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강의를 마치고 회사로 나갔다.
실장님이 내 직속선배를 소개해주셨다.
“저녁마다 여기 연습실 써요“
“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배는 미리 와서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
“아 안녕하세요“
“변백현..선배님이세요? “
“맞아요,이름이? “
“김수지에요“
“아 수지씨,반가워요“
“네.. “
“피아노 친다고 들었는데,치면서 연습할래요? “
“네 그럴게요“
선배가 피아노 의자를 끌어주며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었다.
“오늘은 이거 한번 해볼래요? “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들었다.
들으면서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콧노래를 흥얼거려 보았다.
“잘 하네요“
“네? “
“노래를 금방 배우네요,잘 부를것 같은데요? “
나에게 읽어주던 시
너와 살던 집
모든 게 다 생각이 나
파란 지붕 위 강이 보이던 곳
한강 위에 비친 달빛이..
“앗“
선배가 내 옆에 앉았다.
갑작스러워서 놀라 피아노 치던 손이 멈췄다.
“놀랐어요?미안해요“
“아 아니에요“
“여기 부를 때 목소리를 좀 더 키워봐요“
다시 피아노 반주를 시작했다.
선배는 피아노 옆에 기대서,
내 옆모습을 계속 보고 있었다.
“잘하는데요? “
내 옆에 앉아 웃으면서,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작게 화음을 넣기도 하며.
“여기부터 다시 해볼래요?나랑 같이“
“네..?같이요? “
“수지씨는 하던 대로 해요,화음은 내가 알아서 넣을게요“
“처음부터 할게요“
피아노로 전주부터 시작했다.
손이 떨려서 틀릴 것 같았다.누군가가 보는 앞에서,이렇게 해 보는 건 처음이라서..
일부러 천천히 쳤다.손도 목소리도 떨렸다.
내가 노래를 시작하자,곧 선배가 조금 낮은 음으로 같이 불렀다.부드러운 목소리가,참 듣기 좋았다.
“수지씨 잘 하네요“
“선배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거죠“
“아니에요,피아노도 그렇고 목소리가 되게 좋은데요.좀만 더 연습하면 진짜 잘할 거에요“
“감사합니다“
“수지씨랑 목소리 되게 잘 어울리는것 같던데“
“정말요? “
“네,나중에 듀엣 해보고 싶네요“
“듀엣까지는 제 실력이.. “
“뭘 부끄러워해요,잘하면서.안되면 피쳐링이라도 좋으니 같이 노래하고 싶은데요“
다음 날 다시 오기로 하고 연습실을 나갔다.
집에 들어가서 오빠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뭐야,자기가 전화하라고 해놓고.
두번째 걸어서야 받았다.
“왜 전화 안받냐,전화하라고 해놓고“
“미안 휴대폰이 방에 있어서,잘 들어갔어? “
“응,방금 왔어.엄마는? “
“엄마는 아까 일찍 들어왔지,기다리라 했잖아“
“뭘 또 기다려..엄마한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오빠도 내 걱정 하지마“
“까칠하게 왜그래“
“몰라,끊어“
다음 날 연습실에 가던 길,
시간이 빠듯해서 걸음을 빨리했다.누군가 앞에 오는 걸 보지 못하고 부딪혔다.
넘어지면서 손을 짚어서 손목을 삐었다.
휴대폰을 떨어트려서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그 사람과 손이 닿았다.
“죄송해요,괜찮아요? “
“네.. “
“손 안 다쳤어요? “
“괜찮아요“
“안 괜찮은 것 같은데,병원 가 볼래요?같이 가 줄게요“
그러고서는 내 대답은 듣지 않고 내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서 내 앞에 내밀었다.
“이름이랑 연락처 좀 부탁할게요“
“왜요? “
“혹시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해야죠“
“아..네“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이상하다는 생각도 없이
메모장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서 건네주었다.
“김수지?수지?혹시 준면이 동생이에요?많이 닮았네“
“네 맞아요,우리 오빠 아세요? “
“알죠,준면이 내 대학 후배인데.아참 내 연락처도 줄게요 휴대폰 줘 봐요“
김민석,
오빠 선배라고?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준면이가 예전에 얘기해주긴 했는데,여동생 있다고..그땐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을텐데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래요..? “
오빠가,내 얘기도 하는구나.
“이 근처 살아요? “
“네 자취방 막 들어갔어요“
“그렇구나,앞으로 자주 보겠네요“
병원에 도착해서 선배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 수지씨 무슨일이에요,둘째날부터 전화도 하고“
“선배 죄송해요,저 오늘 늦을 것 같아요“
“왜요,무슨일 있어요? “
“아..오다가 다쳐서 병원 좀 가느라요“
“괜찮아요? “
“네 괜찮아요,병원 들렀다 늦게라도 갈게요“
병원에 갔다가 연습실을 가니 벌써 늦은 시간이었다.선배는 많이 기다렸을 텐데,힘든 티 하나 내지 않고 날 반겨주었다.붕대를 감은 손을 보더니 오늘은 좀 쉬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러더니 선배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나보고 옆에 앉으라고 권했다.
가만히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이거..수지씨 들려주고 싶었던 거에요“
“정말요? “
“네..진짜 아무한테도 들려준적 없이 쭉 혼자서만 좋아했던 노래에요“
“근데 왜 저한테.. “
“들려주고 싶어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