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소원을 빌다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Gravatar
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고깃 씀.









신은 유성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정국을 데려갔다. 도대체 무슨 은밀한 말을 할 것이길래 이러는 것인지.




“전정국, 너 때문에 모든 게 다 뒤엉켰어.”




신은 다짜고짜 정국을 탓하며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국은 뜬금없이 자기를 탓하는, 어떻게 보면 유성의 죽음에 연관된 신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저 때문에 모든 게 다 뒤엉켰다니요.”




“네가 유성에게 감정을 가르쳐 주는 바람에 유성의 운명이 바뀌었고 네 운명도 바뀌었다고.”




“그게 무슨…… 운명은 계속 그냥 바뀌는 거잖아요. 그리고 저랑 유성이의 운명만 바뀐 건데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에요?”




“너랑 유성만 바뀌는 건 상관이 없지. 근데 네 주변에 아무도 없니? 엄청 많잖아, 주변 사람들. 네 운명이 바뀜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운명도 바뀌게 되었다고. 그럼 어떻게 될까? 네 주변 사람들의 주변 사람들도 운명이 바뀌게 되는 거야. 그러면 지구의 규율이 무너지는 거고.”




“겨우 운명이 바뀌는 걸로 지구의 규율이 무너져요…?”




“겨우 운명이라고? 운명을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모든 사람들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거야.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갑작스러운 변덕 탓에 평소 타던 버스를 타지 않았어. 그런데 뉴스에 그 버스가 사고가 나서 승객들, 버스 운전기사까지 전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나왔지. 그럼 그게 그 사람의 운명이 바뀐 걸까? 아니야. 그저 그게 그 사람의 운명이었을 뿐이야. 운명이 바뀐 게 아니라고. 네가 유성에게 감정을 가르쳐 주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 적이 없었어.”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거라구요…?”




“그래. 너에게도, 유성에게도 운명은 전부 정해져 있었어. 네 운명을 말해 줄까? 넌 원래 전정우를 네 인생에서 도려내지 못 하고 계속 품다가 결국 전정우에게 죽을 운명이었어. 유성에게 감정이 없었더라면 너에게 그런 조언을 해 주지도 않았을 테지.”_18화 참고




“그럼 유성의 원래 운명은…”




“소원을 계속 이뤄 주다가 제명을 다 하고 전에 있었던 유성들처럼 죽고 불행이 어느 정도 따르긴 하지만 행복이 가득한 운명을 지니고 환생했을 거야. 그게 유성이라는 존재의 운명이니까.”




“바뀐 운명이 뭔데요?”




“그건 말해 줄 수 없어. 네가 뭔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제가 뭔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건 좋은 운명이 아니라는 뜻이네요.”




“네가 유성에게 감정을 가르쳐 주지만 않았어도 유성은 지금쯤 제명을 다 하고 행복하게 환생했을 거야.”




“……그럼 지금이라도 유성에게 더 이상의 감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유성은 어느 정도 행복할 수 있어요?”




“이미 늦었어.”




“저기…!”




그래도 혹시 모를 희망을 품고서 신을 불러보았지만 갑작스레 오는 두통에 정국은 말을 하다 말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엄청난 두통이 밀려오면서 앞이 흐려지고 온 세상이 울렁거린다. 이건 분명 꿈에서 깨어날 거라는 느낌이리라 짐작한 정국은 나지막이 말했다.




“유성이는 제발… 행복하게 해 주세요…”




-




눈을 떠 보니 옆에서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뇌 속까지 비집고 들어와 울리는 것만 같은 느낌에 정국은 실증을 내며 알람을 껐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실증이 많지도 않았고 이렇게까지 우울하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정국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유성과 만나지 않았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라고 중얼거리며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정국은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다. 정국은 세면대를 잡고서 휘청이는 몸을 바로잡았다. 하마터면 뒤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힐 뻔했다. 십팔 년이라는 인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화장실에 미끌어질 뻔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정국은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냥 우연이겠거니 대충 넘기며 물을 틀었다. 그러자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며 정국의 온몸을 적셨다. 세수와 양치 먼저 하려고 옷을 전부 입고 물을 틀었던 탓에 옷이 전부 젖고 말았다.




“이게 뭐야……”




어차피 다 벗을 거라 상관은 없었으나 옷까지 젖으니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정국은 찝찝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쳤다.




오늘은 주말이라 딱히 나갈 곳도 없었으나 집에만 있으면 기분이 더 우울해질 것만 같아 정국은 무기력해진 몸을 이끌로 밖으로 나갔다.




-




평소 생기지 않았던 안 좋은 일들이 생기고, 그것으로 인하여 기분이 찝찝해지고… 어쩌면 그것은 더 안 좋은 일이 생기니 조심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정국은 그것을 알아차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었더라면 그런 운명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도 신이 말한 대로 정국이의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 필연적 운명.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