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탈 씀
김여주는 알찬 하루를 보냈다. 영화를 보고, 국밥을 먹었으며, 노래방에 들러 목을 혹사시켰다. 또한 독서실에서 토익 준비를 했으며, 미술관에 가기까지 했다.
그 모든 것을 끝낸 후에 느낀 것은 단 하나,
'세상 사람들 다 거기서 거기구나. X되게 재미없네.'
어느 날부터인가 김여주의 눈에는 이상한 상태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전부에게. 상태창의 내용은 이런 식이었다.

외모와 성격, 그리고 재력 이 세가지의 요소가 알파벳을 표시되며 각 사람의 특이사항까지 떴다. 외모의 스탯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것이 외모지상주의 시대를 X나게 두각시키는 느낌이라 기분이 뭣같긴 했다.
김여주는 눈 앞의 물건을 식별할 줄 알고, 부모님의 말을 대강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 이전부터 상태창이 보였다. 다만 부모님께 "엄마, 외모가 뭐예요? 엄마는 A야! 재력···? F!!" 라는 말을 네 살 때 하염없이 지껄였던 덕분에 은연 중에 '정신적인 문제아' 취급을 당했기에 자연스레 입을 닫고 살게 된 것이다.
처음엔 본인도 자신의 존재를 특별한 사람인가보다 정도로 인식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 놈의 상태창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을 시절, 수줍게 다가오며 손을 내미는 한 아이에게 호감이 생기려던 찰나에 뜨던 상태창 하나.

반사적으로 내밀었던 손을 털어버렸다. 무해하게 웃고 있던 여덟 살의 얼굴 뒤에 가려진 진실한 마음이 그대로 보인 탓이었다. 시간이 지날 수록 김여주 역시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가식적인 사람들을 대하는 수법이 나날이 늘어갔다.
욕이나 구역질이 나올 법한 아주 X같은 상태창만 아니라면 대부분 웃어 넘길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그렇게 여주는 스무 살이 되었고,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대학 라이프를 보냈다.
"여주야, 넌 어디 쪽으로 취업 하려고?"
X발. 아무리 기이한 현상들이 자신에게 나타난다고 해도 취업의 늪에서 빠져나올 순 없는 것이었다.
'심리학과···. 답이 없다.'
김여주는 S대학 심리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별 생각이 없었던 고등학생 시절에 어느 정도는 공부를 했던 여주였지만, 미래가 탄탄하게 보장된 직업을 선택할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기에 네임밸류 하나만 보고 좋은 대학의 아무런 과를 선택한 지난 날의 김여주를 죽도록 후회하고 있었다.
심리학과라 하면 병원에서 일을 하니 돈 벌이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개소리다. 전망이 깜깜한 과인 것이 분명했기에 대부분의 심리학과 학생들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여주도 다를 바 없었다. 가산점이나 좀 받아보려고 토익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까.

"야, 나 오늘 캐스팅 받은 곳으로 테스트하러 가.
같이 가볼래? 어차피 오늘 할 거 없잖아."

그래···. 시X 저 '생각없이'란 말에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이딴 미래를 그리게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