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의 반응식은 아직 미완성

03

종강이다. 드디어 종강이다. 내 서사는 짧으면서 굵다. 1학년 2학년 올라갈 때까지 난 결국 우리과에선 몇 명 안 되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그 중 하나는 나랑 정말 잘 지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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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종강이네, 참 지X 맞은 한 해였다. 이여주“

실험 과목을 함께 하면서 친해진 동기이다. 어쩌다 실험 방법을 물은 인간이 이 인간이였는데 3학년 종강이 찾아오기까지 무슨 일이든 내 편만 들어주는 친구였다.

”김조연 만약에 내가 여기 졸업하고 학부연구생도 교수님께 잘리면 말이야..나 뭐 해먹고 살아야할까“

조연은 내 말에 헛웃음을 치고는 오징어다리를 하나 뜯어 물었다. 그러고는 비아냥거리며 내 머리를 한 번 쥐어박듯 꾸짖었다.

”내가 보기에 넌 안 망해. 절대 안 망해“

”어떻게 확신해 그걸“

”확신 못 할 건 뭐야? 너 또또 그 석진 선배한테 깨져서 그래? 아니 그 양반은 얼굴만 반반하면 되나..지 여친이나 신경 쓰지..안타까워..안타까워 진짜!“

조연은 자기일 마냥 내 일에도 쉽고 크게 소리쳐주었다. 막상 사람 앞에선 입도 못 여는 나 대신 조연은 항상 어떤 일 이든 진심을 다해 날 보호해주었다. 그런 조연이 난 정말 큰 나무같았다.

”너 종강하면 본가로 가? 아님 자취방?“

”본가가서 알바 계속 해야지, 넌 연구생 출근?“

”응..종강인데..종강이 아니야..그것들 꽁냥거리는 거 또 앞에서 봐야해..나 너 없이 어떡해..흐잉..“

우리의 마지막 종강파티는 남자 이야기, 전 연애 이야기, 다른 동기 이야기로 가득했지만 항상 하던 농담만 나와도 코웃음치며 크게 웃었다. 그렇게도 따뜻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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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사무실 문을 열고 기어이 출근을 하고 말았다. 옆에 다른 랩실 교수님은 학부연구생한테 80만원 준다는데 우리 교수님은 60만원만으로 우리를 키우신다. (확 옆 교수님으로 튀어버려?)

“어 여주야, 원심분리기 사용법 정리해서 좀 보내줘. 사용법 프린트해서 옆에 두게”

“네”

오늘따라 사무실 분위기가 삭막하다. 아침 일찍 오지않던 석진선배님께서 자리에 엎드려있다 내가 오니까 벌떡 일어나 일을 주신다. 원래 이렇게 아침부터 반기던 사람은 아니였는데..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하다.

나노랩실 단톡방(4명)

석진
“5분 후에 랩실 청소 시작할게요.”
                           10시 25분

월요일마다 10:30분이면 청소를 한다. 리모델링을 한 후로는 청결을 유지해야한다나 뭐라나..난 아직 깨지 않은 정신을 이끌고 실험실로 향했다. 

끼익-
실험실 문을 여니 석진이 실험대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시간을 보니 아직 3분 정도 남아있어 난 아까 주탁 받았던 원심분리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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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새로 들어온 원심분리기라 우리가 썼던 거랑은 좀 달라. 좀 확인해보고 작성해줘”
“아 넵”

그 말 끝으로 어색한 정적만 돌았다. 다시 문이 열리더니 나머지 동기들이 들어왔다. 수지의 얼굴은 감기가 걸린건지
안색이 많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난 장갑을 끼고 청소기를 꺼내 코드를 뽑고는 전원을 켰다. 

“이쪽 먼저 청소기 돌릴게요.”

청소기 소리 너머로 아까보다 더 무거운 공기가 가득찼다.

“아 뭐야 뭐지? 왜 공기가 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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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누가 너보고 갑자기 뭐 닮았다고 하면 그거 플러팅이지? 맞지?”

