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만 한 과외선생
첫 데이트 1

쿠션베개
2025.03.14조회수 173
배부되었다. 재빨리 받아든 종이를 가방 속에 구겨넣어
버렸다. 아직 성적을 볼 준비가 안됐으니까.
"송도아 뭐하냐? 성적 망함?"
"닥쳐라."
친구인 하연이 옆에서 깐죽거리는 걸 그냥 무시한채
가방을 쌌다. 자기는 성적 잘나왔다고 유세떠는 모양인데,
정말 이번만큼은 꼴보기 싫다.
"너 과외한다며."
"몰라 이씨 난 망할거야!"
"갑자기 왜 급발진;"
나는 대꾸없이 책상에 얼굴을 눌렀다.
진짜 망한거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내 우울감은 예상외로 성적표를
보자마자 사라졌다.
'헐 4등급 나왔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영어 수학에서 4등급이 나온 것이다!
국어는 5등급이지만. 어쩔수 없지.
"도아 성적 많이 올랐네?"
"잘했지?"
"그럼, 잘했어."
엄마의 칭찬을 받고나서 서둘러 선생님한테 카톡을
보냈다. 이 기쁜 순간을 나누지 않을 수 없지.
'쌤 저 4등급 나왔어요!!!'
'그래 고생했다'
'데이트 약속 지켜야돼요??'
'ㅇ'
영 안내키는지 대충 초성 하나로만 답한다. 뭐야,
뭐든 들어준다고 한게 누군데. 하여간 까칠해.
'이번주 토요일 시간돼요?'
'어'
'10시 아파트 정문 앞에서 봐요
이쁘게 입고 와요 평소처럼말구'
읽음 표시는 뜨는데, 답이 안온다. 읽씹인가?
그래도 데이트 승낙받은게 어디야. 지금부터는 토요일을
기분 좋게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드디어 고대하던 토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일찍 눈을 뜬 내가 부랴부랴 밥 먹고 씻고 옷을 갈아입자
엄마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주말 아침부터 정신없게 뭐하니."
"어 나 친구만나러 갈라고!"
"얼씨구 성적 나오자마자 놀러가냐."
엄마는 곧 시선을 거두고 리모컨을 집어들었다.
혹시나 했는데 안들켜서 다행이었다. 나는 얼른 구두에
발을 끼워넣었다.
너무 빨리 나온 탓에 한참을 기다리게 되었다. 괜히
설레발 쳐서는. 하염없이 구두코만 쳐다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에 성큼 다가왔다.
"안녕."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분명 선생님이 맞지만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반쯤 뒤로 넘긴 앞머리, 검은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굉장히 낯설다.
"쌤 오늘 스타일이 많이 다른데요."
"평소처럼 입지 말라며. 왜, 이상해?"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오히려 찰떡이라 좋기만한데.
"아뇨? 겁나 잘생겼어요."
"그럼 다행이고. 으음..."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날 빤히 쳐다본다. 어쩐지 긴장되서
마른침을 삼켰다.
"너도 평소랑 다르네."
"당연히 그렇죠!"
"더 예뻐."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한 듯 얼어붙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쌤 방금 뭐라고..."
"가자. 버스 시간 다됐다."
그 무심한 말투에 설렐줄 누가 알았겠냐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를 뒤따라갔다.
오늘은 최근들어 제일 즐거운 하루가 될 듯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