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게 생겼더라."
"그래? 걔도 펠 처럼 눈동자 파래?"
"파라긴 한데, 렌즈 껴서 그런 거 같더라."
역시나 그 아이도 학교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바빴다. 모든 아이들이 전학생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아이의 얘기는 여러 곳에서 들렸다. 그게 복도던, 교실이던, 창고던.
"펠, 소문 들었어?"
석진이 창고에서 체육 준비물을 꺼내며 펠에게 물었다. 석진의 물음에 창고 안에서 야구공을 찾던 펠이 행동을 멈추고 석진을 바라보았다.
"프랑스?"
(프랑스?)
"응. 프랑스 여자애가 전학왔는데, 또 우리반이래."
"우리 반이 인원수가 제일 적나 봐?"
펠의 물음에 석진이 놀란 어투로 물어왔다.
"너 반 어떻게 나뉘는지 몰라?"
"응? 한국은 미국이랑 반 다르게 나눠?"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펠의 물음에 석진은 피식 웃었다. 내가 본 애 중에 제일 순수하고, 제일 이상한 애야. 라고 생각하며.
"모르는 게 낫겠다. 그나저나, 이번 전학온 애는 조르고 졸라서 우리반 됐다고 하더라. 느낌이 그렇게 좋진 않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건 직접 보면 알 수 있겠지. 섣부르게 판단해서 편견 갖는 건 싫으니까, 내가 알아서 잘 할게."
석진의 말에 펠은 꽤 표정을 굳인채로 창고를 나섰다. 멀어지는 펠의 모습을 보며 석진이 짧게 탄식했다. 아, 이게 아닌데. 그냥, 친구로서 걱정... 해 준 건데. 짧게 입맛을 다신 석진이 널브러진 물건들 사이에서 찾은 타이머를 한아름 들고 펠 뒤를 쫓아 창고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다 툭- 문을 닫은 순간 떨어진 열쇠에 석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주울 수가 없는데..."
나중에 주으면 되겠지. 라고 작게 중얼거린 석진은 본관 삼 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섰다. 이것만 두고 바로 다시 와서 문 잠그면 별일 없을 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채로.

Seven. Hi, bonjour, 안녕
교실로 향한 펠이 태형의 이름을 불렀다.
"야, 김태형. 너 오늘-."
"어어, 잠깐만."
하지만 한창 반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할 준비를 하는 태형에겐 펠의 부름에 답할 만큼의 여유는 있지 못했다. 상의를 훌렁 벗고선 면티로 바꿔 입고, 축구공까지 챙기고 나서야 태형이 펠을 다시 불렀다.
"무슨 말하려고 했어?"
"아니, 축구 열심히 하고 오라고."
하지만 이미 펠의 결심은 부서지고 난 후였다.
"그래 뭐... 김석진이랑 잘 있어라."
딱히 펠의 행동에 신경 쓰진 않는 듯 태형이 제 친구들과 무리지어 우르르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런 태형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던 펠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타이밍, 되게 구렸다.
***
"김석진~ 어제 김태형네 갔다왔다며."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체격을 가진 남자아이가 장난스럽게 석진의 목을 팔로 감싸왔다.
"아, 준혁이냐."
"그래, 짜식아. 어째 반 바뀌고나서 연락 한 번이 없냐."
"넌 게임 아니면 농구 얘기잖아."
석진이 귀찮다는 듯 손을 공중에 휘적이자, 준혁이 석진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너는 좀 운동해야 돼. 이거 봐, 피부가 아주 뽀얗네. 무슨 밀가루야 밀가루."
"피부랑 운동이랑 무슨 상관이냐."
석진이 어이없다는 듯 준혁의 머리를 가볍게 손으로 쥐어박자, 준혁이 머리를 손으로 감싸쥐며 아픈채를 했다.
"와, 나 머리 부서진 거 아니야? 대가리 반 쪽난 거 같은데."
"지랄, 빨리 꺼져."
너른 준혁의 등판을 주먹으로 퍽퍽 치며 준혁을 내쫓은 석진이 다시 평화롭게 복도를 걸어갔다. 이제, 과학이랑, 수학 독서록만 쌤들한테 내고..., 봉사시간 조금만 더 채우면 되니까 쌤한테 몇 개 여쭤봐야겠다. 그리고 또. 온통 생활기록부 생각으로 가득 찬 채로 복도를 거닐던 석진에게 작은 무언가가 부딪혔다.
"아, 죄송..."
"흡...!"
가볍게 부딪혔다 생각해서 사과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귓가에 꽂히는 축축한 목소리에 석진은 당황하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자, 뒤로 넘어진 듯한 작은 여자아이가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게 눈에 담겼다.
"죄송합니다, 다른 생각하다가..."
"발목 다친 거예요? 괜찮...아요?"
석진이 당황하며 여자를 달래보려 하였지만, 작은 그 여자아이는 발목을 잡은채로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쉰 석진이 겉옷을 벗어 여자 아이의 다리에 덮어주곤 그대로 번쩍 들어올렸다.
"...보건실, 데려다 드릴게요."

***
"미안, 놀랐지."
