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게만 소중했던 순간들
W.텐10
우리들의 첫만남이 좋진 않았던 것 같았다.
이사를 온지 얼마 안 된 내가 길을 헤메던 도중, 골목에서 당당하게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너희를 마주쳤을때, 태형이 내게 지갑을 내놓으라 협박하려 다가오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지.
"...? 괜찮니?"
상황도 잊고 요란하게 넘어진 태형이에게 손을 내밀자 새빨게 졌던 그 얼굴을 생각하면 아직도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 뒤로 전학간 학교에서 정국이와 지민이랑 같은 반이 되고, 남준이와 같은 동아리에 들게 됐어.
어쩌면 우리가 친하다 느낀 건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서였는지도 몰라.
그래서 착각했나봐. 너희가 내 친구라고.
"야, 전 정국. 너 여기 깼어?"
"당연한 거 아님? 와, 너 개쪼렙이네."
"야, 얘가 개쪼렙이면 얘보다 더 낮은 나는 뭐냐?"
웃으며 폰게임을 나누며 투닥거리고,
"냄준냄준, 오늘 영화 뭐임?"
"어스"
"미친 거 아님? 누가 추천함?;;"
"내가. 너 공포 싫어하잖아."
"이 새기가?"
놀리며 재밌게 웃다가도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가려주며 분위기를 풀어주기도 하고,
"아, 미친. 트롤들? 제발 트롤짓 적당히 좀."
"야, 민윤기 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어!"
"맞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니, 정 호석, 김 단아를 왜 한 팀에 넣어주는데?! 니네 양아치냐!!"
"호석아, 기죽지 말자! 우리의 길을 가는 거야!"
"좋아! 가자 단아야!"
"난 빼고 가 미친놈들아!"
티격태격해도 항상 함께 게임해주기도 하고,
"여기랑 여기랑 여기."
"야, 그걸로 되겠냐? 여기랑 여기도 가야지!"
"누가 돼진 아니랄까봐..."
"?? 나보다 네가 더 돼지임."
같이 갈 맛집들을 정하기도 하고,
"야, 너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지. 미련하게 왜 맨날 혼자 끙끙대는데?"
"...누가 할 소리? 너 저번에 열나는 거 말 안하고 놀다가 응급실 간 거 기억 안 나냐?"
"안 나는데.^^"
아프면 서로 곁을 지켜주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착각했나봐.
이럴 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잘해주지 말지.
"안녕, 단아야!"
무해하게 웃는 얼굴로 다가오는 네가 좋았어.
애들이랑 친해진 이후로 날 시기하는 애들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순수하게 웃는 네가 귀엽고, 사랑스러웠어.
"여주야, 너 또 코트 입었어? 눈 오는 거 안 보이니."
"단아야. 나는 얼죽코야."
"더죽패로 넘어와! 내가 잘 해줄게!"
난 우리가 10년 뒤에도 이렇게 웃으며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꺄아아악!!!"
"한 여주!!!"
네가 계단에서 굴렀다.
넌 누가 자길 밀었다했고, 그때 네 옆엔 나뿐이었다.
자연스레 의심 어린 아이들의 시선이 날 향했다.
"내가 왜 여주를 밀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여주가 석진이랑 사겨서 그런 거 아니야? 너 석진이 좋아하잖아."
"그딴 허접한 이유로 친구를 밀었다고? 내가?"
김 석진을 좋아한 건 사실이었다.
취미도 맞았고, 잘 통했으니까 함께있는 시간 역시 길었고, 나도 모르게 호감이 생긴 건 분명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여주와 사귄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마음을 접었다.
그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지금 우리들의 관계에 대한 소중함이 훨씬 컸으니까.
적어도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동안 너희가 나를 제대로 봐줬다면, 그런 말을 내게 할 순 없었을거야.

시간이 지나고, 여주가 퇴원하고 너희는 언제나와 똑같은데 나만 달랐다.
항상 함께였는데, 이제 나는 혼자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