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만 한 과외선생

많이 무서웠어?

그 데이트 이후로 선생님은 몰라보게 냉담해졌다. 
딱히 서글서글하거나 밝은 이미지는 원래도 아니긴 했지만 
그 시크함의 농도가 더 짙어졌다고 해야 하나. 약간씩 
주고받던 스몰토크도 이젠 잘 안하게 되었다. 
내 옆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게 언젠데, 
벌써 변심 한건가? 

"저기요 쌤." 

"왜." 

"요즘 너무 쌀쌀맞게 구시는거 아니에요?" 

"나야 뭐 원래 이랬잖아." 

"저번에는 그렇게 다정하더니." 

"그건 네가 원하는거 같아서 해준거고." 

내가 한숨을 쉬는 것도 무시한 그는, 두꺼운 문제집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나가버렸다. 이거 다 풀어오라는
거겠지. 숙제 참 많기도 하다... 
선생님 덕에 성적은 많이 올랐지만 영 관계 진척은 없잖아. 
진짜 나혼자 김칫국만 마시고 있는건 아닐지 걱정이다. 
외사랑은 힘들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네. 

마음이 심란하다는 이유로 오늘 공부는 패스하기로 했다. 
변명 같다해도 어쩔수 없지. 





그렇게 우울한 하루를 보낸 다음날, 나는 예상밖의 일을
겪게 되었다. 밤 9시를 넘긴 시각.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터벅거리는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져 
괜히 더 씩씩하게 걸었다. 대체 이놈의 가로등을 고칠 
생각이 있기는 한건지. 아직도 깜박거리고나 있고. 

'누구라도 있으면 덜 무서울텐데.' 

예를 들면 그 선생님이라거나. 어차피 나타나지 않을테니 
헛된 꿈일 뿐이지만. 
아쉬움을 누른 채 다시 열심히 걷는데, 

터벅-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터벅. 

내 뒤에서 멈춰섰다. 누구지? 나는 용기를 쥐어짜 
천천히 뒤돌아보았다. 
검은색 바람막이를 입은 사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않고 나를 주시하는 것에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그 사람이 움찔거린 순간 뛰기 시작했다. 
모든 체력을 다 쏟아내면서 내달렸다. 멈추면 죽을지도 
모른다.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나름 빠른 속력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기척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렇게 따라 잡혔다 싶을 즈음, 

뒤에서 작게 욕을 읖조린 그 사람이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뭔가 보고 도망간걸까? 
경찰차라도 봤나 싶은 생각에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내 뒤에서 들려온 건 뜻밖의 목소리였다. 

"도아야...!!" 

놀랍게도 그곳에 선생님이 있었다.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그는 날 마주하자마자 품에 끌어안았다. 

"저기? 쌤 왜그래요." 

처음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 내 어깨를 
토닥이면서 서글프게 울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그를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강철멘탈처럼 여겨온
내게는 그 모습이 퍽 당혹스러웠다. 
이게 그 쌀쌀맞던 인간 맞냐고. 

"어디 다친데는? 없는거지?" 

"없어요. 그만 울어요..." 

졸지에 내가 그를 진정시키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건 그거고, 내가 있는 데를 어떻게 알고 왔지? 
마치 내게 일어날 일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많이 무서웠어?" 

"아깐 무서웠는데 괜찮아요." 

나를 더 세게 껴안는 탓에 숨쉬는게 조금 힘들긴 했다. 
그래도 별수 있겠는가. 이리도 서럽게 우는데 일단 가만히 
있어야지. 

"...미안해 다음엔 더 빨리 올게." 

저 죄책감에 무슨 사연이 있으려나. 
나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눈물이 멎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