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바깥 상황을 살피기 위해
잠시 산책을 한다며 방을 나왔다.
어둠이 짙게 깔려 등불 없이 앞을 볼 수 없는 곳도 있지만, 1900년 쯤에 들어온 전기를 사용한 가로등 때문에
부분, 부분 밝기도 했다.
봄이라도 아직 한기가 남아있어서 그런지
귀와 손끝이 시려왔다.
궁녀_"공주 마마, 시간이 늦었습니다. 어서 잠자리에
드시는 것이 어떠신지요..."
단미_"그러지."
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평생 자라 온 곳을 떠나,
다시는 못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니
많이 슬프고, 씁쓸했다.
난 마지막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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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새벽, 난 조용히 움직였다.
미리 준비해둔 남자 선비의 옷을 입고 갓을 쓴 후,
그동안 모아둔 돈이 든 주머니를 챙기고 여벌의 옷이 든
보따리를 멨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단미_"후..."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이 말을 계속 되뇌며 자신감을 되찾으려고 노력해봤지만 되려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아직 눈물을 흘리면 안 된다.
앞으로가 더 힘들 테니까.
차오르는 눈물을 겨우 삼켜내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끼익-"
그리고 방 밖으로 천천히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 문턱을 넘으면 내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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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를 선 병사들 눈에 안 띄게
나무나 기둥 뒤에 숨어 있다가 재빠르게 움직여
다른 나무나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몇 분을 달리고서야 어렸을 때 만들어두었던,
궁 밖으로 통하는 쥐구멍에 도착했다.
이 쥐구멍으로 언니와 오라버니들과 함께,
몰래 밖에 나가 놀던 게 생각나 괜히 또 울컥했다.
쥐구멍을 통해 나가려고 하던 그 순간,
한 병사가 내 실루엣을 봤는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난 놀라며 소리 없이 어둠 속에 숨었다.
"거기 누구 있소?!"
병사는 등 뒤에 메고 있던 총을 들며 내게로 다가왔고
난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실패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주변을 살피며 머리를 굴렸다.
이때 적당한 크기의 돌맹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난 그 돌맹이를 집어들어 최대한 힘껏 머리 던졌다.
돌맹이는 내가 있는 곳과 멀리 떨어진 풀숲에
요란스럽게 떨어졌고 그걸 들은 병사가
그 풀숲으로 달려갔다.
난 그걸 보고 잽싸게 쥐구멍으로 빠져나갔다.
쥐구멍을 빠져 나오고서도 난 계속해서 달렸다.
계속 누군가가 쫓아오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달렸다.
그리고 모두 문을 닫은 시장을 보고 나서야
궁을 나왔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난 계속 뛰다보니 가빠진 숨을 고르며 내가 계획한
무언가를 혼자 해냈다는 뿌듯함에 웃음을 지었다.
이제부터 난 공주가 아닌
이단미,
독립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