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소원을 빌다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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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고깃 씀.









유성은 운석에 앉아 정국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자기에게서 멀어지려 하고 손길을 피한 정국이 신경쓰였나 보다. 유성은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며 정국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정국이의 형체 따윈 보이지 않았다. 이 시간쯤이 되면 항상 왔었는데… 유성은 걱정이 되는 마음에 운석에서 일어나 주변을 왔다 갔다 거렸다. 그리곤 물어뜯지도 않았던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너무나도 불안정해 보이는 유성을 별님이 발견하곤 가까이 다가갔다. 유성아, 무슨 일이야. 괜찮니? 유성은 별님에게 안기며 말했다. 정국이가 안 와. 별님은 토닥여 줄 손이 없어 그저 유성을 측은하게 바라보기만 하며 대답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예쁜 손톱 물어뜯지 말고. 응? 유성아. 그 말에 유성은 별님을 안고 있던 팔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님의 말대로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한 유성이 운석에 앉으려고 한 순간 정국이의 육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와 몸 군데군데에 붕대를 두르고 있었고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유성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그저 기쁘기만 했다. 그렇게 유성은 기쁜 마음으로 정국에게 다가가 그가 눈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눈을 뜰 때 놀래켜 줄 마음으로 장난스런 미소를 머금으며 정국이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 상태로 정국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정국이는 깨어날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유성은 이상한 마음에 별님을 바라봤다.




“정국이가 눈을 안 떠.”




별님은 정국이의 모습을 보자마자 어떤 상태인지 알았기에 유성에게 선뜻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별님은 머뭇거리며 곧 깨어나지 않을까, 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유성은 그런 별님의 행동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별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유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국이가 눈을 왜 안 뜨는 거냐며 계속 물어봤다. 별님은 유성의 사슴같은 눈망울에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말했다.




“정국이는 지금 죽어가는 거야, 유성아.”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다는 것조차 모르는데 정국이의 죽음을, 죽음 자체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죽어가는 거…? 그게 뭔데…?”




“혼은 알고 있지? 가끔씩 길을 잃고 우주에 떠도는 혼들.”




“응. 몸이 살짝 투명하고 되게 차가운 걸 혼이라고 부르는 건 알아.”




“그 혼들은 전부 죽은 거야. 죽는다, 라는 것은 인생이 전부 끝나는 걸 말해. 인생이 끝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것도 볼 수 없어. 그대로 모든 게 끝나는 거야.”




“그렇지만 혼들은…”




“그 혼들은 인생이 끝나고 나서, 죽고 나서 사후 세계에 가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면 돼. 그 혼들은 사후 세계로 가서 그대로 지옥에 갈지, 환생을 할지, 소멸될지 재판을 받게 돼.”




“지옥은 신이 알려 줘서 알아. 소멸이랑 환생은 뭐야…?”




“소멸은 죽는 거랑 비슷한 거야. 좀 다른 게 있다면 소멸은 환생할 기회조차 얻지 못 하지. 환생이 뭐냐면, 이번 생이 끝나고 모든 기억을 잃은 후에 또 다른 생을 사는 걸 말해.”




“그렇구나…… 정국이… 죽어… 하지만 환생은 할 수 있는 거지…?”




“…환생은 하지 못 해. 한 번 운명이 바뀐 자는 절대 환생하지 못 하고 그대로 소멸이 될 거야. 운명이 바뀌면 지구의 규율이 무너져서 그 벌을 받게 되는 거지.”




유성은 점점 투명해져 가는 정국의 손을 붙잡았다. 항상 따뜻하기만 했던 그의 손이 동상을 입을 듯 차가웠고, 부드러웠던 살갗의 느낌이 희미해져 갔다. 이게 죽는다, 라는 것인가… 유성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정국을 쳐다봤다. 그리곤 자신의 몸을 보았다. 자신의 몸 또한 정국처럼 미세하게 투명해져 갔다. 유성은 그제서야 알았다. 신이 말했던 목숨과 숨결… 그것은 곧 본인도 죽는다는 뜻이었다.




유성은 너무나도 무서웠다. 자신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아닌 정국이가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자기가 어떻게 되든지 안중에도 없었다. 유성의 정신은 오로지 정국에게로만 집중되어 있었다. 유성에겐 오직 정국만이 보였다. 점점 차가워져 가는 전정국이.




“나 너무 무서워, 정국아……”




유성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유성은 쉴새 없이 눈물을 흘리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 한 채 정국을 끌어안았다. 그리곤 정국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엉엉 울어댔다. 그러다가 유성은 정국이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 유성은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듯 눈물을 닦고서 안고 있던 정국을 운석 위에 눕혔다.




유성은 정국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가벼이 입맞춤을 했다. 마치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야, 라고 말하는 듯 했다.




유성은 두 손을 꼭 모았다. 그리곤 두 눈을 감았다. 별님은 유성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별님은 소리치면서까지 유성을 말렸다. 유성이 하려던 행동은 바로 자기 자신이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유성이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자기 자신에게 소원을 빌면 안 된다. 그게 암묵적 룰이며 그것을 어길 시에는 소멸하게 된다.




유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리는 별님을 무시하고 소원을 빌었다.




유성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정국이를 살리고 싶었다.




유성은 정국이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유성은 정국이 덕에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바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유성은 정국이 덕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준 사람이 점점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숨이 멎어가는 것이, 육체가 차가워지는 것이 무서웠다.




유성은 생각했다.




내가 소멸될지라도, 더 이상의 생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 한 몸 희생해 사랑하는 자의 행복을 빌어 보리라.




유성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부디 정국이가 저를 잊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암묵적인 룰을 어긴 유성은 벌을 받아야 하는 법. 유성의 소원이 이뤄지면서 유성의 몸은 점점 사라져갔다. 투명해지고 또 투명해지고… 한없이 투명해져 가는 그녀는 제 몸이 다 사라지기 전에 정국을 한 번만 더 저의 눈에 담아 보았다.




그렇게 유성이라는 존재는 정국의 가슴 한 곳에 자리 잡아 괴롭히던 그리움과 슬픔을 품은 채 사라져갔다. 눈물인지 그녀의 육체의 조각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휘날리며 사라져갔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지 못 한 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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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정국이의 심장박동수가 정상으로 돌아오며 잃어가던 정신을 차렸다. 옆에서 오열하던 정국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는 정국이를 한 번 쓰다듬은 뒤 또 오열을 하시며 의사를 찾으셨다. 우리 아들이 살아났다고. 그리고 옆에 있던 태형과 지민 또한 흐르던 눈물을 닦으며 정국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정국은 정신이 혼미하고 눈앞이 흐릿해 태형과 지민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어지러워 힘겹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새카만 밤하늘 속 별똥별이 빛을 발하며 떨어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정국이의 눈에는 오직 별똥별만이, 유성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정국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정국이의 기억속에서 유성이란 존재가 전부 사라졌기에.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정국은 밤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유성, 소원을 빌다_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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