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우리 부모님 해외에 계시는 거 알지?“
”어, 왜.“
”그래서 난 집에서 혼자 살아.“
”집 주변에 할머니 사셔서 가끔 오시고.“
”근데?“
“서론이 왜이렇게 길어.”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
약 2주 전.
혼자 집에 있던 연준은, 누군가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그 소리는 기본적인 똑-똑. 소리가 아닌, 누군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야 이새끼야 문 안열어?!“
연준은 의문이 들어 입을 열었다.
”누구세요?“
”문부터 열어.“
연준은 아무 거리낌없이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한 열 명쯤 되는 건장한 성인 남성들이 우르르 있었다.
”니가 강xx 할매 손자지?“
”네? 그런데요?”
“니네 할머니가 우리한테 빚진게 5000정도 있거든?”
“네?! 5000이요?”
“그래, 근데 갚으라고 ㅅㅂ 몇 번을 쳐 말했는데 안 갚더니, 결국 안 갚고 가셨잖아~”
연준은 그 남자의 말에 놀라 빚쟁이들을 쳐다보았다.
”가셨다니요? 어딜 가요 우리 할머니가.“
”어디긴, 하늘로 가셨지.“
연준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아저씨가 우리 할머니 잘못되게 했어요?“
그 남자의 옆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연준의 돌발행동에 그 남자에게서 연준을 떼어내려 애썼다.
”이 새끼가 돌았나.“
”니는 니 할매가 뒤진지 산지도 몰라?“
”아저씨가 그랬냐고요.“
”ㅅㅂㅋㅋ 내가 그랬음 진작 그랬지.”
“아무튼 이번 달까지 5000 보내라.”
“제가 지금 당장 5000이 어딨는데요.”
“저 고딩이에요.”
“다음달 까지 안 보내면 니네 부모 있는데까지 찾아가서 다 엎어버린다.”
연준은 그 남자의 말에 기가 차 코웃음을 쳤다.
“구라같냐?”
”네 존나.ㅋㅋ“
”니네 부모 프랑스에 있잖아.“
그 남자가 모를거라고 생각했던 연준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어른을 뭐로 보고 고삐리가.”
“정확히 5000 보내라.”
“그래서 알바 시작했어.”
“…연락은 했어야지 그래도.”
“여주가 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 핸드폰도 중고로 팔았어.“
“…지금까지 얼마나 모았어?”
“500정도…”
“택도 없네.”
”하… 나 진짜 여주한테 미안해서 어떡해.“
”내가 그래도 여주한테 상황 설명 해보고…“
”하지 마. 내 얘기는.“
”왜?“
”쪽팔려.“
”빚쟁이들한테 시달려서 알바하고 있다는게.“
”뭐가 쪽팔려.“
”여주가 그런거로 너 싫어할 애냐?“
”정은 떨어질 거 아니야 조금이라도.“
“그니까 하지 마.”
“넌 진짜..”
“여주를 뭐로 보는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됐다. 어차피 여주도 따로 잘 되는 사람 있어.“
”뭐?“
”누군데.“
”니가 알 필요 없어.“
”넌 빚 갚는데만 집중해.“
연준은 여러모로 마음이 심란했다.
”…근데 할머니 장례는 치뤘어?“
”ㅎ…아니.“
”돈 모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미쳤냐..?“
”그래도…장례는 치뤄야지.“
”모르겠어 나도. 내 인생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튼 여주 너 많이 걱정했으니까.“
”다가가서 빌던지, 무릎을 꿇던지 알아서 해.“
그 날 저녁, 여주는 시연의 소개로 만난 &&중 3학년 도현과 처음으로 만나 밤 산책을 하는 중이었다.
“그럼, 선배는 좋아하는게 뭔데요?”
“…좋아하는거..?”
“음… 딱히 없어요.”
“거짓말-”
도현은 여주를 향해 피식 웃었다.
여주와 도현은 생각보다 잘 되는중이었다.
“이제 집 다왔네. 들어가요 선배.”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에이, 아니에요.”
“내일도 볼 수 있으면 봬요.”
“아, 네ㅎㅎ“
”말은 언제 놓을거예요?“
”내가 먼저 놓을까 그냥?“
“어….음….ㅎㅎ”
“뭐야ㅋㅋ”

”귀엽네요. 당황하는 거.“
”아, 빨리 집이나 들어ㄱ……“
”임여주.“
누군가 뒤에서 여주를 부르는 목소리에 여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최연준이 있었다.
여주는 당황스러웠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무시하고 도현에게 인사를 했다.
”..조심히 가세요.“
”네, 이따 디엠할게요.“
”꼭 답장 해줘요 선배.“
”ㅎㅎ네..“
”나 할 얘기 있는데.“
”잠깐 얘기좀 하자.“
도현을 집에 돌려보내고, 혼자였던 여주는 연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할 얘기?”
”뭐 변명? 아니면 눈물로 호소라도 하게?”
“쟤야?”
“너랑 요즘 잘 된다는 새끼가?”
연준은 여주에게 다가오려 했다.
“오지 마. 담배 냄새 나니까.“
여주는 의도치않게 연준에게 상처를 줬다.
”변명 할 생각 없고, 눈물로 호소 할 생각도 없고.“
”아무런 과장 없이 얘기할건데. 들을래?“
”아니? 안 들을래.“
여주의 눈빛은 차가웠다.
”내가 너같은 애들 몇 명 만나봐서 아는데.“
”그 중에서 정상적인 새끼 본 적 없어.“
연준은 마른 세수를 했다.
“그럼 그 새낀 정상적이야?”
“너보단.”
