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긴한데요

설레는 중 입니다+

체육대회 점심시간.


운동장 뒤편 그늘에 앉아 있던

**김여주**는

종이컵을 괜히 구기고 있었다.


아까 손 잡은 거.


아직도 손바닥이 뜨거웠다.


“…미쳤네 진짜.”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들렸다.


“상혁아, 물 마셔.”


고개를 들자

또 그 여자애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이상혁.


여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자애는 아예 상혁 바로 옆에 붙어 서 있었다.


“아까 경기 멋있었어. 진짜.”


“…고마워.”


상혁 대답은 짧았다.


여자애는 웃으며 더 다가섰다.


“다음 계주도 나가? 응원해 줄게.”


“…괜찮아.”


“왜~ 나 응원 잘하는데.”


“…진짜 괜찮아.”


말은 부드러웠는데,

딱 거기까지라는 선이 느껴졌다.


여자애가 물병을 내밀었다.


“이거 마셔. 내가 사온 거야.”


상혁은 잠깐 보더니 말했다.


“…고맙긴 한데.”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나 물 있어.”


“…아 그래도—”


“진짜 괜찮아.”


톤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여자애 표정이 살짝 굳었다.


“나랑 좀 걸을래?”


“…왜?”


“그냥 얘기 좀 하려고.”


잠깐 침묵.


상혁이 한숨을 작게 쉬었다.


“…미안한데.”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런 거 할 생각 없어.”


여자애 눈이 커졌다.


“…뭐?”


“나 지금 누구랑 걷고 싶지 않아.”


“…왜?”


상혁은 잠깐 시선을 돌렸다가,

운동장 쪽을 봤다.


그 방향에 여주가 있었다.


“…그냥.”


“그냥이 뭐야.”


“…오해할까봐.”


여자애가 멈췄다.


“…누가.”


상혁이 짧게 말했다.


“내가 신경 쓰는 애.”


여주 숨이 멎었다.


여자애 얼굴이 굳었다.


“…걔 좋아해?”


상혁은 바로 대답 안 했다.


대신 말했다.


“…상처 주기 싫어.”


그 말이 더 확실한 대답이었다.


여자애가 입 다물었다.


“…그래.”


잠깐 웃어 보이더니 돌아섰다.


“…알겠어.”


그리고 그대로 가버렸다.




여주는 숨도 못 쉬고 앉아 있었다.


“…미쳤다.”


심장이 진짜 난리였다.


그때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김여주.”


고개 들자 상혁이었다.


“…다 들었어?”


“…어.”


“…”


“…왜 그렇게까지 해.”


상혁이 멈칫했다.


“…뭐가.”


“그냥 적당히 넘어가도 되잖아.”


“…안 되거든.”


“…왜.”


상혁이 조용히 말했다.


“…네가 보잖아.”


여주 심장이 멎었다.


“…뭐?”


“네가 보고 있는데.”


“…그래서?”


“…괜히 오해할까봐.”


“…무슨 오해.”


상혁이 한 발 다가왔다.


“…내가 아무나 좋아하는 줄 알까봐.”


여주 숨이 막혔다.


“…야.”


“…응.”


“…그럼 누구 좋아하는데.”


상혁이 웃었다.


“…아직 몰라?”


여주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몰라.”


“…거짓말.”


“…몰라 진짜.”


상혁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럼.”


“…응.”


“조금만 더 티 낼까.”


“…뭐?”


“확실하게.”


여주 심장이 또 떨어졌다.


“…야 잠깐—”


상혁이 자연스럽게 여주 옆에 앉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정도면 알겠지.”


손이 다시 스쳤다.


이번엔 여주가 먼저 잡았다.


“…알겠어.”


“…뭐.”


“…확실히.”


상혁이 웃었다.


“…다행이다.”

체육대회가 끝날 무렵.


운동장은 이미 정리 중이었고

학생들은 삼삼오오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김여주**는

가방 끈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집 가야 하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김여주.”


뒤에서 불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이상혁.


“…왜.”


“같이 가.”


“…왜.”


“같이 가고 싶어.”


여주는 한숨을 쉬었다.


“…너 원래 이렇게 직진이었냐.”


“…아니.”


“…그럼 왜 나한테만 그래.”


상혁이 잠깐 멈췄다.


“…너니까.”


심장이 또 미친 듯이 뛰었다.


둘은 학교 정문까지 말없이 걸었다.


바람이 불고,

체육복이 살짝 스쳤다.


여주가 먼저 입 열었다.


“…아까.”


“…응.”


“…그 여자애.”


“…응.”


“…미안하다고 했냐.”


“…응.”


“…왜.”


상혁이 대답했다.


“…헷갈리게 해서.”


“…헷갈릴 만했지.”


“…그래서 정리했어.”


“…뭘.”


상혁이 멈춰 섰다.


“…내가 좋아하는 애.”


여주도 멈췄다.


“…그래서.”


“…확실히 하려고.”


“…뭘.”


상혁이 조용히 말했다.


“…김여주.”


“…응.”


“…나 너 좋아해.”


공기가 멈춘 것 같았다.


“…진짜로.”


“…응.”


“…장난 아니고.”


“…응.”


“…오늘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니고.”


“…아니.”


“…나 그냥 좋아.”


여주 눈이 조금 흔들렸다.


“…언제부터.”


“…꽤 됐어.”


“…왜 말 안 했어.”


“…도망갈까봐.”


“…지금은 안 도망갈 것 같냐.”


상혁이 웃었다.


“…지금도 무서워.”


여주는 잠깐 내려다봤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안 도망가.”


“…진짜?”


“…응.”


“…그럼.”


상혁이 숨 고르듯 말했다.


“…나랑 사귈래.”


여주 심장이 턱 멎었다.


“…야.”


“…응.”


“…이거 나 울면 책임질 거냐.”


“…응.”


“…나 진짜 좋아하는데.”


“…알아.”


“…상혁아.”


“…응.”


“…나도 너 좋아해.”


그 순간 상혁 표정이 풀렸다.


“…다행이다.”


“…왜.”


“…오늘 하루 종일 불안했어.”


“…뭐가.”


“…네가 안 잡아줄까봐.”


여주가 손을 내밀었다.


“…잡아.”


상혁이 바로 잡았다.


“…이제 안 놔.”


“…응.”


“…진짜로.”


“…응.”


둘은 그렇게,

체육대회 끝난 운동장 앞에서

아무도 모르게 손 잡고 사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