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윤기 신드롬

01. 조졌다





민윤기는 그랬다. 자신의 헤픈 웃음으로 주변인들의 환심을 사는, 줄여서 얘기하면 지 잘난 맛으로 사는 애.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 녀석은 세상 순수한 웃음으로 사람을 홀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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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른다. 저 말간 웃음에 숨겨진 다른 얼굴이 있을지.




*

뭐 이런 기막힌 우연이 다 있는지.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던 민윤기와 올해 또 같은 반이 되었다. 지겹게도. 또 지 잘났다는 얼굴을 들고선 반 아이들을 홀릴 게 뻔했다. 물론 나야 그런 거에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지만. 민윤기를 처음 접하는 애들은 저 가식적인 웃음에 금방 넘어갈 것이다.


하늘은 참 매정하기도 하시지. 새학기라 번호순으로 앉은 탓에 민윤기와 짝꿍이 되었다. 우연도 뭐 이런 우연이 있는 건지. 당장 자리를 박차 나가고 싶었지만 곧 수업 시작 종이 칠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안녕.”
“... 어, 안녕.“


작년에 같은 반이었어도 말 한 마디 안 섞어본 사이라 어색했다. 어차피 몇 주만 지나면 바뀔 자리일 텐데. 그냥 체념한 상태로 한 달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찰나에 민윤기가 말을 걸었다.


“너,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 맞아."

"반가워."

"아, 응."



민윤기가 또 뭐라뭐라 했던 것 같았는데. 그 이후에 나눈 대답은 솔직히 말해서 잘 기억이 안 난다. 평소에도 수업을 들을 때 쌤들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곤 했는데, 내 귀가 민윤기의 말도 그렇게 처리해버린 것 같다. 뭐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말이 없었다. 나눈 얘기라곤 형식적인 얘기 뿐이다.



“곧 수업 시작하겠다.”


이런 내 말의 의미는 곧 수업 시작이니 조용히 해였다. 날 쳐다보는 민윤기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개학부터 정상 수업을 한다며 수군대는 다른 친구들의 말에 가방을 뒤적였다. 1교시 수업을 위해서였다.


“시간표 있어? 있으면 보여줄 수 있을까?”


민윤기가 매번 학교에서 보여주는 생글생글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부탁을 해 왔다. 저 가식적인 얼굴이, 목소리가, 행동이 역겨웠다. 어차피 보여줘봤자 이동 수업 달라서 너한테 소용 없을 걸? 하고 아니꼬운 말이 나올 뻔한 걸 참으니 헛기침이 나왔다. 애써 목을 가다듬는 척, 침을 삼켰다. 저 보여주기식 태도는 여전히 역겨웠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의 첫 시작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고3인 것도 정신 나갈 것 같은데 그냥 내게 주어진 이 상황들이 세상이 내게 벌을 내리는 것만 같다고 느껴졌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했다고. 


생각을 너무 많이 했는지 편두통이 왔다. 계속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꾹 눌렀다. 그냥 시간이 빨리 갔으면.


*

시간은 가는 둥 마는 둥 흘러가다가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었다. 반 얘들은 다 밥 먹으러 반을 비웠다. 난 딱히 같이 밥 먹을 친구도 없을 뿐더러 입맛도 없고, 새 친구를 사귈 기력도 없어서 책상에 엎드려 잤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평소 엎드린 자세로 자는 게 불편했던 난 깊은 잠에 들지 못했다. 결국 15분도 안 돼서 일어났는데 책상에 웬 메모장이 붙은 초코파이가 있었다. 음? 초코파이에 붙어있는 형광 핑크색 메모장에 적힌 글씨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음엔 밥 꼭 먹어.
공부 파이팅.



볼펜으로 또박또박 정갈하게 쓴 글씨체. 기억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작년 우리 반 반장이었던, 빼박 민윤기의 글씨체다. 그의 글씨체임을 알아채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져서 초코파이를 던져버릴 뻔했다. 공부 안 하는 거 뻔히 알면서 놀리는 건가? 잠이 확 깼다. 기분이 나쁘단 이유로 난 충동적으로 초코파이와 거기에 매달린 기분 나쁜 메시지가 담긴 메모장을 뒷문 쪽에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누군가 뒷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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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썅. 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