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가 저녁쯤에 과자를 사러 편의점에 들렸다 집에 가는 길이었다.
“집에는 나 혼잔데 자꾸 누가 내 과자를 다 먹는거니…~”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며 집으로 가던 길, 여주는 발걸음을 멈췄다.
여주네 집 앞 놀이터 그네에 누군가 앉아서 울고있었다.
그 때의 시각은 약 8시 50분 정도였고, 사람이 별로 없었을 때였다.
여주는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어서 다가갔다.
그런데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윤아진…?”
아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여주를 쳐다보았다.
“윤아진….너 왜그래…?”
“괜찮아?”
“임여주네…”
“오늘 학교 왜 안 왔어…?”
“배 아파서.”
“너는 왜 여기 있어?”
“그것도… 울면서.”
“나 오늘이 학교 마지막 날이었는데.”
“너 못 봐서 얼굴이라도 보려고 와봤어.”
“마지막날..?”
“너 전학 가?”
“…아니.”
“나 자퇴해.”
“…뭐라고…??”
”자…자퇴를 한다고…?“
”응, 힘들어서.“
”..왜…?“
”뭐가 힘든데 자퇴까지 결정하게 된거야..?“
”부모님이랑 싸웠거든.“
“싸워서…?”
“싸워서 반항하려고?”
“ㅎ..아니.”
“검정고시 볼거야.”
“…그렇구나.”
그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단둘이서 진지하게 대화한 적은 처음이었다.
“여주야…”
“….”
“..하지마.”
“내가 무슨 얘기를 할 줄 알고.”
“…미안하다는 얘기면 하지 마.”
“더 이상 안 듣고 싶어.”
“잘못한 건 난데 왜.”
“정말 미안해서 그러는거야.”
“사과 받아줬으면 됐지.”
“…ㅎ”
“임여주는 진짜..”
아진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임여주는 너무 착해.”
“…”
“자퇴하고도 보고싶을 것 같애.”
“…나도.”
“네가 왜 날 보고싶어 해.”
“싫어하던 애 꺼졌으니까 좋아해야지.”
“싫어했을수록 기억에 더 남지.”
“그리고 지금은 안 싫어.”
“…”
“윤아진.”
“응?”
“잘 지내.”
“연락하고 살자.”
아진은 여주를 쳐다보며 더 눈물을 흘렸다.
“알겠어.”
“너도 잘 지내.”
“최연준이랑 오래 가고…”
“…응.”
“나중에 만나야 해. 꼭.”
그 다음 날, 여주는 아침 일찍 학교가기 위해 일어나니 연준에게 톡이 와 있었다.

그렇게 여주는 연준 없이 시연, 정혁과 함께 학교에 갔다.
그런데, 교실에는 연준이 없었다.
분명 지금쯤 연습 끝나고 왔을텐데.
시연은 궁금해하며 여주에게 물었다.
"최연준 오늘 안 와?"
"모르겠어. 한동안 연락 안될것같대."
"바쁜가.."
"이정혁 너는 뭐 알아?"
"나도 잘 모르는데."
"나한테 말 한건 딱히 없었어."
"배구 연습때문에 어디 간건가?"
여주는 신경이 쓰였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굴었다.
"..뭐 그럴 수 있지.."
"야, 그럴 수 있긴 뭘 그럴 수 있어."
"여친한테 말도 없이 학교 안 오고 연락 없다고 소식 하나 남기는게 남친이야?"
"에이, 괜찮다고..."
금방 올 것 같던 연준은 약 1주일 채 학교도 오지 않았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야 임여주, 그래서 최연준 언제 온다냐?"
"모르겄다. 어디 간지도 모르는데ㅋㅋ..."
"담임쌤께 여쭤봐."
"쌤한테도 그냥 개인사정이라고 말해놨나봐."
"...."
"너네 커플도 이제 끝이구나..."
"..카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아."
"이거 잠수이별 맞지..?ㅋㅋ..."
"그런 듯."
"ㅋㅋ...17년 살면서 잠수이별 당한 애 실제로 처음 봐."
하지만 여주는 아무 일도 없듯이 웃었다. 한결같이.
그러나 전교생들에게 소문이 퍼지는 건 그저 시간 문제일뿐이었다.
'임여주랑 최연준 헤어졌대.'
'임여주가 차였대.'
'내 친구가 그러는데...
최연준 윤아진 자퇴한거때문에 그렇다는데?'
'그럼 최연준이 윤아진이랑 바람핀거네.'
'근데 정작 임여주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데?'
'아무렇지도 않겠냐?
아무렇지도 않은 척이지.'
'근데 최연준은 학교 왜 안나와?'
'윤아진이랑 같이 자퇴했나봐 ㅋㅋ'
말 같지도 않은 소문은 가라앉을 틈이 보이지 않았다.
이 카더라 통신들.
헤어진 거 아니라고.
내가 차인 거 아니라고.
최연준 바람 핀 거 아니라고.
그냥....
그냥 내가 바보같이 기다리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연준이 영문도 모른채로 사라진지 약 2주일이 지났다.
시연과 여주는 약 오후 9시쯤, 학원이 끝나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 둘은 평소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를 떨었다.
"아니 진짜 그랬다니까ㅋㅋ"
"구라치지마 임여주~ㅋㅋㅋ."
"아니 레알이라고. 인증할 수 있어."
"해 봐 어디~"
여주는 폰을 켜 갤러리에 들어갔다.
"기다려 봐. 여기서 찾아보ㅁ....."
여주의 갤러리에는 연준의 사진이 한가득이었다.
"...."
"..아직 안 지웠냐?..."
"..ㅎㅎ몰랐네."
"갤러리 들어갈 일이 없으니."
여주의 갤러리에 있는 연준과 여주의 사진은 행복해보였다.
여주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보고싶다..."
"..다른 애 소개시켜줘?"
여주는 시연의 말에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웬만하면 우리학교에서 잘생기고 훤칠한애로 데려와~ㅋㅋ"
"제가 임여주님 취향을 모를까봐요?ㅋㅋ"
"되도록이면 담배 안하는 놈으로다가."
"우리학교에 담배 안하는애가 몇명 될 것 같냐."
"그래도 찾아 와. 나 담배 냄새 극혐하는 거 몰라?"
"완전 강남에서 김서방 찾기네."
"강남이 아니라 서울 병신아."
"강남이나 서울이나."
여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났다.
"아이, 누가 초등학교 근처에서 담배를..."
옆 골목길에서 누군가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있었다.
"후....."
"어떤 무개념인지 얼굴이라도 봐야겠어 아주."
"임여주 미쳤냐 ㅋㅋ."
여주는 골목 담장 사이로 그 사람을 훔쳐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 순간 그 사람 뒤에 있던 집에서 마침내 불이 켜져 얼굴이 보였다.

"....최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