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화는 여주의 시점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최연준….최연준이다…’
‘여기를 어떻게 찾아왔지…?’
왜인지 이 때부터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내가 눈이 점점 감길때쯤, 최연준이 땀을 흘리며 달려와 내 앞에있던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남자와 점점 시비가 붙을 때쯤에는 경찰들이 달려와 그들을 제압했다.
나는 그 때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고, 그런 나에게 연준이가 다가와 내 몸을 감싸 안았었던 걸로 기억한다.
최연준이 나를 쳐다보며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안 들렸던 것 같다.
더 이상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연준이의 품에서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익숙한 향이 났다.
나는 연준이의 등에 엎혀있는 채로 어디론가 가고있었다.
연준이가 내 뒤척임을 느꼈는지 말을 걸었다.
“임여주.”
“너 괜찮아?”
"...."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버텨줘서 고마워"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다.
난 그 말에 하염없이 울었다.
내 머리는 끝도없이 복잡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울 수 밖에 없다.
연준이는 그런 나를 아무 말 없이 토닥여주었다.
우리 엄마가 사람을 죽였어.
우리 엄마는 살인자야.
우리 엄마 때문에 한 사람이 죽었어.
우리 엄마 때문에 한 사람이 자살했어.
우리 엄마 때문에.
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에.엄마 때문에.
.....
나 때문에…?
그렇게 연준이의 품에서 펑펑 울다 잠이 들었다.
그러다 깼는데, 왠지 낯이 익는 장소였다.
연준이의 방이다.
‘뭐야 언제 잠들었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잠이 점점 깰 때 벌컥 문이 열렸다.
“일어났어?”
연준이는 침대에 앉아있는 나에게 눈을 맞추며 웃어주었다.
“지금 몇시야?”
“나 좀 많이 잔 것 같은데.”
“3시밖에 안됐어.”
“곤히 자길래 깨우기도 그래서.”
“…아..”
연준이는 갑자기 내 손을 잡고선 이런 말을 했다.
“너무 늦게 갔지"
“미안해"
그러고서는 내 목을 어루어 만져주었다.
“또 다친덴 없어?”
아까 그 남자의 센 힘에 흉터가 생긴 것 같았다.
“아, 나 괜찮아..”
"..자기도 다쳤으면서."
연준이의 입술은 터져 피딱지가 났고, 주먹에도 상처가 난 게 보였다.
"난 괜찮아."
"거짓말-.."
“근데.. 너 어떻게 왔던거야?”
“너가 인스타 위치공유 켜놨나봐.”
“나한테 너 현재 위치가 보내졌어.”
“..그렇구나.”
“많이 무서웠지.”
“펑펑 울던데.”
“무서워서 운 거 아니야.”
“그럼?”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
“무슨 말이야?”
“…..“
"우리 엄마가 사람을 죽였어.“
내 말을 들은 연준이는 동공이 커졌다.
”그게 무슨..“
나는 정신이 거의 나간채로 연준이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건 살인이 아니잖아.”
“알아, 아는데…”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아…”
그 말을 들은 연준이는 나를 포옥 안아주었다.
"니 잘못 아니야."
"거짓말일수도 있고, 무언가 조작된 상황일수도 있어."
"나 빼고 남자는 아무도 믿지 마."
그와중에 내 기분을 풀어주려 애쓰는 연준이가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푸흐..."
"우리 아빠도?"
"...아버님 제외하고."
"오빠는?"
"매형도..."
최연준과 단둘이 이렇게 해맑게 웃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행복했다.
내가 만약 아까 죽었다면,
연준이가 10초, 아니 5초만 늦었다면,
이정혁과 이시연이 경찰을 부르지 않았다면,
그것도 모자라 내가 그냥 정신을 잃고 죽었다면, 이 상황은 있을 수 없었겠지.
"아까 차 안에서 전화한 것도 잘 했고,
정신 없었을텐데도 내 카톡에 답장한것도 잘 했고,
위치 공유 켜둔것도 잘 했고,
그냥 잘 살아있어준 것도 고마워"
"너 조금만 늦게 도착했어도 난 죽었을거야."
"점점 정신을 잃어가던 참에, 네가 나타나줬어."
"너무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이시연은 너 전화받고 거의 쓰러지듯이 울었고, 이정혁은 잠이나 자고 있고, 멘탈이 너무 터졌어."
"...."
"나 구해줘서 고마워..."
연준이는 그런 날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이시연이 나 많이 걱정하겠지..?"
"응, 전화 한 번 해봐."
"그래야겠다."
"잠깐 전화하고 올게."
"응."
사실 나는... 이시연한테 전화를 걸러 나온 것도 있지만,
엄마한테 먼저 전화를 걸고 싶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뭔 상황이냐고,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냐고.
묻고 따지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래도 이시연한테 먼저 걸어야겠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임여주 괜찮아?!"
"살아돌아온거야???"
-"ㅋㅋ보다시피."
-"야 이 미친년아!!"
"내가 너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앞으로 너 등교할 때 혼자 다니지 마 이 기지배야!!!"
