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지민시점)
김여주를 내 집에 혼자두고 3주동안 자리를 비운다는 건 꽤나 여려운 거였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그 상황에선 지금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기에, 나는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는 거겠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어느정도의 여백이 매꾸어질 때쯤 나는 글을 마무리했다. 그건 메세지에 남겨져있던 약속장소에 시간내로 맞추어 가기가 번거로워질까 봐서였다.
3주동안 훈련소에서 지내게 된 내가, 과연 이 집을 말짱히 걸어들어오기란 불가능에 가까울테지만... 하지만 그걸 알고도 나는 빠르게 신발을 신었고, 김여주가 깰까봐 조심스레 집을 나섰던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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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김여주가 3주 동안 잘만 지낸다면 소원이 없다, 근데 만약 내가 죽어버린다면 말이 조금은 달라지겠네...
그땐 내 생각을 조금만 해주면 좋겠어서 라는 소박한 이유 때문이겠지.

"하아..."
선도 누나, 잠시 동안만 안녕.
-학교 2-7 교실-
(여주시점)
박지민이 비운 그 자리는 아주 허전해보였다. 이 시간쯤이면 저 자리엔 엎드려있는 박지민이 있거나, 책상위에 다리를 꼬아올려 빵을 먹고 있는 박지민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 분명 무슨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을텐데, 왜 말해주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박지민의 교실 앞에 가까워지고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나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아 시발... 지민오빠 어떡해..."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우는 김제니가 있었고, 그 옆과 주변에는 심각한 표정들의 나머지 애들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왜요"
"아니...
혹시 너희도 박지민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야...?"
"...그런데요"
"...혹시 걔 어디간 거야...? 심각한 일이야...?"
"...그렇다면 어떨 거 같은데요"
"...어?"
"맞아요. 박지민 죽을 지도 몰라요.
...근데 진짜 좆같은게 뭔지 알아요?"
"......"
"그 새끼는 누나 때문에
거기를 지 발로 쳐 들어간 거에요."
"그게 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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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한테 무슨 딱한 사정이 있던, 박지민의 아량이
넓어졌건 우리는 관심없어.
만약 박지민이 죽으면, 그건 누나 때문일테니까."
나는 그들에게서 아주 커다란 틀을 찾아낼 수는 없었지만, 아주 작은 죄책감이 마음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죄책감이라는 게 얼마나 커질지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 이야기 속 가장 무능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스레, 그리고 자연스레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알았으면 우리 앞에서 꺼져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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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왜요"
"말해줘. 박지민, 지금 어디있는지."
하지만 그저 그런 의미없는 역할에 충실하게 살다가는 내가 화가 나거든. 그래서 나는 무모한 개입을 해보려고 한다.
"그거 알면, 뭐 어쩌시게"
"...박지민 데리러 갈거야."
황당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너희는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주소 불러. 당장."
"...꺼지라니깐 무슨 개소리에요 갑자기"
"나 때문에 박지민이 죽을지도 모르는 그런 곳에
간 거라면, 내가 구하러 가야지. 안 그래?"
무슨 정의감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박지민이 죽는 꼴은 못봐. 내가 무슨일이 생기더라도 박지민 얼굴 한 번 제대로 못보고 무작정 3주를 기다리기엔 내 참을성이 견디지를 못해서 말이지.
"...그딴 패기가 언제까지 지속 될지는 모르겠는데,
어줍짢은 계획세워서 개쪽 당하고 돌아오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요."
"...어줍짢은 계획세워서 개쪽 당하고 오는게 내 계획이야. 그렇게라도 난 박지민을 봐야겠으니까."
"시발 고집 진짜..."
"...기억 안 나?"
"나 선도부장 김여주야.
박지민 처음으로 벌점 매긴 사람이라고 내가."
(작가시점)
학교의 끝을 알리는 하굣길 정소리가 울려퍼지는 그 시각. 여주의 교실 앞에는 짐무들이 자리 잡고 서있었다.
한껏 굳어진 그들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다른 학생들은 그들을 피하기에 바빴지만 여주는 그들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드디어 주소를 알려주러 온건가?"
"......"
"유감스럽게도, 난 그거 아니면 니네랑 할 얘기가 없어"
"잠시만요"
여주를 조금은 다급하게 부르는 태형의 떨리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오는 여주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을 시작하는 태형.
"...박지민을 빼내오는 게 아주 좋은 계획이겠지만,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 거에요"
"...그래서"
"목표는 탈출, 일시는 모레."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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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에 대한 원망보다 박지민의 탈출이 더 절실하니까."
"...그럼 같이 갈 거지?"
그들은 서로 아직까지 눈치는 보는 듯이 보였지만 모두가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고, 여주는 만족한다는 얼굴로 그들에게 말했다.
"나를 도와준다니 정말 고맙고,
계획은 서서히 짜서 말해줄게. 후회하지 않게 하자."
"누나만 믿을게요."
"난 너희만 믿을게.
박지민, 구할 수 있지?"
"당연하죠"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ㅜ 바빴어요ㅠ
@손팅... 해줄거죠오...? (레모네 작가는 면목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