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학교 복도는 비현실적으로 조용했다.
누군가 일부러 숨기기라도 하듯, 바람 소리조차 멈춰 있었다. 오래되어 벗겨진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겨울의 찬 공기가 복도를 한 겹 둘러싸며 불길한 정적을 만들어냈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운동화를 신지 않았더라면, 바닥이 삐걱대는 소리가 기어이 누군가를 깨웠을지도 모른다. 핸드폰 플래시로 앞을 비추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교실이었던 곳을 향해 다가갔다.
“진짜… 이 시간에 학교에 다시 오게 될 줄이야.”
자기 귀에만 들릴 정도로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소리가 벽에 닿아 튀어 나올 때에는 어딘가 낯설게 변형된 울림으로 들렸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것도 없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게 맞았다. 지금은 새벽 1시 12분. 나 말고 누가 학교에 있겠는가.
핸드폰 화면에는 몇 분 전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야… 너도 그 글 봤지? 우리 반 3교실… 그거 사실인지 확인 좀 해줘. 너 학교 가깝잖아."
내가 가깝다고 해서 이 일을 떠맡게 된 건 억울했지만, 괜히 무시했다가 내일 학교에서 ‘겁 많은 애’ 취급받을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오는 게 나았다. 무엇보다도, 소문의 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어서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소문의 핵심은 이랬다.
오늘 저녁 7시쯤, 학교 게시판에 정체 모를 계정으로 글 하나가 올라왔다고 한다.
“3학년 3반, 오늘 자정이 지나기 전에 누구 하나 꼭 돌아와라. 안 오면, 대신 내가 간다.”
낚시글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글이 올라온 후 딱 5분 뒤에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이 올라온 걸 봤다는 아이들 모두 같은 꿈을 꾸었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꿈까지 맞다는 건 좀 소름이 돋긴 하네.”
나는 맘속으로 중얼거리며 3학년 교실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제의 교실 앞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나는 생각보다 심하게 긴장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손가락이 살짝 떨려 있었다.
손바닥에는 차갑고 질척한 땀이 배어 있었다.
“하… 진짜 별일 없겠지?”
나는 문고리를 잡아 천천히 돌렸다.
탁— 하고 잠긴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문은 힘 없이 열렸다.
살짝 밀자, 마치 누군가 안에서 열어준 것처럼 부드럽게 열린다.
교실 안은 깜깜했다.
학교 건물 전체가 꺼진 건지, 비상등도 희미하게 깜빡일 뿐이었다.
플래시를 켠 채 발을 디뎠다.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뭐야?”
칠판 위에 무언가가 적혀 있었다.
분명히 퇴근 전에 선생님이 깨끗이 지워두었던 칠판이다.
“왔네.”
플래시 불빛이 닿는 순간, 글씨는 천천히 일렁였다.
마치 손으로 쓴 분필 자국이 아니라, 촛불 그림자처럼 흔들거리면서.
나는 심장이 철렁하며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누… 누구 있어?!”
내 목소리만 허공에 부딪혀 흩어졌다.
그때였다.
교실 뒤편에서,
종이가 바스락— 움직였다.
곧이어 책상 사이에서 바람이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교실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규칙적인 발걸음.
“장난치지 마라… 진짜.”
나는 플래시를 뒤쪽으로 향했다.
그 순간—
확실히 보였다.
분명히, 사람의 발끝 같은 그림자가 책상 사이에서 스르르 사라지는 모습을.
도망칠 틈도 없었다
“야!! 누구야?! 나오라고!”
나는 본능적으로 소리쳤지만, 목소리가 떨려서 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
플래시를 요리조리 비추며 교실을 서성이다 뒷문으로 향하려는 순간,
문이 철컥 하고 잠겼다.
아무도 문 근처에 없었다.
문고리만 혼자서 움직였다.
“미친…”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억누르고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열리지 않는다.
그때, 또다시 칠판이 흔들렸다.
이번에는 글자가 바뀌어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보여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