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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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 헉···.
‘쾅’
— 헙···!
문이 닫히는 소리에 깼다. 그런데 누가 내 옆에 누워있었다. 다름 아닌 K였다. 어제 내 옆에 엎드려 누워서 얘기하다가 내가 먼저 잔 거 같은데 얘는 방에 안 가고 여기서 잠든 모양이다. 예상치 못하게 내 옆에 누워있는 K 때문에 1차 놀라고 문을 열고 이 상황을 보았을 J 씨 때문에 2차로 정신이 멍했다.
— 야! K, 일어나 봐.
— 우음···. 나 여기서 잠든 거야?
— 넌 뭐가 그리 태연하냐···. 네 방 가서 자야지 여기서 자면 어떡해···.
— 몰라, 피곤했나 봐. 언제 깼어?
— 방금. 그런데 J 씨가 우리 본 거 같아.
— 상관없어. 형은 혼자 호들갑 떨면서 좋아할걸?
— 엥?
K의 그 말에 방문을 살짝 열고 밖을 봤는데 예상 적중! J 씨는 막 벽을 치고, 호들갑 떨면서 혼자 좋아하고 있었다. K의 말에 딱딱 맞는 게 너무 웃겨서 웃음이 절로 났다.
— ㅋㅋㅋ J 씨,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 깜짝아···! 아, 봤어요? ㅎㅎ 축하해요.
— 뭐···, J 씨 도움이 꽤 컸어요.
— 뭔데? 형이 도와준 거야?
— 넌 몰라도 돼. 여주 씨와 나의 비밀이라고.
— 허, 그러세요~? 비밀도 있나?
— 씻고 와서 아침이나 먹어. 다 차려놨으니까.
— 헐~ J 씨 맛있는 냄새 어쩔 거···.
— ㅋㅋㅋ 빨리 씻고 나와요. 음식 식어요~
— 기다려요!!
— 내가 먼저 와서 먹어야지!
— 야, K! 기다려라!!
뭔가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고, 평범한 사람들과 별다를 게 없는 생활을 해보는 것 같다. 이렇게 평화로운 적이 되게 오랜만인 거 같다. 사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래도 될 거 같다.
[ 1년 후 ]
— 보스, 잘 처리했습니다.
— 수고ㅎ···,
— 죽인 거 아니죠?
— 오셨습니까, 형수님!
— 아, 형수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안 죽인 거 맞죠?
— 네, 물론입니다. 그 직전까지만 마무리했습니다.
— 수고했어요. 가봐요.
.
— 여주야, 이제 그만 물어볼 때도 되지 않았어?
— 보스님, 전 아직도 보스를 못 믿겠어요. 눈 돌아가면 아주 죽이려고 환장하는데.
— 솔직히 그런 놈들은 죽여 놔야···,
— 씁- 조용. J 씨는?
— 2층에 있을걸?
— 그래? 그럼, 잠깐만 얘기 좀 하고 올게.
— 싫어.
— 뭐야? 이 투정은?
— 가지 마. J도 남자야.
— 뭐래, 갑자기ㅋㅋㅋ 이제는 하다 하다 J 씨한테까지 질투하는 거야?

— 너 요즘 너무 예뻐졌어. 단속 좀 해야지.
— 어우··· 뭐래. J 씨는 한두 번 본 사람도 아니고. 얌전히 있어. 금방 다녀올게.
아, 우리는 조직을 세웠다. K가 보스인 조직 말이다. 물론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 조직이 아닌, 나쁜 짓을 하는 못된 인간들을 혼내주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제안한 거다. 이제 나 말고 위험한 사람들을 구해주는 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달라고. 벌써 시작한 지 6개월이 다 돼가는 거 같은데 꽤 만족스럽다. 아, 그리고 아무리 혼내주더라도 죽이는 건 안 된다. 그건 보스 K와 나와의 약속이다.
‘똑똑’
— 엇? 언제 왔어요?
— 방금요. 안 바빠요? 제가 방해하는 건 아니죠?
