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인데요

여름감기 <명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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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감기


<명재현>
단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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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이 무겁게 짓눌리는 기분이다. 눈을 게슴츠레 뜨자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또 올 것이 왔구나. 이 지겨운 아침.


오늘 왠지 몸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힘들게 상체를 일으켰다. 12:04 지각은 확정이었다. 


아니, 그보다 다른 게 문제였다. 내 몸이 몸 같지 않은. 징 하게 울리는 소리는 저 창밖 매미소리가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서 울렁였다. 스멀스멀 느껴지는 뜨거운 열감에 온몸을 땀으로 적셨고, 숨을 들이 마실 때마다 칼칼한 따가움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나는 걸리기도 어렵다는 

여름 감기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수업은 이미 늦은 것 같고, 결석 한 번 안 했던 수업이니 결석 한 번쯤이야 F 걱정은 없었다.


폰에 찍힌 부재중 12통, 명재현


지금까지 연락이 없었던 탓인가, 저 부재중 12통에서 명재현의 걱정이 한눈에 보였다.


일어났어?

오전 9시

자기야??

오전 9시 1분

왜 전화가 안 돼?

오전 9시 5분

무슨 일 있어?

오전 10시 1분

응??

오전 10시 2분


...하,

분 단위로 찍혀 있는 메시지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나는 읽자마자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상대로 보내자마자 1이 사라졌다.


미안, 지금 봤어

오후 12시 10분

전화는 왜 안 받아ㅠㅠ

걱정했잖아..

오후 12시 11분

감기 걸린 듯

오후 12시 12분

감기??

많이 아파?

병원은? 약은 ??

오후 12시 12분


내가 한마디 할 때 명재현은 한 두 마디를 더 했다. 조잘조잘 텍스트에 눈앞이 일렁였다. 좀 쉴게라는 말 끝으로 폰을 덮었다. 정말이지 병원 갈 힘조차 없지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니 더 늦기 전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병원에 약 처방까지 받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처방받은 약은 책상 위로 내동댕이치고서 일단 핑 도는 어지럼증에 못 이겨 눈을 감았다. 밥 먹고 약 먹어야 되는데... 

어느새 시야는 흐려졌다.

.

.

.




얼마 뒤 의식을 차렸을 때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귀가 예민해졌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였다. 가스불 소리, 도마 위 칼질 소리, 냄비 위 보글보글 끓는 소리. 순간 엄마인가 싶다가 여긴 내 자취방이란 사실이 번뜩였다. 나는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에 무언가 시원한 게 붙어있다. 폰 화면에 비친 쿨패치..? 그때 부엌부터 가까워지던 발소리에 방문이 열렸다.


"일어났어?"


명재현이었다. 그는 핑크 앞치마에 쟁반 위로 무언갈 들고 들어왔다. 죽, 그리고 약봉지


"언제왔어?" 갑작스러운 명재현의 등장에 벙찐 여주였다. 방금이라 말하면서 재현은 내게 죽을 들이밀었다. 


"밥 안 먹었지? 얼른 먹고 약 먹자" 쑤욱 들이미는 명재현의 손에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언제 또 이런 걸 했나. 좀 의외다. 요리는 젬병일 줄 알았던 명재현이 죽을 다 끓여오다니. 맛은 좀 싱겁지만ㅋㅋ 나름 먹을 만했다. 

죽 한 그릇 다 비우고 나서 처방받아 온 감기 약을 삼켰다. 넘길 때마다 오쬬쬬 잘 먹는다 손 벽치는 명재현에 조금 킹받긴 하다. 애기 취급은 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주는 명재현을 향해서 인상을 찌푸렸다. 명재현은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뭇 진지한 얼굴에 괜히 말이 툭 먼저 나왔다. (..뭘..빤히 봐)


"왜, 뭐. 뭐가."


"아프지 마, 속상하니까"


"..."


나는 주제를 돌렸다.

 "...안 더워? 선풍기라도 틀어도 되는데"


"괜찮아, 나 뜨거운 거 좋아해"


"..."


거짓말.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는 게 다 보이는데 무슨. 그저 명재현은 싱글싱글 웃는다. 괜히 미안하게..


"근데 자기 오늘 좀 귀엽다"


"뭐?"


"어린이 용 쿨패치가 자기 퍼스널 컬러인 듯"


"..."

미안하단 말 취소. 

그새 장난 안치나 했다. 저 낄낄 거리는 웬수 같은 남자가 내 남자라니. 머리 한 대 쥐어박을까 참았다.


"나 이거 안 할래" 나는 이마 위에 패치에 손을 올렸다.

"아, 알겠어 안 놀릴게 봐봐 응?" 명재현은 급하게 패치 하나를 까서는 지 이마에 하나 척 붙여놓았다. 

명재현 이마 위로 뽀로로 쿨링 패치에 웃음이 세어 나왔다. 꽤나 잘 어울려서.


"아, 근데 이거 진짜 시원하다"


"난 좀 식었어"


"그래?"

명재현은 내게 이마를 들이밀었다.


"어때? 이건 시원해?"

명재현은 자신의 이마를 들이밀면서 몸을 내게 밀고 들어왔다. 뺨에 이마를 밀어 넣더니 목덜미를 타고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쿨패치의 감촉보다 명재현의 닿는 머리카락이 살결을 간지럽혔다. 그 탓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ㅋㅋ 어디서 개수작이야"


"읍"

나는 파고드는 명재현의 머리를 덥석 잡았다. 저항없이 막힌 명재현은 빼꼼히 내 눈치를 살폈다. 풀 죽은 강아지처럼 눈동자를 반짝였다. 


"감기 옮아"

나는 저리 가라며 손짓했다.


"괜찮아, 나 감기 좋아해"


"뭔 정신 나간 소리야"


"자기야, 감기는 상대한테 옮겨야 빨리 낫는대"


"그래서?"


"내가 옮아줄게" 명재현은 풀썩 내 위로 올라 왔다. 순식간에 아래 깔린 나는 나의 입을 덥석 막았다. 키스 절대 금지라는 얼굴로 아래에서 명재현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재현은 태연하게 막아선 나의 손등에 입을 가져다 냈다. 쪽쪽 가볍게 입을 맞추며 상관없다는 듯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이 열기가 감기 때문인지 저 녀석 때문인지 모를 낯 뜨거워진 얼굴은 고개를 돌려 질끈 눈을 감았다.

명재현은 살짝 뒤로 물러나 물었다.


"싫어? 싫으면 그만할게"


"..."


나는 망설였다. 이 질끈 감은 눈을 뜨면 명재현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성을 놓을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 유혹은 떨칠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를 천천히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한 번만이야"


쪽 -


.

.

.








***

일반은 진짜 오랭만이오.

현생이 바빠서 도저히 일반을 쓸 엄두가 안 났다오..

짧은 단편이 가볍구 쓰기 편하당게오..😅


다들 살아계실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