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해를 타고!
01: 오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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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전학이었다. 고등학교 전학만 벌써 4번, 초등학생부터의 전학 경험을 합치면 올해로 정확히 17번째 전학이었던가? 올해 18살인 나는,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의 일로 인해 자주 전학을 다녀야만 했다. 기껏 힘들여 친구들과 친해져도 짧으면 한 달, 길면 세네달만에 전학가기 일쑤였다.
“ 야 ~ 같이 가~ ”
등굣길에, 내 어깨빵을 치며 우리 학년으로 추정되는 여학생들이 웃으며 뛰어갔다.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친구가 없다. 잦은 전학으로 인해 친구를 만들어도 다시 전학가기 일쑤였고, 또…
.. 친구? 과거의 나에게도 그렇게 친구가 소중하고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같이 웃고, 먹고, 장난치고… 하지만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건 오해로 인한 비난과 조롱, 뒷통수뿐이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의 웃는 얼굴 뒤에 뭐가 숨겨져 있을지 모르겠고, 다정한 말 뒤에 숨은 칼날이 무서웠다.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친구는.
” 그래도 이번 학교는 좀 오래가나… “
아무튼, 올해 전학 온 4번째 고등학교인 모아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벌써 두달쯤 지나가고 있었다. 역시 난 친구따윈 없는 혼자였고..
“ 그냥.. 이렇게 조용히 다니기만 했음 좋겠다 “
이번에도 뻔했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학교를 다니다 보면 또 그새 다음학교로 전학가게 되겠지. 내 소망은 그저 하나다. 아무탈없이 이렇게, 존재감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다음 학교로 전학가는 것. 오직 그것뿐이었다.
근데.. 이게 그렇게 큰 소망이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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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점심시간이 지나가고있다. 나는 급식을 먹지 않는다. 딱히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학생들 몇백명이 모여있는 급식실은 거부감이 들며 들어가기만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 다를것없이 혼자 교실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어쩐지 먹은것도 없는데 소화가 안되는 기분이 들어 혼자 조용히 운동장 한바퀴를 돌고 교실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 야.. 오늘 최수빈 개잘생겼다.. “
” 범규는 염색했어ㅓ어 ㅜㅜ“
” 강태현은 지나가면서도 책 읽나봐 ㅜ “
새삼스럽지도 않다. 어딜가든 꼭 한명씩은 있다. 잘생겼고, 잘나가고, 인기많은 중2병같은 애들은. 근데, 내 17번째 전학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이 학교는 좀 심했다. 저런 관심받는걸 즐기는 중2명 말기들이 한명도 아니고 셋씩이나 모여있는 학교는 참으로 처음본다.

가장 앞에서 뛰어오는 쟤는 최범규, 나와 같은반으로 아마 저들 중 가장 장난기가 많고 관종끼가 많은 애같다. 덕분 에 우리 교실은 아주 조용할 틈이 없다..
“ 야 배부른데 농구 한 판 ㄱ? ”

그 옆에 낄낄 거리며 걸어오는 쟤는 휴닝카이, 아마 저들 중 유일한 1학년으로 알고있다. 내가 봤을땐 쟤도 최범규 버금가는 관종끼가 있는 것 같다.
“ 아 당연히 콜이죠~ 태현이 형도 콜? ”

걸어갈때도 항상 책을 들고다니는 쟤는 강태현, 아마 전교1등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쟤는 앞에 두명과는 나대지도 않고 주목받는걸 싫어하는것 같긴 하지만.. 사실 왠지 모르게 재수없게 느껴진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 제발 부탁인데, 점심시간을 좀 공부하면서 효율적이게 쓰는게 어때. ”

제일 끝에서 걸어오는 저 키 큰 남자애는 최수빈, 저들중에 유일한 정상인이라고 볼 수 있다. 교복 맨 끝까지 잠근 단정한 셔츠, 팔 끝에 달려있는 학생회 명찰, 최수빈은 우리반 반장이기도 하며 내가 이 학교에서 대화해본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마치 지금처럼..
” 여주야! ”
“ .. 응? ”
망했다. 시선 쏠린다…
“ 이거 먹어. ”
최수빈이 갑자기 손에 들고있던 빵을 건냈다.
“ ..어? 이걸 왜 나한테.. ”
“ 항상 밥 안 먹잖아 여주 너. 아침도 안 먹었을텐데..
이거라도 먹어. ”
최수빈은 가끔씩 정말 뜬금없이 이렇게 날 챙겨주곤 했다. 내 생각엔 아마 담임쌤의 부탁인듯 했다. 전학온 내가 항상 친구도 없이 밥도 굶고 혼자 다니는 걸 보시고 최수빈한테 챙겨주라고 귀뜸하신듯 싶다.
하지만!!!!!!!! 정말 너무 부담스럽다고!!!!!!!!!!!! ㅠㅠ
최수빈이 나에게 빵을 건내자마자, 순식간의 몇명의 시선들이 내게 쏠렸다. 그리고 수근거렸다.
” 쟤 뭐야? “
” 아니 누군데? 처음보는데? “
” 쟤 뭔데 최수빈한테 빵을 받아? “
하.. 진짜 순식간에 속이 울렁거리는 듯 했다. 급격히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혀 휘청거렸다.
“ 여주야, 괜찮아? ”
“ 저기.. 미안한데.. 나 속이 안 좋아서, 보건실 좀..! ”
최수빈을 뒤돌아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하.. 진짜.. 제발 나는 아무 관심 받지 않구 학교 생활 하구싶다구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배아팤ㅋㅋㅋㅋㅋ 지금 최수빈 여자한테 까인거? ㅋㅋㅋ ”
“ 조용히해라 최범규. ”
“ 킄ㅋㅋㅋㅌㅌㅌㅌ 아 웃겨라 영상 찍어놧어야 되는뎈, 근데 쟤 누구지? ”
“ 우리반 김여주, 맞지? 최수빈. 쌤이 쟤 챙겨주라고 시킨거지? ”
“ 아, 그러네. 강태현 넌 그걸 어케 앎? ”
“ 우리반이잖아 최범규 바보야. ”
“ 엥? 우리반에 저런 애가 있었던가? ”
“ 아 다들 입 다물고, 이 빵 휴닝이 너 먹어라. ”
“ 정말요???? 아싸~!!!!! 공짜빵 개꿀~!!!!!! ”
“ 그건 그렇고, 최연준은 또 안온거? ”
“ 몰라, 저번주에 오토바이 타다 쌤한테 압수당해서 일주일째 결석으로 반항중이신듯. ”
수빈이 작게 중얼거렸다.

