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무더운 밤 잠은 오지 않고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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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들리는 소리는
거실의 김치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큰 벽시계의 초침 소리 뿐이었다.
내 옷깃을 꼭 잡은 그 애와 마른 침을 삼키고
오직 핸드폰의 손전등 기능에만 의존한 채로
촛불이 있는 부엌까지 향했다.
"왜..할머니가 안 계시지.."
내가 물음과 함께 뒤를 돌아보자
옆에서 바짝 붙어 따라오던 그 애 가슴팍에
이마를 콩하곤 찧었다.
사과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내 이마가
그 애 몸에서 떨어지자마자 손으로 무언갈 가르켰다.
쪽지였다.
내용은 이랬다.
[네가 드라이버를 만들러오는지
하도 안오길래 박씨 할배한테 빌리러 갈테니께
허튼 짓 하지말고 여서 기다려라]
후레쉬로 비춰보니 정갈한 글씨체로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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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더 거세지고 있었고 가까운 곳에 천둥번개라고 치는지 꼭 사나운 범 우는 소리 같았다.
창문 밖에선 초록색인지 보라색인지 모를 밝은 빛이
자꾸만 번쩍거렸고 그때마다
내 옷이 더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그 애에게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지나간 자리는 축축했다.
"일단 너..씻어야겠다"
쏴아아-
우리집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는 강한 비에 형태없이 묻혀버렸고, 난 더러워진 바닥을 걸레질 하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바닥 더러워지는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시거든.
후레시로 어찌어찌 더러워진 바닥들을 찾으며
청소를 마쳤고 이제 걸레를 빨러가던 찰나
불투명한 욕실 미닫이문 안에서 날 불렀다.
"야.. 나 옷은 어떡해?"
흐릿하게 보이는 그 애 실루엣에 황급히 몸을 휙 돌렸다.
그러고보니 그 애 옷은 젖은 옷만 있지
입을 만한 옷을 안 준 상태로 욕실에 들여보낸 것이다.
내 실수다..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방에서
적당한 옷들을 찾았다.
아까 그 애 형체로 볼 때 내 옷은 맞을 거 같지 않았기에. 부랴부랴 입을만한 걸 찾는데
마땅히 보이지가 않았다.
야 나 추워라는 말과 함께 날 재촉하는 그 애.
기껏 우리집에 데려왔는데 감기라도 걸리게 할 순 없게 다는 마음에 아랫서랍을 열어봤다.
그제야 내 눈에 들어온 옷 하나.
난 재빠르게 욕실 앞으로 가 살짝 열어진 문틈 사이로
그 애에게 옷을 건네줬다.
이게 뭐라고 틈 사이로 나온 모락모락한 김과
그 애의 뽀얀 손목이 자꾸만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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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맞는 거야..?"
문이 열렸고,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연기가 피어나는 젖은 머리도 아니였고, 촉촉히 붉어진 그 애 입술도 아니었다.
형형색색으로 채워진 화려한 꽃무늬 바지와
형광색의 등산티가 내 시선을 앗아갔다.
-푸흡
안 웃으려 했는데,
사실 그 애가 나오기 전부터 계속 입은 모습을
상상하면서 안 웃어야지 안 웃어야지 다짐했는데.
모든 게 실패로 돌아갔다.
막상 입은 모습을 보니 내 입꼬리는 자연스럽게
요동쳤고, 결국 입밖으로 무참히
터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만 웃어.."
"아 미안, 근데 웃긴 걸 어떡해.."
그만 웃으라는 말에 그 애의 토라진 표정과 함께
이젠 웃음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몇 초간 크게 웃은뒤
숨을 크게 고르며 삐져나온 눈물을 찔끔 닦았다.
계속보니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묘했다.
'쟤는 저런 것도 잘 어울리네..'
잔뜩 올라간 눈썹과 꼭 오리같이 튀어나온 입술이
그 애의 기분을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알았어 이제 그만 할게라며 그 애 어깨를 살살 치곤
용서해 달라는듯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조금은 풀린 건지 이제 됐어라며
말투는 까칠해도 표정은 한결 풀어진듯 했다.
'그런데 할머니 꽤 늦으시네..'
계속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