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었다.
내가 왜 굳이 이런 의미없는 제안을 수락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장난이 아닌듯한 진지한 표정을 한 그를 앞에 두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워 결국 내가 이기고 끝내야겠다 생각했다.
"알겠어."

"다음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이거 마시고 해. 나 먼저 가볼게! 지금부터 기말고사까지 널 귀찮게 하는 일은 없을거야. 기말고사 성적 나오는날 보자."
내 손을 끌어 사과소다를 쥐어준 후 그는 손을 흔들며 특유의 상큼한 미소를 다시 지어보이고는 유유히 옥상을 떠났다. 옥상에서 내려와 아침에 받은 초코우유와 내 손에 있던 사과소다를 번갈아 바라보며 묘하게 그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있다 없으면 생각날 초코의 달달함과 잊을때쯤 나타나 톡쏘며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탄산의 존재. 두가지가 어우러진 그는 사람들이 좋아할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있다가 없어 허전한 그의 존재가 조금씩 내 안에서 자리를 키워갈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며 초코우유와 사과소다를 가방에 조심히 넣었다.
"너 요즘 무슨일 있니? 곧 기말고사인거 알지."
"네 엄마."
"요즘에 중요한 프로젝트 때문에 내가 널 신경 못쓴다고 해서 너까지 풀어질 생각 하지마. 저번 성적표 보니 떨어졌던데 다시 올릴 수 있지?"
"신경쓰실 일 없게 할게요."
오랜만에 출장에서 돌아오신 엄마가 다시 날 데리러 오기 시작했다. 전정국을 마주치지 않아 다행인걸까. 이런 숨막히는 대화가 익숙한것은 아마 오랫동안 겪어왔던 일이기 때문이겠지. 내 1순위가 성공인 이유는 지금까지 견뎌온 이 지옥을 조금만 더 버티면 독립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성공이 누구보다 간절했다. 내가 아닌 엄마의 인형으로, 트로피로 장식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 바로 회사로 들어가봐야하니까 밥 챙겨먹고 바로 공부해."
"네."
집에 들어가 여느때와같이 밥을 배가 부르지 않을만큼 챙겨먹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는 가방에서 초코우유와 사과소다를 책상에 올려두고 가만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옥상에서 이슬 맺힌 사과소다를 쥐어주던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의 모습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처음부터 주변사람과 그리 멀리 지냈던것은 아니다. 꽤 활달한 성격을 가졌던 나는 놀아야했던 어린 시절부터 주어진 과정을 따르며 살아왔기에 친했던 친구들과는 점점 멀어져갔고 점차 이 삶에 익숙해져갔다. 힘들지만 그 누구에게도 티를 낼 수 없던 내 어린시절을 끝으로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었다.

'어쩌면 네가 날 이겼으면 좋겠는 이 생각은 미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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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