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이런 깡시골이었을 줄이야.. “
” 누구 때문에 여기로 온 건지 잊었나봐? “
” .. 그건 미안하다고 했잖아 “
” .. 됐어. 거기서 네가 잘못한 건 없으니까 “
그렇다. 내 이름 김여주, 낭랑 18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이 깡시골로 강제전학을 오게 되었다. 강제전학 사유는 동급생 폭행이고 학교 측에선 그냥 빠르게 덮기 위해 이 깡시골로 날 전학 보내기로 결정했다.
물론 내가 잘해서 이곳에 온 건 아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크게 잘못해서 온 것도 아니다.
우선 엄마를 도와 짐들을 빠르게 넣고 난 미리 준비한 떡을 돌리기 위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인사를 드렸다.
그래, 여기선 정말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다니는거야. 사람도 몇 없는데 여기서 무슨 큰일이 나겠어.
그러나, 이건 내 아주 큰 착각이었다. 나는 곧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추억을 차지할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 하.. 다 돌렸다 ”
“ 수고했어~ ”
“ 근데 이 주변엔 내 또래가 아무도 안 사는 것 같아 ”
“ 왜? ”
“ 떡 돌리러 가는 집마다 다 어르신들 밖에 안 계셔 ”
“ 그래? 아무래도 여긴 학교랑도 좀 머니까 ”
“ .. 더 심심하겠네. 이거 ”
물론 이제 조용히 살겠다고는 했지만 심심하게 살겠다고는 안 했는데.. 그래. 이 깡시골에서 뭘 바라냐
그래도 언제나 새로운 학교에 간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고 난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 졸려.. ”
“ 눈 똑바로 뜨고 ”
사실 새로운 학교를 간다는 사실에 잠을 못 잔것도 있지만 설레임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강제전학인데.. 다들 나를 겁낼거라고 생각했다.
원래도 좀 무뚝뚝한 편이었는데.. 하 어떡하냐 진짜
아니야. 그래 사고만 안 치면 되는거야.. 그래
“ .. 나 진짜 사고 안 치고 살게. 이제 ”
“ .. 여주야 ”
“ 응? ”
” 네가 언제 사고를 쳤다고 그래. “
” 엄마.. “
” 그냥 당당히 다녀. 그래도 돼 ”
“ .. 응. 알았어 “
그렇게 엄마의 응원을 들으니 걱정이 한시름 놓였다. 그래 당당해지자. 김여주
애써 더 힘차게 걸었다. 조금이라도 더 당당해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
드르륵,
“ ..!! 누가 있네..? “
” … “
일부러 혼자 좀 있으려고 일찍 왔는데.. 쟤 학교 엄청 일찍 오는구나
난 애써 그 아이와 두 칸 떨어져 앉았다. 물론 어차피 이따가 자리는 다시 배정 받겠지만..
그 아이는 조용히 엎드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푹 잠들어있었다.
” .. 속눈썹이 엄청 길구나 “
” … “
여자인 나보다도 훨씬 길어보였다. 난 쌍꺼풀도 얇고 한데 쟨 쌍꺼풀도 진해보인다. 부럽네..
일찍 가서 할 게 없었던 나는 그냥 계속 그 아이를 관찰했다. 그러다 역시 어제 못 잔 탓에 졸음이 몰려왔고 그대로 같이 엎드려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 인마, 일어나라 ”
“ ㅇ..으 네? “
” 전학 첫날부터 잠을 처 자빠져 자고 있나 “
” 아 너무 일찍 와서.. 죄송합니다. ”
선생님으로 보이시는 분이 날 깨우셨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텅 비어있던 교실은 학생들로 꽉 차있었다.
옆을 보니 그 아이는 여전히 자고 있었고
난 자기소개를 하기 위해 앞으로 나갔고 금방 잠에서 깼다보니 머리 정리부터 했다. 후..
“ 안녕. 내 이름은 김여주야 ”
“ … ”
“ 다들 내가 왜 고등학교 2학년에 전학을 왔는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 … ”
“ 친하게는 안 지내도 되니까, 괴롭히지만 않아줬으면 좋겠어 ”
꽤 괜찮게 인사한 것 같다.. 하 진짜 어젯밤에 연습한 보람이 있다.
그때,
“ 어이 최범규 또 이제 일어났냐 ”
“ .. 예 ”
“ .. 최범규.. ”
아까 자던 아이가 혼자 부스럭거리며 일어났고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선생님은 당연스럽게 또 이제 일어났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다.
“ 흠.. 뭐 말썽 부리는 아들은 붙여놓는 게 좋겠지 ”
“ 네..? ”
“ 느그 자리는 최범규, 저 놈 옆으로 해라 ”
“ 아.. 네 ”
약간 망한 것 같다. 인사를 잘못 했던 걸까..? 아닌데. 분명 완벽했다고 생각했는데
난 쭈뼛거리며 그 아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후.. 여중을 다녔던지라 남자애와의 짝은 아직 좀 긴장이 된다.
“ .. 안녕 ”
“ … ”
“ 이름이 범규.. 랬지? ”
“ … ”
“ 그 내 이름은.. ”
“ 안다. ”
“ 어..? ”
“ 아까 인사한 거, 너 아이가? ”
“ 맞는데.. “
뭐야. 아까 자서 하나도 못 들은 거 아니었어..?

