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자.“
”같이 가면 두려울 게 뭐 있어.“
"….."
”진짜 같이 갈거야?“
”응, 그러니까 일어나 얼른.“
“임여주 너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안 갈거야 그래서?”
“….하..”
연준과 여주는 옷을 갈아입은 뒤 함께 택시에 탔다.
여주는 조금 후회스러웠다.
‘미친, 나 진짜 개취했나.’
’최연준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한거야..’
택시 안의 기류는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고마워.“
그런데, 연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주는 그 말을 듣고 연준을 쳐다보았다.
”…뭐가..?“
”장례식장 같이 가줘서.“
"…"
”솔직히 좀 무서웠어. 할머니 얼굴 보기가.“
”…왜 무서운데..?“
”죄송해서.“
”할머니한테 너무 죄송해서.“
”그리고 쪽팔려서.“
“…”
연준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아무 말이나 한 거겠지만 오히려 그 말이 상황을 더욱 어색하게 만들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저 그 강xx님 뵈러 왔는데..“
”저 쪽으로 가세요.“
그 곳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이 썰렁했다.
환히 웃고 계시는 할머니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절을 마치고서 여주는 연준을 쳐다보았다.
연준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아니, 억지로 눈물을 참는 것 처럼 보였다.
”…연준아.“
”연준이니?“
여주가 연준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어떤 여자가 뒤에서 연준을 불렀다.
여주와 연준은 그 여자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뒤를 돌자, 4~50대 처럼 보이는 부부가 나란히 서 있었다.
여주는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연준의 부모님이라는 것을.
연준은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술 때문인지, 아니면 피곤해서인지 그 때의 기억은 몽롱했다.
연준의 어머니가 연준을 끌어안으셨던 것 같고,
연준은 그런 어머니의 품 속에서 하염없이 울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기처럼.
그러고서는 연준의 부모님도 할머니의 사진을 쳐다보며 연준과 함께 우셨다.
여주는 가족끼리 시간을 갖도록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약 15분정도 지났을까, 연준은 부모님과 함께 밖으로 나왔고, 연준은 밖에 있던 여주를 발견했다.
“임여주 여기 있었네.”
“아…어.”
여주는 연준의 부모님과 눈이 마주쳤다.
“아,안녕하세요. 저 그 연준이 친구…예요..ㅎㅎ”
이런 상황에 통성명을 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러나 연준의 부모님은 그런 여주를 밝게 마주해주셨다.
“그래ㅎㅎ 연준이랑 같이 와 줘서 고마워.”
“여주..라고 했지?
연준이좀 잘 부탁할게.”
“아, 네..!”
연준과 여주는 다시 택시를 타기위해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밥 안 먹어도 돼?”
“응, 배불러.”
“알바하느라 힘들었을거고, 울어서 배도 고플텐데 뭐라도 좀 먹지.”
“괜찮아.”
"…"
”그럼 잠깐만 여기 있어.“
여주는 잠시 편의점에 들려서 우유와 빵을 샀다.
“나 안 먹어도 된다니까.”
“너 먹어.”
“한 입만 먹어 그래도.”
“…아니 괜찮아..”
“빨리 안 먹어?”
연준은 여주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주면 먹을거면서.”
약 10분정도가 지나고, 택시에 탔다.
연준은 문에 기대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힘들어 보이는 연준의 얼굴에 여주까지 덩달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주는 연준의 손을 잡아주며 말을 꺼냈다.
“좋은 곳 가셨을거야.”
연준은 창 밖을 쳐다보며 있다가 여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진짜 그럴까?”
“그럼-”
“너가 많이 운거면, 좋은 분이셨다는건데.”
“좋은 사람은 꼭 좋은 곳에 가시게 돼있어.”
“…”
“당분간은 울어도 돼.
아니 평생 보고싶다 울어도 돼.”
“내 앞에서 울음 참지 말고 아까처럼 계속 울어.“
”…여주야.“
"필요하면 내 품도 빌려줄 수 있고 내 어깨도 빌려줄 수 있어.“
”그니까 괜히 센 척 하지 말라고..“
연준은 여주를 쳐다보며 눈물이 한 두방울 씩 흘러내렸다.
“아까 너가 어머니한테 안기면서 우는 거 보니까…
마음이 좀 이상했어.“
”내 앞에선 항상 웃고 나 지켜주는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님 앞에서는 무너지는 거 보니까, 확실히 아직 애구나, 아주 어린 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근데 당연히 그렇겠지.“
”내 앞에서는 멋있어보이고 싶었겠지..
…근데 연준아.”
“무너질 상황에는 무너지는 게 더 멋있는 것 같아"
“아까도 말 했듯이 그냥 울고싶을 땐 울었으면 좋겠어 네가.”
연준은 고개를 숙여 울었다. 계속.
”그리고, 할머니도…
잘 가셨을거고, 잘 계실거야.“
”돌아가셨다고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잠시 여행 가셨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잠시 곁에 안 계시는거야. 언젠가는 꼭 만날거야.“
”그리고 너 항상 지켜보고 계시니까 나쁜 짓 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
여주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담배도 끊고…“
연준은 눈물을 흘리며 여주를 쳐다보았다.
“나 담배 짱 싫어하는 거 알지?”
“이번 한 번만 봐준다.. 나도 술 마셨으니까..”
”말도 없이 사라져서 미안해.“
”됐어.“
”피곤할텐데 좀 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정작 여주는 연준보다 먼저 잠들었다.
눈을 떠보니 여주는 낯익은 곳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옆을 보니 최연준이 자고 있었다.
여주는 놀라 그 자리에서 즉시 일어났다.
연준도 여주의 뒤척임에 깨 여주와 눈이 마주쳤다.
“….나 지금… 너랑 한 침대 쓴거야…?”
“이 번이 처음도 아닌데 뭐 어때.”
“…니가 아주 미쳤구나.”
“택시에서 아주 곯아 떨어졌는데 뭐 어떡할까.”
“깨워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미쳤어… 진짜 미쳤어…”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너?”
“…별로 안 마셨어.”
“거짓말하네. 영수증 보니까 거의 열 잔은 시켰던데.”
“거기 중 3분의 2는 이시연이 먹었거든.”
“그리고 너 기다리느라 많이 마신거지.”
연준은 여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뭐..왜…오쪼라고….”
“사랑해"
“…어..?”
“나랑 오늘 장례식 같이 가줘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절대 못 갔을거야. 혼자.”
“…아니…뭐…”
“그리고 미안해.”
“말도 없이 잠수타고… 사라지고…”
“그것도 모자라서 너한테 막말한 거.”
“..치.”
“잘 아네.”
“그니까 서도현이랑 연락 끊어.”
“?!니가 서도현을 어떻게 알아..?”
“왜 몰라.”
“허,참…지,진짜 어이없어….”
연준은 여주를 쳐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고 갑자기 입을 맞추고 태연하게 방 밖을 나섰다.
여주는 당황스러웠다.
“ㅇ..야 최연준 너 진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