겨주시며 돌려보내시겠지 생각하며
들숨을 크게 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