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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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윤기 만난 거라며.


— 어···?


— 미안···ㅎ 난 말한 줄 알고.


— 나한테 숨기는 게 대체 몇 개야? 이제 너도, J 씨도 못 믿을 지경이야.


— 널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 날 생각한다면 말해줘. 전부 다.


— ···생각할 시간 1분만 줘.







잠시 1분의 정적이 흘렀고, 그 1분 동안 나도 생각한 게 많았다. 이기적인 생각인 거일 수도 있겠지만, K가 나에게 다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나도 그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좀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K는 결심한 듯 나와 눈을 맞췄다.







— 민윤기 만난 거 맞아. 다행히 아는 킬러 중에 연륜 꽤 높은 경찰과 인연이 있어서 쉽게 넘겼어.


— 어쩐지 잘 흘러간다 했어. 그게 끝이야?


— 응?


— 그게 끝이냐고. 나한테 할 말.







K는 J 씨와 눈빛을 주고받았고, J 씨는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있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좀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내게 말했다.







— 들어도 아무렇지 않을 자신 있어? 너희 아버님과 관련 있는 얘기야. 그래도 듣고 싶은 거야?


— ···응, 말해줘.


— 사실 민윤기 아버지가 더 먼저 돌아가셨어. 너희 아버지보다.


— 설마···.


— 응, 너희 아버지가 민윤기 아버지 죽였어.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두 분이 절친이었는데 뭐 때문에 너희 아버지가 그런 선택을 한 건지는 우리도, 아무도 몰라.


— 아빠가 절친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네, 난···. 도대체 뭐 때문에 아빠가 그런 거지···?


— 네가 또 이상한 생각 할까 봐 얘기 안 한 거야. 암튼 그래서 민윤기는 복수하려고 너를 죽이듯이 쫓은 거야.







이제야 퍼즐이 다 맞춰진 기분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계속 쫓기고만 있었고 얘기를 들으니 이제 좀 이해가 갔다. 뭔가 보스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건은 모두 종결됐지만 내 마음이 편한 건 정말 하나도 없었다.







— 음···. 알겠어. 나 좀 쉴게.







.







— 아빠···. 왜 그런 거야? 뭐 때문에 그런 거야···.





‘똑똑’





아빠 생각을 하니 눈물이 막 흘렀고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난 얼른 눈물을 훔치고 애써 괜찮은 척 마음을 다잡고 응답했다.







— 여주··· 괜찮아?


— 안··· 괜찮아.


—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며. 그래서 안 말하려고 한 건데.


— ······.


— 울었어?


—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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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때까지 옆에 있어 주고 싶어. 그래도··· 돼?


— 괜찮아, 나 혼자 있을래.


— 혼자 있으면 또 울 거잖아.


— ···그럼, 나 잠들 때까지만 있어. 잠들면 나가.


— 응! 그냥 듣기만 해. 말 안 해도 되니까. 이제는 내가 너의 옆에서 행복이 되어주고 싶어. 그런데 뭔가 나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건가 싶기도 해서 미안하기도 해···.


— 야, 그게 왜 너 때문이야···.


— 뭐··· 나를 만난 시점부터 네가 우울해진 거 같아서.


— 네가 아니었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났어. 우울은 너를 만나기 전부터 언제나 그랬고. 네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


— ···예쁘다.


— 응···?


— 어? 아, 미안···.


— ···너, 내 말 안 들었지.


— 후··· 나 나가볼게. 잘 수 있지?


— 왜?


— 잘 수 있지.


— 아니.







이번에는 내가 놔주기 싫었다. 갑자기 급하게 나가려고 해서 내가 붙잡아 버렸다. 나도 모르게 K를 좋아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처음 보여준 것 같다.







— 나 지금 진정시키고 있으니까 놔줘. 잡으면 나 천천히 못 다가가.


— 그럼 다가와.


— ㅇ, 응? 뭐라고?


— 나 마음 열린 거 같으니까 다가와도 괜찮다고. 나도··· 너 좋아.


— 헐···.







사실 내 마음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데, 겉으로는 안 그래 보였어도 속으로는 정말 많이 떨고 있었다. K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이제는 기대보고 싶다. K는 깜짝 놀란 듯 잠시 얼어있다가 다시 내 옆으로 와 앉았다.







— 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지?


— 내가 이런 걸로 왜 장난을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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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같아···.


— 너 왜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아이 같냐ㅋㅋㅋ 이런 모습 처음인 거 같아···.


— 뭐래···. 암튼 너무 고마워. 나한테 한 발짝 다가와 줬으니까 내가 두 발 세 발 아니, 여러 발 더 다가갈게. 고마워, 여주야.


— 나도 고마워.







문득 K가 오빠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한테 누나라고 안 해서 그런지 하는 행동, 말투 다 나보다 어른같이 느껴졌는데 오늘은 한참 어려 보이는 거 있지. 처음 본 모습이기도 하고 K에게 이런 면도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좀··· 귀여웠다. 이제 조금 K를 아는 사람이 된 거 같고,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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