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네 번째 이야기
고깃 씀.
커튼을 뚫고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에 정국은 눈을 떴다. 비몽사몽한 정신을 간신히 차리며 저의 두 손을 보았다. 유성에게 줘서 그런지 빈손이었다. 유성이라는 존재가 허구는 아님에 안심했지만 곧 있으면 유성과 이별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썩 기쁘지만은 않았다. 기쁨과 슬픔이 정국이의 마음속에 동시에 공존하며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일어났어?”
정국보다 먼저 일어난 지민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며 말했다. 네. 잘 잤어요, 형? 정국이의 물음에 지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머리를 마저 말리려 드라이기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국은 지민이 방에 들어감과 동시에 일어나며 찌뿌둥함에 기지개를 폈다. 이불을 정리하려고 한 순간 옆에는 여전히 태형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마치 고양이가 골골송을 부르는 듯했다.
정국은 벽시계를 통해 벌써 열 시가 다 되어가는 것을 확인하곤 태형을 깨웠다. 태형은 뭐라고 구시렁대더니 이내 벌떡 일어났다. 태형은 까치집 머리를 정리하곤 비몽사몽한 정신을 차리려는지 기지개를 폈다. 그는 아직도 졸린지 하품을 해댔고, 그러면서 초코찐빵 같은 얼굴을 하고는 옆에 서 있던 정국을 바라봤다.

“근데 너 어제 안고 잤던 곰인형이랑 꽃은 어디 갔냐?”
“아, 제가 자다가 뭉개버릴까 봐 그냥 중간에 일어나서 방에 뒀어요.”
역시나 물어볼 줄 알았던 정국은 준비해 놓은 변명을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늘어놨다. 태형은 그런 그의 연기에 깜빡 속아넘어가며 그렇구나 라고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아, 어머니 생신 파티 준비하게 얼른 씻어. 태형이 너도 씻고.”
머리를 다 말린 지민이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태형은 정국에게 먼저 씻으라고 말한 뒤에 이불을 갰다.
정국이 다 씻고 그 다음에는 태형이 씻으러 들어갔다. 태형이가 씻는 동안 정국은 머리를 말렸고 그 둘이 준비를 하는 동안 지민은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라는 말 정도는 나오게 만들었기에 지민이 먼저 만들고 있었다.
정국이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 음식을 만드는 데에 합류했다. 이 셋 중에서 정국이가 음식을 가장 잘만든다. 그리고 태형은 요리에 소질이 없어 풍선에 바람을 넣고 집안을 꾸미는 것을 담당했다. 태형은 꾸미는 것에는 꽤나 소질이 있었다.
-
한 몇 시간즈음 지났을까 준비를 다 마치고 태형과 지민은 집으로 갔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내라며. 정국은 태형과 지민이 가는 것에 대해 아쉽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간만에 가족끼리 오순도순 앉아 밥을 먹을 생각에 좋기도 했고 태형과 지민과도 함께 밥을 먹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터라 아쉬웠다.
‘띠리릭, 철컥-’
아쉬워할 새도 없이 누군가 문을 벌컥 열며 들어왔다. 정국은 현관문이 열리며 누군가의 형태가 보이자마자 활짝 미소를 지었다. 바로 정국이의 어머니,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님 또한 문이 열리고 정국이가 보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활짝 미소를 지으셨다. 자주 봤었지만 맨날은 보지 못 했던 게 이유였는지 부모님께선 반가운 마음이 드셨나 보다.
“생신 축하드려요, 엄마.”
“어머~ 이게 다 뭐야, 아들~”
어머니는 태형이와 함께 꾸민 집안을 보고서 황홀한 표정을 지으셨다. 집안을 잠깐 둘러보다가 이내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을 보고서 감동을 했는지 두 손으로 입을 감쌌다.
“세상에 이게 뭐야~ 우리 아들 요리 실력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많은 요리들을 다 한 거야?”
“혼자 한 건 아니구요, 지민이 형이랑 같이 준비했어요. 집안을 꾸미는 데에는 태형이 형이 도와줬구요.”
“어머, 세상에…”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며 정국이를 끌어안았다. 정국이는 그런 어머니의 등을 토닥여 드렸다.
“요즘에 채소들도 많이 비싸고 그럴 텐데……”
어머니는 감동하신 것과 동시에 걱정도 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안심시키려는 듯 정국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제가 지금 알바하는 곳의 사장님께서 되게 인자하신 분이시라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물론 다 거짓말이었다. 그저 걱정하시는 어머니를 위한 정국이의 하얀 거짓말이었다.
“그래? 다행이네~”
“아 참, 저 엄마한테 줄 거 있어요.”
정국은 잠시 방으로 간 뒤에 어제 샀던 코트와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더욱 더 감동하시며 걱정하시는 듯했다. 이 비싼 걸… 정국은 그런 어머니에게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정국이가 기껏 준비한 것이니 기쁘게 받았다. 그리고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던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너희 엄마 코트 다 해진 거 어떻게 알았니. 그리고 딱 너희 엄마 취향인 걸로 잘 샀네.”
아버지의 말에 정국은 뿌듯해하며 기뻐했다. 어머니 또한 기뻐하셨다. 아버지 또한 그런 어머니와 정국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날은 정말 행복한 하루였다. 가족끼리 가만에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함 속에서도 정국은 간간이 유성을 떠올리곤 했다. 유성을 떠올리는 그의 얼굴은 전처럼 마냥 기뻐 보이진 않았다. 어딘가 서글퍼 보이기도 했고, 뭔가를 결심한 듯해 보이기도 했다.
•
•
•
다음 화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