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없이 떨어지는 빗소리의 끝이, 내 머리끝이 아닌 활짝 핀 우산에서 끝났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아, 그건, 그건 그냥..."
(아, 그러니까 그저...)
그가 건낸 말이, 무심해 보여도 그가 내게 말을 건낸 그 의도가, 행동이, 말투가, 그 안에 담긴 그 마음이 하나 같이 너무 따뜻해서,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혹시 한국말 잘 못 하시나?"
"아니, 그건 아닌데..."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우산을 넘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니, 아까 그 남자다. 나를 향해 잔뜩 날을 세운 남자와 함께 사라진 그 남자.
그리고 미련하게도 그 남자는 차가운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투둑투둑.
어두운 밤, 가게 곳곳에 켜진 네온사인 간판도, 차갑게 떨어지는 빗물도, 몇 번이나 초록불에서 빨간불로 바뀐 횡단 보도도, 길거리를 바삐 지나다니는 사람도. 그 무엇도 그 남자 보다 강렬히 내 눈길을 끌지 못했다.
"우산, 같이 써요."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따라 물방울들이 하나 둘 아래로 떨어져, 그의 어깨를 한 번 더 적시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자니, 어느 순간 내 마음에 불빛 하나가 켜져 있었다.
아, 정말 이상한 사람.
***
작은 우산 안에서 부대껴 나란히 걸어가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펠이었다.
"고마워요."
작게 읊조린 한 단어가 공기를 타고 석진에게 전해졌다.
"오늘 날씨가 엄청 덥고 습하네요. 하필 비까지 와서."
"그러게요."
그 말을 끝으로, 그 둘은 한동안 빗물이 잔뜩 흩뿌려져 있는 아스팔트 길을 소리 없이 걸었다. 그러다 다시 한 번 말을 꺼낸 쪽은 이번에도 펠이었다.
"우연이 되게 특이하네요. 그럴 때 마침 만나고."
"운명인가 보죠."
"오글거려요."
운명이라는 석진의 말에 어딘가 묘하게 안개가 낀 것 같았던 펠의 얼굴에 말간 빛이 서렸다. 펠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농담도, 행동도 모두 이상한 사람. 근데 이상해서 따뜻하고, 이상해서 좋은 사람.
그리고 처음으로 보는 펠의 웃음에, 석진도 덩달아 살풋이 웃었다. 그냥 펠이 웃는 걸 보니 저도 같이 웃게됐다. 습해서 그런가 보다, 공기가 뜨거워서 그런가 보다. 그저 공기가 따뜻해서, 그녀의 감정이 더 잘 전달된 것 뿐이다. 석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Two. 해가 뜬 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