“ 다 들었으니까 인사 같은 거 또 안 해도 된다. “
” 아.. 응. 미안 “
확실히 느꼈다. 나 진짜 좀 잘못 걸렸구나
범규의 말에 내 멘탈은 완전히 부셔졌고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한 명씩 쿡쿡 거리며 웃었다. 하.. 이 날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 진짜 어떡하냐
학교가 끝난 후 무거운 몸을 이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하.. 거기까지 또 어떻게 걸어가
같이 가는 친구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애도 없고.. 나 진짜 망한 거 아닐까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 잘 적응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내 앞에서 비눗방울들이 하나씩 날라왔고 마치 그 방울들이 나를 감싸며 위로해주는 듯 싶었다.
어떻게 비눗방울에게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는지.. 내가 지금 진짜 좀 힘들긴 한가보다
근데 누가 불고 있는거지..?
스윽,
” 저건.. “

참 기가막히게 헤드셋을 낀 채로 비눗방울을 불며 걸어가는 최범규가 있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학교에서처럼 또 칼같이 차단될까봐 선뜻 말을 걸지 못하겠다. 하.. 그래도 유일하게 나랑 집 가는 방향이 같은 것 같은데
결국, 용기를 내 한 번 더 말을 걸었다.
톡톡,
스윽,
“..?”
“ 안녕. “
“ … “
“ 너 혹시 집이 이쪽 방향이야..? ”
“ 그런데, 와? ”
“ 그.. 내가 집이 좀 먼데..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 “
“ … ”
“ 혼자 가는 게 좋으면 혼자 가도 돼..! ”
범규는 그런 날 스윽 보더니 끼고 있던 헤드셋을 가방에 넣고 나에게 고개로 같이 가자고 까딱였다.
난 처음으로 같이 갈 친구가 생겨 기뻤고 그런 마음에 범규에게 질문을 마구마구 던졌다.
“ 너도 집이 멀어? ”
“ 꽤. ”
“ 그렇구나.. 헤드셋으로 무슨 노래 듣고 있었어? ”
“ 레이니. ”
“ 아.. 그 비눗방울은 직접 산거야? ”
“ 응. ”
“ 비눗방울 좋아해? ”
“ 그냥 어릴 때부터 쭉 불고 다녔다. ”
“ 그렇구나.. ”
범규는 계속 쫑알대는 내가 귀찮지도 않은지 모든 질문에 대답해줬고 난 은근 그런 범규의 모습에 감동 받았다. 내 생각만큼 무뚝뚝한 애는 아닌가보다
그렇게 걷다보니 범규는 집에 다 도착한 듯 우뚝 멈춰섰고 난 순간 잘못 멈춰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 여기가 너희 집이야..? “
” 응. “
“ 아쉽네.. 잘 가 ”
“ … ”
그렇게 범규에게 인사한 후 나도 우리 집으로 또 걸어가려는데
탁,
“ 잠깐 멈춰봐라. ”
“ 어..? “
범규는 내 가방 끈을 잡고 날 세우더니 갑자기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 그런 범규가 건넨 것은..
” 이건.. 비눗방울이잖아 “
” ..((끄덕)) ”
“ 이걸 왜 나를 줘..? ”
“ 가는 길 심심하다고 나 불러세운 거 아이가, 이거 불면서 가면 엄청 심심하진 않을기다. “
“ ㄱ.. 고마워. 잘 쓸게 “
“ ..((끄덕)) ”
“ 내일 봐..! ”
“ … ”
“ … ”

“ 니도 잘 가고 내일 보재이 “
“ … ”
생각보다 꽤나 더 다정한 범규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 같았다.
범규의 비눗방울 덕분에 난 가면서 심심하지 않을 수 있었고 다음날 일찍 문방구에 가서 더 큰 비눗방울을 사 범규의 책상에 몰래 넣어두었다.
첫날부터 꽤나 괜찮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