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인데요

거짓말만 하지마 <이상혁>

Gravatar

거짓말만 하지마


<이상혁>

단편인데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



딸랑.-

.

.

.



"왔어?"


카페 안쪽 테이블에 앉있던 이상혁은 나를 향해 슥 손을 들어올린다. 나는 상혁이 앉은 테이블로 다가갔다. 비어 있는 소파자리. 이상혁 또 자기는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았다. 3년째 연애하는 내내 이상혁은 항상 내게 푹신한 소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오늘도.


"오늘 약속있다고 했나"


"응, 저녁에 친구만나기로 했어"


"...지영이?"


"응"


이상혁은 내 주변 지인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흘리듯 말하는 주변 지인들의 얘기조차 기억해놓는다. 가만보면 나보다 더 내 지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어제 잘 들어갔어? 연락이 없길래 걱정했어“


”아, 그럼! 내가 어제 너무 피곤했나 봐. 집 들어가자마자 뻗었네"


는 무슨, 어제 데이트 이후 이상혁과 헤어지고 한 잔만 하자는 남사친 녀석에 꾀여 술을 마시러 갔다. 물론 남사친 포함한 과 술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이상혁한테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예전부터 술만 마시면 꼭 어디 한구석 다치고 오는 내 술버릇 때문에 이상혁이 꽤나 애먹었었다. 다쳐오는 나로 인해 이상혁 주머니는 항시 반창고가 구비되어 있을 정도랄까. 그래서 이상혁은 내가 술자리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와 달리 이상혁은 술 먹는 걸 즐기는 편도 아니다. 나는 이상혁을 만나기 전만 해도 음주 가무를 즐기는 편이었다만... 그것도 이제 3년 전 일이다. 연애 초 때는 정말이지 도 닦는 승려처럼 속세와 절단된 생활을 했지만 요즘은 가끔 불러주는 술자리에 몰래 나가는 정도. 그리고 어젯밤이 그러했다.



"폰도 꺼져있던데"


"아, 으응..충전하는 걸 까먹었어"


"아, 그래?"


이상혁은 예상외로 점잖은 얼굴로 수긍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되려 긴장한 나머지 앞에 있는 컵에 꽂힌 빨대만 쪽쪽 빨아댔다. 차분한 이상혁에게서 묘하게 세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들킨 건가. 찔끔 이상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이상혁은 평상시와 다를 게 없이 다정했다.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파스타 먹으러 갈까? 자기 파스타 좋아하잖아"


"아, 아냐 먹고 왔어..!"


숙취에 파스타라고? 속 부대낄 일 있나... 나는 속으로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침도 안 먹었지만 먹었다는 거짓말을 했다. 왜 갈수록 거짓말의 개수가 늘어나는 것 같지. 한번 뱉은 거짓말을 수습하려 천 덧대듯 또 다른 거짓말로 겹쳐올렸다.


"오빠는 지금 공강인가?" 나는 대화 중심을 이상혁에게 돌렸다. 지금은 내게 저 다정함이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들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응, 조금 있다 가야 되는데. 으.- 가기 싫다-"


상혁은 두 팔을 앞으로 기지개 펴듯 내 양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깍지까지 낀 상혁은 투정했다. 오빠 주제에 귀여운 습관이다. 가끔 이런 투정 부리는 거. 이때부터인가 조금 안심이 들었다. 아직 이상혁은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크나큰 오산이었을까.


"근데, 자기야"


"응?"


"손등 다쳤어?"


상혁의 시선은 내 손등에서 멈춰섰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무리하게 삼겹살을 굽다가 손등을 데었던걸. 근데 하필 또 칠칠맞게 이상혁에게 들켰다.


"어제 들어갈 때 멀쩡했는데"


"어..라면! 먹다가 데었어!"


"...아이고, 조심하지"


"그니까..ㅎㅎ 저번에도 혼자 라면 먹다가 물바다 만들었잖아. 내가 이런다니까..참..ㅋㅋ"


나는 상혁의 예리한 물음에 당황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평소보다 말이 빨라지고 급해졌다. 포커페이스도 잘 안되는 것 같다. 그 와중에 상혁은 주절거리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커플링이 끼워진 약지 손가락 반지만 빙글 돌렸다. 그의 입술은 픽 미소를 보이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조금 차가웠다. 

"..."


그때부터 아. 처음부터 이상혁은 이미 내 거짓말을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상혁은 그런 사람이었지. 화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화나는 일에 되려 이성적이고 차분해지는 사람이었다는 걸 이제야 떠올랐다. 

.

.

.



"근데, 너 들어가자마자 뻗었다고 하지 않았나. 라면은 언제 먹었던 거야."


이번엔 이상혁의 표정이 확실히 달라졌다. 그는 내가 어디까지 하나 끝까지 지켜볼 셈이었다. 노련하게 조여오는 이상혁의 유도신문에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제는 내가 백기를 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야, 솔직하게 말하면 봐줄게"


내가 쩔쩔매자 상혁은 싱긋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친절한 미소였지만 그 뒤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얼굴이었다.


"어제 술 먹었어, 안 먹었어?"


"...먹었습니다."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했습니다..."


결국 이상혁한테 일방적으로 혼이 났다. 자기가 무슨 유치원 선생님이냐고. 조금 억울했다. 내가 술 좋아하는 거 알면서. 그럼에도 내가 그동안 이상혁 너랑 만나면서 나름의 금주 생활을 했는데. 고작 어젯밤 한번 고삐 풀린 거 가지고 이렇게까지 혼나야 되나.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한편 이상혁은 억울해 하는 나를 눈치챘는지 


딱콩.-


" 아! "


내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악 소리를 내며 어이없이 이상혁을 바라보았다. "왜 때리는데" 


"너,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


"... 뭐?"


"잘 생각해 봐"


"술 먹은 거..?"


"그걸로 내가 이러는 것 같아?"


"그럼 뭔데, 빙빙 돌려 말하지 마.."


수수께끼처럼 빙빙 돌려 말하는 이상혁에 짜증이 났다. 


"오빠, 나 술 마시는 거 싫어하잖아."


"술 마시러 가는 거 괜찮아. 좀 싫긴 해도 내가 그런 것까지 터치할 자격은 없는데. 거짓말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아"


이상혁의 태도가 이해가 됐다. 이상혁은 술 때문이 아니라 내 거짓말이 맘에 안 들었던 것이다. 


"다음부터는 밤늦게 술자리 갈 때 연락해. 끝나고 데리러 가든 할 테니까."


의외로 순순히 술자리를 허락해 주는 이상혁이었다. 나는 놀라 커진 두 눈으로 되물었다. "...뭐야, 진짜?"

.

.

.


"그니까, 거짓말만 하지마."










*
Gravatar
+) 화해 한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포타에다 올렸던 건데 옮겨왔음다,,

팬플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읽으시는 분들이 있을란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