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만 한 과외선생

첫 데이트 2

버스를 타고 한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복합상가의
영화관. 여길 선생님과 함께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기, 쌤은 무슨 영화 좋아해요?" 

잠시 뜸들인 그가 손가락으로 한 포스터를 가리킨다. 

"저런거." 

그리고 난 그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으, 뭐야. 
공포영화잖아. 

"공포영화... 무서운데." 

"무서우면 딴거 봐, 내 눈치 보지말고." 

선생님의 배려는 고맙기 그지없지만 왠지 약간의 허세를 
부리고 싶어졌다. 어쩌지, 이번 기회에 쫄보 탈출해봐? 
곁눈질로 옆을 쳐다보자 흥미로워하는 그의 눈빛이
돋보였다. 

"괜찮아요! 이거 봐요." 

"진짜?" 

"저 그렇게 겁많은 사람 아니에요." 

"참나... 나중에 질질 짜지나 마라." 

나는 용기를 내려고 어깨에 힘을 주었다. 이깟게 뭐 그리
무섭겠어. 어차피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꺄아악!!!" 

내 예상과 달리 전혀 괜찮지 않았다. 왜 이렇게 무섭냐고
이거! 
비명을 지르는 때마다 팝콘이 우수수 떨어져 선생님의 
무릎위에 안착한다. 

"쌤 죄송해요." 

"그러게 다른 거 보랬잖아. 지금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망정이지." 

선생님은 내 반응이 창피한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아 진짜. 지금 제일 창피한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무서우면 아예 눈을 감던가." 

"안보면 티켓값 아깝잖아요." 

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안보는 것 만큼 손해인게 없을거다. 
손 틈새로 겨우 무서운 장면을 보고 있는데, 

내 머리 위로 야구모자가 씌워진다. 

"송도아, 그 돈 내가 낸거다? 신경쓰지 말고 보기 
 싫으면 안 봐도 돼." 

그 투박한 손길이 머리에 닿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
같았다. 살짝 떨리는 손으로 모자를 벗었다. 

"일부러 씌워준건데." 

"저 쌤 얼굴이나 볼래요. 그럼 안무서울것 같아서." 

"?내 얼굴은 뭐하러... 아니다, 맘대로 해." 

그 후로 영화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나는 선생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옆모습도 진짜 잘생겼네. 한참 
보고있는데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대개 공포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이는 
반면, 선생님은 표정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심각한 얼굴을 하고있다. 저에게 실제로 나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영화관을 나와서 식당가를 둘러보는 그때 결국 호기심에
못이겨 물어봤다. 

"아까 영화볼때 표정이 안좋던데 왜그랬어요?" 

"으음. 그거." 

선생님이 뜻밖에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여태 내가 겪었던 일이랑 겹쳐서. 그 내용이." 

이해가 안가는 대답이다. 왜냐하면 그 영화는 주인공이 
예견하는 대로 무서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내용이었으니까. 
그걸 진짜로 겪어봤다니 말이 안되지 않나? 

"...이해 못하겠지." 

"네. 솔직히." 

"몰라도 돼. 넌 지금처럼 잘 지내기만 하면 되는거고." 

선생님이 야구모자를 고쳐쓰며 인상을 누그려뜨렸다. 
저걸보니 지금은 가만히 있어야겠다. 

"너무 분위기 잡았나? 밥이나 먹으러가자." 

"그럼 저기 파스타 맛집 있는데 거기 가요."

내가 앞장서 걸어가자 그가 뒤따라온다. 
그러나 얼마 안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코를
부딪히고 말았다. 

"쌤 갑자기 끼어들면 어떡해요.
 아으, 코 아파." 

"움직이지 마!!" 

"네?" 

그 순간 가게 문이 세차게 열리더니 깨진 유리병을 든 
남자가 뛰쳐나왔다. 제압하려고 안간힘 쓰는 직원과 함께. 

"넌 여기 있어." 

날 두고 재빨리 달려나간 선생님은 그 남자의 손목을 
비틀어놓은 후 유리병을 뺏어들었다. 

"아아아악!!!" 

남자의 절규를 듣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강심장인가. 

"혹시 경찰은 부르셨어요?" 

"네 방금 불렀습니다." 

"올때까지 도망 못가게 잘봐요. 도아야, 가자." 

속전속결로 일처리를 마친 선생님이 건너편 식당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내가 방금 뭘 본건지, 얼떨떨한 기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해물 파스타를 앞에 두고도
깨작거릴 줄이야. 그게 신경쓰였는지 내 앞으로 접시를 
밀어주었다.

"와 방금 쌤 초능력자 같았어요." 

"놀랐냐?" 

"당연한 소릴.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아무 낌새도 없었는데." 

"직감이지."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에 넣고 씹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기만 하다가 서서히 생각에 잠겼다. 뭔가 숨기는 것
같지만 굳이 캐묻진 않겠다. 

"그렇게 판단이 빠를줄은 몰랐네요. 목소리도 크시고." 

"크흠. 일이 닥치다보니까." 

"저번처럼 저 다칠까봐 걱정한거죠? 
 역시 무뚝뚝해도 다정해." 

내 말에 선생님이 빙그레 웃는다. 잠깐 스치듯 서글픈 
눈짓을 했지만. 

"너하고 계속 이렇게 지내도 좋을텐데." 

"가, 갑자기요? 왜??" 

사레 들릴 뻔 했네.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너 하는 짓이 웃기거든. 방금 그 반응처럼." 

설마 놀려먹은거야? 내 리액션 과하다고? 

"아악 쌤 진짜!!" 

"하핫." 

저 비웃는 목소리는 또 뭐람. 하여간 기대한 내 잘못이지. 
그래도 평소보다 기분은 좋아보여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