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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좀 만나자.’
누군지 적혀있지는 않았고 딱 이렇게만 적혀있었다. 이런 얘기 할 사람은 K밖에 없는데 굳이 왜 폐쇄된 조직에서 만나자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핸드폰을 열어 K에게 전화하려고 하던 찰나 이제야 생각났다. 그때 내가 K와 J를 떠났던 날, 전화번호를 지웠다는 것을.
— 대체 무슨 꿍꿍이야. 그냥 불러내면 될 것이지 쪽지만 남기고 튀냐. 나쁜 자식···.
나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집을 나섰고, 막상 조직까지 가려니까 귀찮았지만, 그래도 뭔 할 얘기가 있는 거겠지 하며 순순히 갔다. 아, 그렇다고 내가 마음을 바꾼 건 아니다. 나는 내가 지킬 거고,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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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 도착했고, 내리자마자 저 멀리서 누군가 한 명이 서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봐도 체격이 K 같지도, J 같지도 않았다. 더 뚜렷하게 보려고 가까이 가려던 찰나, 누군가가 나를 옆으로 끌어내 입을 가렸다.
— 읍···!
— 쉿.
그는 다름이 아니라 K였다. 저기 멀리 있어야 할 K가 왜 내 눈앞에 있는 건지, 그럼 저 사람은 누군지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던 것도 잠시 K가 차로 데려갔다.
— 여주 씨, 괜찮아요?
— J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 일단 출발해 K.
— 응, 저 사람 민윤기야.
— 민윤기···? 그때 그?
— 맞아. 너 이용한 거야. 대체 생각도 없이 여긴 왜 온 거야.
— 아니···. 난 당연히 너인 줄 알고.

— 그럼 전화라도 해서 확인해야지. 큰일 날 뻔했잖아. 내가 얼마나 조마조마하면서 왔는지 알기나 해?
— 왜 갑자기 화내···.
— K 엄청 걱정하면서 왔어요. CCTV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 미안해요···.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 일단 우리 아지트로 가자. 너 이 상태로 집에 가면 분명 또 무슨 일 일어나.
— 응···.
— 이제 부정 안 하네?
— 아니···. 무서워, 사실···. 진짜 너 아니었으면 나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 J 형한테 고맙다고 해. 형이 너 발견한 거니까.
— 아, 고마워요. 진짜.
— 이제 뭐 혼자 알아서 한다. 이런 얘기 하지 말기. 알겠죠?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 얼마나 든든해. 그렇죠?
— 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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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먼저 들어가. 나 여주랑 얘기 좀.
— 오케이~
— 무슨 할 얘기?
— 너 나한테 말 안 해준 거 있잖아.
— 뭐?
— 뭐야. 까먹은 거야···?
— 어···.
— 됐다. 들어가자.
— 왜 뭔데.
— 몰라. 빨리 들어와라.
그런데 진짜 기억이 안 났다. 내가 뭘 까먹고 있는 게 있는 건가? 내가 뭘 말 안 해줬는지 기억이 도통 나지 않았다. 정신이 진짜 하나도 없는 거 같다. 왜 내 삶은 평탄할 수 없는 건지. 어쩔 수 없는 인생인 거 같다.
— J 씨. 제가 혹시 K한테 말해야 하는데 안 한 게 있어요?

— 네? 무슨 말?
— 그렇죠? J 씨도 모르겠죠.
— 와··· 그걸 또 형한테 물어보고 있어? 형이 어떻게 알아. 진짜 너무한다.
— 진짜 뭐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미안해···.
— 다시 나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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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너 좋아한다고 그랬던 거!!
— 아···?
— 진짜 까먹었던 거야?
사실 좀 전에 눈치챘다. 그냥 모른 척하고 싶었던 것 같다. K가 싫은 게 아니라 지금 내 처지에 누굴 좋아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사실대로 말할게. 음··· 사실 내가 지금 누구를 좋아할 처지는 아닌 거 같아.
— 아···.
예상한 답변은 아니었는지 표정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다시 나를 제대로 쳐다보고 말하곤 했다.
— 이해해. 내가 천천히 다가갈게. 너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 너···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구나?
— 이제 알았어?
— 아니ㅋㅋㅋ 그냥··· 속이 따뜻한 사람 같아, 넌. 제대로 말 못 한 거 같은데, 나 아까 지켜줘서 고마워, 정말.

— 당연한 일이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 지키겠다는데.
— 그런데··· 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 말만 해. 다 들어줄게.
— 정말? 진짜 다 들어줄 거야?
— 그럼~ 뭔데?
— 나 그 민윤기라는 사람. 만나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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