별 말도 없던 얘가 갑자기 내게 플러팅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난 어리둥절 하며 청소기를 끄고는 입을 열었다.

“뭐..예를 들면? 뭘 닮았다고 하는데?”

“강아지 닮았다던가 고양이 닮았다던가 그런거”

“굳이 관심 없는 사람한테 안 그럴 거 같은데..?”

이런 시덥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청소는 금방 끝났다. 난 청소기를 끄고 물걸레를 찾아 물걸레질을 하는데 랩실에서 꽤 친한 오빠 하나가 다른 방에 있는 걸 보곤 장난끼가 발동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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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오빠 오빠! 나랑 싸울래? 내가 이길 것 같아! 오빠 나랑 싸우자. 덤벼.”

난 복싱흉내를 내며 오빠 쪽으로 다가갔다. 근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데 그 공간엔 오빠 하나만 있는게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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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쟤 방금 뭐 한거야?”

난 금새 얼굴을 돌려 코너쪽으로 몸을 옮겼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지만 난 민망함과 쪽팔림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난 재빨리 청소를 끝내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어느덧 시간은 점심시간이였다. 난 밀린 과제를 끝내고 금방 밖으로 나가 붕어빵 4개를 사고 들어왔다.

드르륵-

적막한 사무실 안은 아무도 없음을 직감하고 난 콧노래를 부르며 자리에 앉았다. 난 내가 하는 실험에 관한 논문을 찾으며 한 입 한 입 붕어빵을 입에 넣었다. 그때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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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혼자 먹으니까 맛있냐?”

석진과 눈이 마주쳤고 난 머쩍은 웃음을 짓으며 다시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아 네..근데 왜 점심 안 드세요?”

“입 맛 없네. 논문은 잘 찾고 있어?”

“어떤 사이트를 들어가도 제가하는 실험에 관한 거 눈코빼기도 안 보여요..지피티랑 그냥 말 싸움 중이예요”

“잠깐, 그런거 이 사이트 들어가면 논문 쉽게 찾을 수 있을거야.”

석진의 몸이 내 뒤로 감싸고 들어왔다. 난 순간 몸이 움츠려들어 입에 물고있던 붕어빵을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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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ㅓ? 아니아니 그냥 말로만 해주셔도 돼요..뭘 이렇게까지.. 여자친구도 있으신 분이..!”

“아..미안 별 뜻 없었어.”

석진의 표정이 굳어갔다. 내가 너무 심하게 쳐냈나 석진은 눈동자만 굴리며 멀리 떨어졌다.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저 궁금한 거 있는데..”

“뭔데?”

“그 오늘 기분 안 좋으세요..? 솔직히 아까 청소할 때 부터 눈치를 그냥..한 바가지로 먹어서..붕어빵도 잘 안들어가요..”

석진은 얕게 미소를 짓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티났나? 공과사를 못 지키는건 나였네.”

“왜요..? 뭔데요 아 궁금해요 빨리”

“나 헤어졌어. 어제”

순간 머리를 돌로 한대 맞은 듯 띵했다. 그 닭살돋는 커플이 헤어졌다니 한 편으론 속시원했지만 당장은 석진의 표정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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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그런걸 갑자기 막..어..?어 막 그렇게..응..”
”붕어빵..드실래요?“

석진은 참던 웃음이 터진건지 내 앞에서 크게 웃었다. 이게 뭐 대수냐며 내가 건넨 붕어빵을 잡더니 자신의 입에 한
입 베어물고는 수지에 관해 입을 열었다.


”수지 너무 미워하지 마, 쟤 겉은 저래도 착해“

”누가 누굴 미워해요. 전 사람 잘 안 미워해요.(당신 빼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석진의 표정은 그리움으로 가득한건지 아직 많이 허해보였다. 사람대 사람 일이라는게 그렇다. 길던 짧던 이별이 무뎌지는 일은 없다. 그 좋은 추억들을 그
많은 추억을 어디에 묻겠는가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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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담배 피러 나가자. 할 이야기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