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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왜 그래, 갑자기.
— 그만 하자···.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동안 고마웠어. 고마웠어요, J 씨.
— 어디 가!
난 그만 돌아섰고, K는 내 손목을 잡아 돌려세웠다. 난 K 얼굴을 한 번 보고 그의 손을 떼어놓고 다시 돌아섰다. 같은 날에만 대체 감정을 몇 개나 겪는지 모르겠다.
— 데려다 줄게. 데려다주는 건 하게 해줘. 어?!
— 그만해, K. 여주 씨 더 잡았다간 진짜 못 볼 수도 있어.
— 아니 진짜 왜 그러는 거야.
— 그러게···. 많이 힘들었나.
— 저렇게 마음도 약한 애가 뭘 보스를 죽이겠다고 나서서. 하···.

‘띠띠띠띠띠띠’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발을 디뎠다. 되게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오늘은 유난히 반가움보다는 쓸쓸함이 꽤 많이 다가왔다. 하지만 그 쓸쓸함도 잠시 전화벨이 울렸다.
— 그만 하지니···.
K인 줄 알았는데 다름 아닌 병실에 계신 우리 엄마를 돌봐주고 계시는 병원 이모의 전화였다.
📞 네, 이모. 무슨 일 있어요?
📞 바쁠 텐데 미안하구나. 상황이 좀 많이 급해서.
📞엄마한테··· 무슨 일 생긴 거예요?
📞그··· 놀라지 말고 들어. 어머니··· 좀 전에 돌아가셨어.
📞네?!!
나는 5초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집 밖으로 뛰어나가 택시를 탔다. 엄마가 살아있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건 알았지만,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얼굴도 못 본 지 오래인데 이대로 끝이라고 하니 세상이 무너져 내린 것만 같았다. 내가 직접 보기 전까지는 엄마가 살아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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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엄마!!! 엄마, 일어나 봐. 엄마 딸, 여주 왔어. 응? 엄마··· 흐흑···.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엄마···.
— 어머니가 잠깐 깨어나셨을 때 여주한테 미안하다고 그러시더라···.
— 엄마가 뭘 미안해···. 내가 다 미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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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칠 정도로 펑펑 울다가 병원 로비로 내려와 TV 앞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러더니 뉴스가 나오더라. 그것도 아빠 이야기가. 3년 전 우리 아빠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인 거로 밝혀졌고, 아빠를 죽였던 조직 보스는 끝내 자살했다고. 내 목표는 이루어졌지만, 내 마음은 나아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엄마가 이걸 보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아빠···, 하늘나라에서 엄마 만나면 내가 이런 짓을 했다는 건 말하지 말아줘.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하자, 아빠···.
— 여주야···.
— 아빠···?

— 하여주, 너 괜찮아?
— K···?
— 왜 나보고 아빠래. 너 괜찮은 거 맞아?
— 괜찮아···.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 너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했잖아···. 네가 갑자기 막 달려가길래 걱정돼서 왔어.
— 진짜 너 말 안 듣는다.
— 마음대로 하라며, 네가.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킬 거야. 그게 내 일이니까.
— ···J 씨는.
— 저기···.
K가 모서리에 있는 기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그곳을 쳐다보니 기둥 하나에 겨우 몸을 숨기며 빼꼼 나를 쳐다보고 있는 J 씨가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슬그머니 내 쪽으로 왔다.
— 참ㅋㅋㅋ
— 웃었다··· 드디어.
— 진짜 둘 다 못 말린다.

— 여주 씨, 우린 진짜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 누가 그렇게 숨어서 훔쳐보래요.
— 하하···.
— 진짜··· 마음 다잡았는데 왜 다시 흔드는 거야. 왜 나타나서···.
— 지켜주고 싶어, 널. 킬러가 아니라 너의 남자친구로서.
— 어···?!

— 그··· 좋아해. 네가 계속 신경 쓰이고 지켜주고 싶고 걱정되고.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널 좋아하는 거 같아.
— ······.
J 씨는 다시 슬그머니 빠져주었고, K와 나는 병원 로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솔직히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K가 날 좋아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 지금 뭘 대답해 달라는 건 아니야. 이제 너의 곁에 내가 있어 주고 싶어. 오늘은 슬픈 날이니까 마음 정리 좀 하고 진정되면 너의 집 앞에서 손짓으로 표현 한 번만 해줘. 그럼, 그거 보고 내가 판단할게. 기다릴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홀린 것처럼. 그땐 킬러로써 날 유혹하더니 이번엔 K 아니, 전정국으로써 날 유혹한다. 사실 난 K가 마냥 단순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 사람이면 한번 기대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한 거 같다.

[3주 뒤]
엄마 장례식까지 모두 마치고 집에만 있은 지 벌써 3주나 지났다. 그동안 난 집 앞에서 K에게 아무런 신호도 주지 않았다. 사실 그때 병원에서는 잠깐 흔들린 건 맞다. 하지만 지금 날 노리는 사람은 있고 아무리 K가 강하다 할지라도 내 옆에 있으면 다칠 확률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나 때문에 다치는 사람이 이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마음은 한결같다. 다쳐도 그냥 나만 다치고 싶다.
‘띵동-’
— 누구세요?
누구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길래 인터폰으로 한 번 봤는데 아무도 없어서 살며시 문을 열고 나가 보았다. 문을 여니 쪽지 하나가 툭 떨어졌고, 역시 아무도 없었다. 쪽지를 열며 집으로 다시 들어가 천천히 읽어보았다.
***
오랜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