“ 이 빵 별로 안 좋아하나.. ”
최수빈을 피해 보건실을 향해 달려가다 잠시 뒤돌았다. 다행히도 내가 자리를 뜨자 상황은 잠잠해진듯 싶었다. 멀어져있는 네명을 보고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 쟤네가 원래 넷이 다녔었나.. ”
분명 뭔가 어색한데.. 한명이 더 있었나? 뭐, 어차피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니까.
그때만 해도.. 분명 그럴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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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하늘이 맑았고, 바람이 시원했지만 등굣길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늘 그렇듯 이어폰을 꽂은채 학교정문을 지나는데, 뭔가 이상했다. 아니? 확실히 이상해!
어쩐지 오늘따라.. 모두가 날 보며 수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 아니야 김여주. 너 지금 자의식 과잉이야. 아니면 또 옛날 트라우마에 빠진거야? 제발 여주야. 갑자기 관심도 없던 애들이 날 욕할리가 없잖아? 안그래?
그치만 교실로 향하는 계단에서조차 정말 모든 학생들이 날보며 수근거리고있었다. 분명 아니겠지만, 아니겠지만 정말 설마하는 마음에 귀에 꽂고있던 이어폰을 뺐다.
“ 쟤가 걔래. ”
“ 진짜야? 쟤가 그런거야 그럼? ”
“ 와.. 그럼 쟤가 여주? 진짜 미친거 아니야? ”
기분탓이 아니었다. 나.. 내 이름을… 방금 확실히 들은 것 같아.. 잠깐.. 나 지금 상황파악이 안되는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감 0이던 내가 갑자기 왜 전교생한테 욕을 먹고있는거지?
아니 쟤가 걔라니..? 설마 지금 어제 최수빈 빵 거절한거 때문에???????? 아니 미치겠네.. 진짜 그런거 가지고 지금 나 전교생한테 죄인이 된거지? 아니 정말이야?
참을 수 없을만큼 억울한 마음이 들어 해명이라도 해야하나싶어 고개를 들어 애들을 쳐다봤다.
“ 야! 나 방금 눈 마주친거 봤어? 눈빛 소름돋아.. “
” 어제 대전에 올라온 글 봤지? 그거 쓴 사람이 김여주,
쟤래. “
아니.. 잠시만요. 대전이 뭐 어쩌고 저째? 모아 고등학교, 이 학교도 대전이 있어? 저기 님들아. 난 이 학교가 대신 전해드립니다가 있는줄도 몰랐어요.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교실문을 열었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시선이 쏠리고 묘한 정적과 분위기가 흘렀다. 몇몇 애들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고, 심지어.. 나에게 평소에 항상 친절하던 최수빈 마저 나를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책상에 앉으려던 찰나, 누군가 내게 크게 소리 질렀다.
“ 아무리 익명이라도, 감당 못할짓은 하지 말아야지.
안그래 애들아? “
모든 아이들이 웃으며 조롱했다. 맞지맞지 ㅋㅋㅋㅋㅋㅋㅋ
심장이 철렁했다. 예전의 트라우마와, 지금의 상황이 겹쳐졌다. 무슨일이야, 나 정말 아무짓도 안 했는데..
그때,
쾅 - !!
갑자기 교실문이 거칠게 열렸다.
순간, 교실 전체가 멈춘듯이 조용해졌다.
단정치 못한 셔츠, 검은 눈동자,
그리고 어딘가 날카롭게 날 선 표정의
최연준
그래 최연준. 어제 점심시간의 묘한 기시감이 떠올랐다.
맞아, 최연준이 있었지..
“ 너냐?”
그리고,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 너가 김여주냐? ”
복도와 주변에선 아이들이 몰려들어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최연준은 내 코앞까지 다가와,
내게 얼굴을 밀어붙이며 속삭였다.
“ 여주야, 네가 썼지. 그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