— 아까까지만 해도 바빴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여주 씨만 지키다가 여러 사람 지키려니까 아직도 이 힘듦은 감당하기 좀 버겁네요ㅎㅎ
— 그래도 좋은 일이잖아요. 아, K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은 없죠? K 말은 못 믿어서···ㅎ
— 네ㅋㅋㅋ 제가 잘 지켜보고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한 번씩 욱하기는 하는데 알아서 잘 진정해요.
—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 잘 부탁할 게 뭐 있겠어요. K는 저한테 안 돼요~
— ㅋㅋㅋ 맞아요.
— 그럼, 여주 씨도 수고해요. 아이들 가르치느라 힘들 텐데 들어가서 좀 쉬어요.
— 아직 일 안 끝났어요? 끝난 거 아니에요? 같이 가요. 저도 사실 K 데리러 온 거예요.
— 그래요? 끝나긴 했는데··· 퇴근하죠, 뭐.
— 좋아요. 제가 설득해 볼게요ㅋㅋㅋ 정리하고 천천히 나와요.
난 아이들을 가르친다. 정확히 말하면 사격 레슨을 하고 있다. 1년 사이 난 여러 사격 대회에서 정상을 전부 찍었고, 그 덕에 유명세를 얻은 것도 없지 않아 있다. 선수 제안도 들어오기도 했는데 난 이게 좋다. 귀여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내 적성에 맞는다.
— K! 나 왔어.
— 뭐야, 진짜. 오늘 왜 이렇게 낯설지?
— 왜?
— 아니, 그냥···. 기분 좋아보여서.
— 기분 좋아.
— 그래?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한번 안아보자.
— 여기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 집에 가서 실컷 안아줄게.
— 맨날 안았는데 뭘 새삼스럽게. 이리 와.
나는 K의 품에 폭 안겼고, 그의 품은 언제나 그랬듯 포근하고 편안했다. 원래 같으면 안 안아주는데 오늘은 좀 안기고 싶었다. 사실 기분이 좋다는 거, 거짓말이다. 오늘 정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거든.
[ 2시간 전 ]
— 선생님, 사실 저 아빠 미국에 있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아빠 없어요, 저.
— 응···?
— 사격 대회 나가면 다른 애들은 다 아빠, 엄마랑 같이 오는데··· 그냥 아빠 없는 제가 싫었어요.
— 음··· 그런데 지금 선생님한테 이 얘기를 왜 하는지 물어봐도 돼?
— 엄마한테 들었어요. 선생님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다고. 선생님은 저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선생님하고 저하고 둘만의 비밀이에요.
맞다. 나는 사격 대회에서 우승하고 인터뷰를 하던 때 매번 돌아가신 우리 엄마, 아빠께 감사 인사를 하고는 했다. 그러면서 항상 안 울던 때가 없었지.
— 아··· 그래서 선생님한테는 사실대로 말하는 거야?
— 네, 선생님은 부모님 안 보고 싶어요?
— 왜 안 보고 싶겠어. 당연히··· 보고 싶지.
— 선생님, 울어도 돼요.
고작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날 울렸다. 나랑 가장 오래 보기도 했고, 워낙 똑 부러지고 벌써 어른스럽다고 느끼던 친구였기는 했는데 갑자기 부모님 얘기를 꺼내니까 울컥했다. 난 성인이 되어서도 많이 보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울기도 하는데 이 아이는 어린데 그 슬픔을 어떻게 버텼을지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했다.
— 아··· 미안해. 선생님이 좀 눈물이 많아.
— 괜찮아요. 슬플 때는 우는 게 맞으니까요.
— 그래. 그럼 여기서 수업 마치자.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K한테 향하는 길 내내 계속 부모님 생각이 났다. 보고 싶었다, 정말.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존재하지만, 또 누군가에겐 당연하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슬픔을 K한테까지 전파하고 싶지는 않아서 애써 괜찮은 척, 일부러 기분 좋은 척 K에게 갔다.
***
다음 편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