"나도 내 발목 다치고 너무 놀라서, 울어버렸네."
155cm 정도의 아담한 키에 곱슬거리는 흑발을 가진 여자아이는 자신을 '이본드 다비드'라고 소개했다. 훌쩍훌쩍 울며 콧물까지 줄줄 흐르는 와중에도 그녀는 활짝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전학 온 그 분인가 봐요."
석진이 이본드의 발목에 붕대를 감아주며 물었다. 어색해지는 걸 막기 위한 형식적인 말이었지만, 이본드는 지나치게 기뻐하는 듯 했다.
"응! 한국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었어. 그래서 한국어 공부도 엄청 열심히 했다구."
"넌 이름이 뭐야?"
"일 학년 일 반 김석진입니다."
어느새 테이프로 붕대를 단단히 고정하는 것까지 마친 석진이 깍듯이 인사를 하고 보건실을 빠져나왔다. 홀로 보건실에 남겨진 이본드는 삐죽 입술을 내밀고선 투덜거렸다.
"좀만 더 있지..."
***
"귀찮으니까 짝궁이랑 둘씩 조 짜는 걸로 하자. 이의 없지? 있으면 교장 선생님 통해서 말하고."
으아악, 그게 뭐예요 쌤! 하는 볼멘 소리들이 교실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교장 선생님 통해서 이의를 제기하라니. 원래는 거꾸로 되야 하는 거 아닌가? 역시 국어 쌤은 국어의 감성 따위는 일도 없는 최고의 귀차니스트인 게 분명하다.
"음."
일방적인 선생님의 통보에 불만을 품은 건 펠의 짝궁인 석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펠이 곁눈질로 눈동자를 도르륵 굴려 석진을 쳐다보자 벌써부터 우중충한 낯빛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 석진의 상태를 눈치 챈 펠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한텐 피해 안 가게 열심히 할게."
"어?"
"꼼꼼하게 자료 조사하고 그런 건 내가 잘 못해서. 자료 조사하고 방향만 잡아 주면 PPT랑 발표는 잘 할 수 있어."
"...미안."
"뭐가 미안해. 자료 다 조사하면 이메일로 보내줘. 나도 발표 자료랑 대본까지 다 작성하면 메일로 보내 줄게."
펠이 주섬주섬 가방을 싸며 말했고, 석진은 벙찐채로 펠의 이야기를 듣다가 픽 웃음을 터트렸다. 펠은 그런 석진을 보며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석진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펠은 그 웃음이 싫지 않아서, 덩달아 웃어 주었다. 옆에서 들리는 석진의 목소리가 꼭 실로폰 같다는 생각을 하며.
"펠, 너 진짜 이상한 거 알아?"
"그거 욕 맞지?"
"아니, 나 이상한 거 좋아해."
화사한 분위기에 휩쓸려 석진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늘 머리속으로만 생각했던 그 말. 이상해서 좋아. 이상해서 좋아. 이상해서....
"미친... 교무실, 교무실 가 볼게!"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석진이 우당탕 의자에 걸리고 책을 와르르 쏟으면서도 뒷문으로 향했다. 정작 펠은 그게 친구끼리의 애정 표현인 줄로 알고 있는지도 모른채로.
***
"펠."
종례가 끝나고 나서야 교실에 나타난 석진이 펠을 불러 세웠다.
"오늘 시간 있어?"
"시간 있으면 같이 공부라도 하게."
"조별 과제는?"
"아, 그건 방학 동안 해 오면 되는 거라 별로 안 급해."
"음..., 그래. 어디서 할까?"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딸기스무디 하나 주세요."
석진이 검정 보드에 심플하게 적혀져 있는 메뉴판에서 눈을 때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곳 카페의 이 층은 석진이 가장 좋아하는 볼륨의 소음이 만들어지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석진은 의외로 도서실에선 집중을 더 못하는 편이었다.
석진이 잠시 주문을 하러 나간 사이, 익숙한 교복이 펠의 눈앞에 나타났다. 명찰색을 보니 새하얀 일 학년이었다. 아마도 이 아이는...
"안녕?"
"3반?"
"어? 나 아네?"
"그냥... 대충."
"잘 됐다. 사실, 내가 너한테 부탁이 하나 있거든."
"뭔데?"
라고 되묻는 펠에 3반으로 추정되는 남자 아이가 펠의 두손을 덥썩 잡으며 애원했다.
"내가, 아는 3학년 선배가 있거든."
"근데 그 선배가 이번 단체 소개팅 때 너 꼭 좀 끼워달라고 해서..."
"좀 무섭긴 한데 절대 나쁜 사람은 아니고...! 싫으면 에프터도 안 가져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처음 보는 남자 아이가 펠의 눈에는 퍽 곤란해 보였다. 한국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경계가 뚜렷한 예의지국이라는 말도 들어보긴 했다. 하긴, 존댓말까지 있는 걸 보면... 앞에 서 있는 이 남자가 제 손을 생명줄 마냥 붙잡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됐다. 무엇 보다 잔뜩 겁먹은 그 낯짝에 감정 이입이 너무 잘 된 나머지,
"할게."
질러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