“나랑 헤어지고 그 새끼로 갈아타니까 좋은가봐.”
“갈아타긴 뭘 갈아 타.”
”그냥 어쩌다 만난…“
“넌 도대체 남자가 몇 명이냐?”
“뭐라고ㅋㅋ?”
“아니, 안 그래?”
“엄친아라는 선도부 선배에, 이젠 옆학교 중학생에. 나까지?“
”권력있네. 어장관리도 잘 하고.“
”너 미쳤냐?“
”하…”
”그만 가 봐.“
”피곤해.”
연준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새끼랑은 잘 있었으면서, 나 보니까 피곤해?“
”어. 존나 피곤해.“
”그니까 좀 가.“
”왜 그렇게 긁혔어.“
”어장관리 한다는 거 진짜 같잖아.“
”야, 최연준.“
”이제 다음 남자는 또 누군데?“
”연상 연하 동갑 다 있네.“
”야. 너 적당히 해.“
“그 새끼랑 화기애애 하더만, 나랑 있을 때 표정 갭차이가 너무 심한거 아니야?“
”너 왜 그러는건데?“
”아니, 나 빡치게 하려고 작정을 하네 아주?“
“이게 할 말이야?”
“아니? 네가 할 말 안 듣고 싶다며.”
“왜? 듣고싶어?”
“….”
”아니다 됐다. 그만하자 그냥.“
“너랑 사귀었던 내가 너무 한심하다.“
“너도 가 이제.”
여주는 왼쪽 약지에 끼고있던 커플링을 바닥에 던졌다.
연준은 그 모습을 보곤 화난듯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석 나가게 하네.“
”안 가?“
”내가 갈게 그럼.“
”야.“
“나 얘기 다 안 끝났는데.”
“별로 안 듣고 싶어.”
연준은 가려던 여주를 붙잡았다.
”하… 최연준 좀.“
“나 좀 냅둬 제발…“
”얘긴 다 끝내야지.“
”너랑 얘기하려고 온 건데.“
”하..ㅋㅋ“
"야."
”갑자기 그렇게 오면 내가 반가워 할 줄 알았어?“
”뭐?“
”반가워하는 내 모습을 기대했다면 진작 왔어야지.”
“나 많이 참고 많이 기다렸어.”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연락 오겠지, 나한테 말도 못 할 정도로 바쁠거야, 얘도 많이 힘들 거야, 내일 쯤이면 연락 줄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지냈어 난.”
“근데 너는?”
“…”
”너한테 나는 뭐야 도대체….?“
”임여주.“
”그냥 가 제발.“
”나 더 상처받기 싫어.“
”여주야.“
”이제와서 역겹게 하지말고 가라고 제발!!“
여주는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다.
“역겨워…?”
“어, 역겨워. 존나.”
“..그래.”
“알겠어.”
”고마웠다 지금까지.“
”잘 지내.“
연준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야, 근데.”
연준은 여주의 말에 발걸음을 멈췄다.
“이건 알아둬.”
“아까도 말했듯이, 나 진짜 많이 참았어.”
연준은 뒤를 돌아 여주를 보았다.
“조심히 가.”
여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여주는 시연과 함께 등교중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연준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래서 걔랑 산책하는데.. 우리집 데려다줬거든?"
"ㅇㅇ."
"근데 누가 내이름을 부르는거야. 그래서 뒤돌았는데."
"최연준이 있는거야..."
"ㅁㅊ 그래서??"
"그 자리에서 엄청 싸웠어."
"서도현 앞에서?!"
"아이, 미쳤냐. 걔 보내고 나서."
"그래서? 화해는 했고?"
"화해는 개뿔, 아예 헤어졌어."
"뭐라고?!"
"뭐 그렇게 놀래."
"이미 알고 있었잖아."
"너 최연준 얘기 안 들어봤어?"
"안 봐도 비디오지."
"구라칠 거 뻔히 아는데."
"그래서 그냥 내가 하고싶은 말 다 하고 보냈어."
"그래도 후련하네 한편으론-"
연준의 상황을 알던 시연은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너... 진짜 최연준 연락 왜 안됐었는지 몰라..?"
"모른다니까. 알고싶지도 않어."
"아니, 들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왜 섣부르게 판단해?!"
"뭔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왜 사람 말도 안 들어보고...! 니 말만 하냐고!!"
"너 왜그래. 무슨 일 있어?"
"하..."
"최연준이 너한테 말 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뭐를?"
"....."
"최연준 할머니 돌아가셔서 빚 갚으려고 알바하느라 학교 빠진거래."
"핸드폰도 중고로 팔았고."
그 말을 들은 여주는 표정과 몸이 굳었다.
"쪽팔리다고 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그랬어."
"걔 지금 집안 상태 엉망이야."
"하루하루 빚쟁이들한테 시달리고, 밥도 하루에 한 끼 먹을까 말까고, 빚쟁이 그 개새끼들은 다음 달 까지 5000 안 갚으면 부모님 계신 곳 까지 가서 난동 부린댄다."
"걔 가뜩이나 옆에 기댈 사람 너밖에 없었는데, 왜 너까지 걔한테 상처를 줘 왜!"
"야... 이시연."
"너 지금 거짓말 하는거지....?"
"잠수 타고 너한테 연락 일절 없었던 건 걔가 잘못한 게 맞아. 근데...."
"변명에 구라라고 생각했어도 얘기는 좀 들어봤어야지..."
여주는 목소리가 떨렸다.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너 지금 최연준이랑 짜고치는거잖아..."
"하... 상황이 점점 꼬이네."
"...나 어떡해..."
"...내가 어제 연준이한테 무슨 말을 했는데..."
여주는 어제의 일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