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윤기는 항상 웃고 다닌다. 선생이나 학생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미소를 짓는 데다 성격도 좋고 예의 바르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던 그는 정말 만인의 남자였다. 그냥 한 마디로 학교 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윤기를 좋아했다.
근데 그런 민윤기가 무표정으로 쓰레기 통 안을 들여다본다. 그냥 아주 X됐다. 민윤기가 싫은 건 싫은 거지만 이렇게 대놓고 티를 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어차피 X됐으니 될 대로 돼라 마인드로 난 민윤기가 들어온 뒷문으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가버렸다.
사람들은 어떠한 일이 실패하거나 자신이 지금의 나처럼 무언가 망한 걸 깨달을 때 자살 마렵다는 말을 하곤 한다. 지금의 나도 그렇다. 학교에서 착하다고 소문 난 그 민윤기에게 적대감을 보였으니 이건 소문나면 그것대로 내 남은 1년은 좀 괴로울 것이다. 난 왜 이리 줏대가 없는 건지…
*
학교 전체를 정처 없이 걷다가 점심 시간이 끝나버린 바람에 다시 반으로 왔다. 다행히 점심 시간 이후엔 쭉 이동 수업 뿐이라 민윤기와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해야 했다. 반에는 나처럼 책과 필통을 챙기고 있는 얘들 두세 명 뿐이었다. 후딱 하고 가야겠단 마음으로 허겁지겁 정리해서 가려는데 뒷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설마 민윤기는 아니겠지?

“…”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필 내가 교실에 있는 타이밍에 올 줄은 몰랐다. 뒷문으로 들어오는 민윤기와 눈이 잠깐 마주쳤지만 금방 내게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금세 반에 몇 안 남은 친구들 중 한 명에게 가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호호 떠드는 게 맘에 안 들었지만 알 바는 아니었기에 수업 준비물을 다 챙기고 앞문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안녕?”
“…”
“잠깐 나 좀 볼래?”
“…”
“…“
”… 나 담임 쌤이 부르셔서, 다음에 얘기하자.”
쌤은 개뿔, 새학기 첫 날이라 내 이름도 제대로 모를 담임까지 들먹이며 되지도 않는 구라를 치고 나왔다. 그냥 다시는 보지 말자.
*
다음 시간, 그 다음 시간에도 어찌저찌 민윤기를 피해 다니다 보니 어느덧 하교 시간이 되었다. 그와 짝이었기 때문에 종례 때 어쩔 수 없이 붙어 있었지만, 쌤의 집에 가도 된다는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나는 잽싸게 자리에서 벗어나 뒷문으로 달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 잠깐 얘기 좀 할까?
”…“
내 책가방 붙잡고 놓지 않는 민윤기 때문에 그를 피하려고 했던 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
오래 얘기하고 싶은 맘은 없어서 집에 가면서 얘기하자고 했다. 가다가 나오는 갈림길에서 중간에 튀려고 했던 내 계획은 민윤기가 내 가방 끈을 놓지 않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계획은 총 두 개였다. 남은 하나는 지나가다가 민윤기가 하교하는 걸 몇 번 본 기억을 되살려서 민윤기가 가는 방향의 반대 방향이 집 가는 길이라고 구라를 쳤다. 그랬더니 본인도 여기로 간다며 날 따라왔다. 그에게 붙은 만인의 남자 타이틀을 떼어 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침묵 속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가방 따위 내던져버리고 튀어 버릴까 생각하던 중 민윤기가 침묵을 깨고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질문을 했다.

“왜 버렸어?”
“…”
왜 버렸냐고? 뭘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초코파이가 싫어서? 그냥 네가 싫어서? 무슨 대답이든 간에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게 뻔했다. 그렇게 무슨 답변이 베스트인지 자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다가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그만 아무 말이나 뱉어버렸다.
“싫어서.”
“…”
“... 초코파이 별로 안 좋아해서.”
민윤기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뒤에 한 마디 더 안 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민윤기가 내 말을 듣고는 내 가방을 잡고 있던 팔을 스르르 놓길래 나쁘지 않게 상황을 넘긴 것 같아서 난 민윤기가 내 가방 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을 놓자마자 줄행량을 쳤다. 다행히도 뒤따라 오는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제발 그가 내 해명을 꼬아서 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