-"나 괜찮아-"
"다친 곳도 없어."
-"하...진짜."
"지금 어딘데..?"
-"연준이네 집이야."
"학교 끝났구나, 올래?"
-"오지 말라해도 갈 거거든?!"
"가서 두고 봐-"
-"어야~"
전화기 너머 이정혁의 목소리도 들렸다.
'임여주냐', '걔 괜찮냐' 이런 말이 들렸는데, 평소 같았음 듣기 싫었을텐데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라 그런지 듣기 거북하지 않았다.
(으르렁....)
-"어 여주야~"
"웬일이래, 먼저 전화를 다 걸고ㅎㅎ"
느긋하고 감미로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
"시,식사는 하셨어요?"
-"그럼~"
"여주는?"
"학교 잘 다녀왔고?"
"연준이랑은 아직 잘 사귀지?ㅎㅎ"
-"엄마.."
-"응?"
"무슨 일 있어?"
"여주 너 또 용돈 떨어졌구나."
-"왜그랬어요?"
-"..."
"응?"
"뭐가..~?"
-"왜,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
"왜 나한테 말을 안 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어요 왜.."
-"여주야."
"왜 그래, 너 무슨 일 있니..?"
"엄마가 무슨 말을 안 했다는거야?"
-"엄마 때문에 죽은거잖아!!"
"엄마가...엄마가 그 회사 부장님을 죽인거잖아!!"
난 어렸을 때부터 항상 엄마의 말을 잘 따르며 엄마와 갈등이 생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소리지른 적도 또한 처음이다.
엄마에게 말을 할수록 점점 더 흥분이 됐다.
그러면 안 됐는데-
-"여주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야..?"
"너가 그걸 어떻게..."
-"왜그랬어 왜!!!"
"엄마 때문에 나도 다치고 연준이도 다쳤잖아!!!"
"왜, 왜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여서 그 사람한테 돈을 빌려줘요..?!!"
내가 밖에서 소리지르고 악 쓰는걸 들었는지, 연준이가 방 밖으로 나와 나를 말렸다.
"여주야 진정해."
-"엄마 또 오빠한테는 알려줬지."
"또 나한테만 안 알려준거지?"
-"...."
"미안해 여주야."
-"왜 나한테만 안 알려줘요?"
-"너는 아직 어려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이 상황은 이미 몇 달 전에 법원에서 판결 내렸고, 너는 이걸로 이 상황에 아무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사람이 죽었는데...?"
"엄마 때문에 사람이 죽었는데?!"
-"..."
"엄마가 너한테 말 안한 건 미안해."
"근데 그런거에는 이유가 다 있는거야."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야!!"
"나한테만 말 안해주고, 꼭 안 좋은 방법으로 알게 돼."
"엄마 때문에 여러명의 사람이 피해를 봤잖아!!!"
연준이는 그때, 전화하고 있던 내 폰을 가로챘다.
-"아,안녕하세요 어머님-"
"저 연준이예요."
"여주가 지금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아서..."
"너 지금 뭐하는거야?"
"내 폰 내놔!"
-"금방 다시 연락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너 지금 뭐해?"
"엄마랑 얘기중이잖아."
"어머님께 말버릇이 그게 뭐야 여주야?"
"지켜야 할 예의는 지켜야지."
"...."
너무 화가났다.
연준이는 내 편 들어줄 줄 알았는데.
그 때 타이밍 맞게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다.
"야 문 빨리 열어!"
시연인 것 같았다.
연준이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이시연이 잽싸게 달려들어 나를 잡아챘다.
"임여주 미친 기지배야!!"
"너 괜찮아?"
"다친 데는 없는거지?"
"아 없다고-"
"이거 미친거 아냐."
"야 누가 납치를 했음 ㅈㄴ크게 소리 질렀어야지!"
"걔네들이 눈이랑 입 다막았는데 소리를 어떻게 지를까, 응?"
"이제 좀 떨어져, 징그러워;"
방금까지만 해도 화가 나 소리질렀지만, 이시연이 왔다는 것에 단 한순간에 태도와 기분이 바뀌는 내가 한심했다.
간만에 넷이서 모여서 밥을 먹는데, 연준이랑은 아까 이후 좀 어색해졌지만, 그냥 이렇게 넷이 있는 거 만으로도 좋았다.
"야 최연준, 너 폰에서 알람 ㅈㄴ와."
"ㄹㅇ 확인 좀 해."
연준이는 그제서야 폰을 켜서 확인을 했다.


“왜 누군데.”
“아, 아니야 그냥 배구부 단톡.”
“너 또 연습 빠졌다고 지랄하지?”
“그런 거 아니거든ㅋㅋ”
“맞네.”
“여친이 납치당해서 구하러 가다 빠졌어요~ 해라.”
“퍽이나 믿겠다.”
나는 왠지 죄책감이 느껴졌다.
현재 시간으로 약 1주일 정도 밖에 남지 않은 그 대회는,
연준이가 꼭 이기고 싶어 저번 달부터 열심히 연습 했던 그 대횐데.
나 때문에 자꾸 연습을 못 한다.
또 나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