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한 번째 이야기
고깃 씀.
정국이가 해 준 맛있는 볶음밥을 먹고 모두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정국이는 어떤 귀엽고 볼이 빵빵한 토끼가 그려진 잠옷을, 지민이는 어떤 귀여운 노란색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 잠옷을, 태형이는 눈과 두꺼운 입술이 있는 하트가 그려진 잠옷을 입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과 꽤 잘 어울리는 잠옷들이었다.
정국이는 집안의 불을 다 끈 뒤에 구석에 짱박혀뒀던 초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자 분위기가 스산해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국이는 갑자기 스산해진 분위기에 베개를 끌어안았다. 지민이는 그걸 또 귀신같이 보곤 놀려댔다. 정국아, 무서워? 무서우면 형한테 안겨도 된다니까~ 라면서 두 팔을 벌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정국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니라구여 진짜 라며 귀엽게 변명했다. 지민이 정곡을 찌르니 당황해서 귀여운 말투가 튀어나왔나 보다.
“자자, 둘 다 그만하고. 무서운 이야기… 나부터 시작한다.”
태형이 분위기를 잔뜩 잡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예전에 겪었던 실화야…”
실화라는 태형이의 말에 정국이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열일곱 살즈음 됐을 때 일이야. 그때 갑자기 개인사정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어. 원래 학교마다 괴담은 여러 개씩 있잖아? 근데 유독 그 학교가 괴담이 꽤 많았어. 그 괴담들을 실제로 겪은 교사들이 그만 둔 사례들도 많았고… 그리고 그 괴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전학을 간 학생들도 많았고 진짜로 실종된 학생들도 많았어. 아무튼 그래서 내가 그런 미신을 잘 안 믿는 스타일이거든.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때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늦은 밤까지 학교에 남았는지 모르겠어. 우리 학교가 그런 소문으로 뒤숭숭하니까 야자는 안 해도 됐었거든. 뭐 진짜로 꼭 하고 싶다고 하면 해도 되긴 했었어서 나 혼자서 남아서 야자를 했어. 뭐 물론 공부는 안 했고. 그 학교에 이런 괴담이 있었거든. 야자 귀신… 늦은 밤까지 야자를 하면 야자 귀신이 찾아와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잖아. 그래서 내 두 눈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괴담이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늦게까지 남았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홉 시 반즈음 됐을 때였어. 야자는 거의 열 시에 끝나잖아. 삼십 분밖에 안 남았는데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야. 그래서 아 역시 거짓말이었네 하고 다시 핸드폰을 하려는데 갑자기 볼펜 똑딱이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나밖에 없었는데… 그때 좀 소름이 돋는 거야. 그래도 뭐 잘못 들었겠지 하고 이어폰을 꽂으려는데 갑자기 막 볼펜 똑딱이는 소리가 되게 거칠고 빠르게 들리는 거야. 너무 소름이 돋고 무섭고 시끄러워서 그대로 그냥 굳어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어깨를 건드렸어. 난 너무 놀라서 막 소리를 질렀고 날 건든 누군가도 내 소리에 놀라서 소리를 질렀지. 근데 그냥 평범한 학생인 거야. 그것보다 좀 이상한 게 있었어. 요즘에는 학생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교복에 명찰을 박제하고 다니진 않잖아. 근데 그 학생 교복에 명찰이 박제되어 있는 거야. 그게 좀 이상하긴 했는데 뭐 그러려니 하며 넘겼어. 그렇게 통성명을 하고 막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걔가 갑자기 자기랑 어디 좀 가달래. 학교에 뒤숭숭한 소문들이 떠돌아다니니까 혼자 다니기 너무 무섭다고 나보고 어딜 같이 가자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알겠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경비 아저씨가 들어왔어. 왜 아직도 여기 있냐고. 벌써 열 시가 넘었는데 왜 혼자 아직도 학교에 남아있냐고… 혼자라고 하니까 좀 이상하잖아. 분명 그 애랑 나랑 같이 있는데. 그래서 그 애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아무도 없는 거야.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는데… 진짜 뭐 증발한 것처럼… 진짜 너무 소름이 끼쳐서 그날 바로 집으로 곧장 가고 다음 날 그 애를 찾으려는데 애들도 다 모르고 선생님들도 다 모르는 애라는 거야. 진짜 그때 너무 소름이 끼치고 무섭고… 그러다가 더 소름이 끼치는 일이 일어났어… 내가 도서부여서 도서관을 청소를 하거든. 그래서 막 졸업앨범들 막 정리하고 있었는데 되게 오래된 졸업앨범이 보이는 거야. 그래서 막 그거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졸업앨범에 그 애가 있는 거야. 그 졸업앨범이 1970년대… 거였어…… 나중에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애가 야자를 빼먹지 않고 잘 나오는 애였대.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고. 근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맨날 야자를 빠지는 애한테 져서 2등인 거야. 그때 당시에는 처벌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1등인 애는 처벌도 안 받고 오히려 선생님이 잘 대해 주셨대. 그게 너무 이상했는데… 어느 날 알아버린 거야. 그 애가 국회의원 아들이라서 뭘 해도 용서를 해 주고 계속 돈을 받고 1등을 해 줬던 거지…… 그 애는 야자 시간에 그 말을 몰래 들어버렸대.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먹고 난 뭘 해도 안 되는구나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대… 그리고 그 애가 야자 귀신이 된 거야…… 경비 아저씨가 오기 바로 전에 내가 그 애를 따라갔었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
정국이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베개를 꼭 끌어안고 온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으아 무서워… 진짜 형이 겪었던 이야기예요…? 그러자 태형이가 잔뜩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구라야.”
태형이의 말에 아주 잠깐의 정적이 왔다가 정국이가 난리를 치며 그 정적이 깨졌다.

“아니, 이 형이 진짜 미쳤나?? 이씨.”
정국이는 끌어안고 있던 베개로 태형이를 마구잡이로 때렸다. 다행히 베개로 때려서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정국이가 워낙 힘이 꽤 세서 아프긴 아팠던 태형이었다.

“오, 뭐야, 뭐야. 이젠 베개 싸움인가?”
지민이 베개를 들고 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정국이 꺄르르 웃으며 베개로 지민을 때렸다. 그리고 계속 맞고만 있었던 태형이도 베개를 들고 둘을 마구 때렸다. 그렇게 그 집에선 어느 남학생들의 꺄르르 웃는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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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