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주님
w. 호비나무
01:동거의 시발점

"이번 학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망했어.."
날씨가 좋은 어느 봄날. 따뜻한 아침 햇살이 도로를 기분좋게 쬐이는 수요일 이였다. 더이상 소용이 없어진 요일과 밤낮, 개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슬슬 실감이 나는 방학의 사실. 한 것도 없고, 할 것도 없었던. 이전의 방학과는 비슷한 방학이었다. 불과 하루 전 까지만 해도 말이다.
화요일 12:53 개학 D-8
"으음.. 배고프다..."
12시 반이 지나서야 눈을 뜬 여주. 거실 창문을 굳세게 가린 암막커튼을 치고, 냄비에 물과 건더기, 스프를 붇는다. 오늘 아침은 라면- 자취 생활이 꽤나 익숙해 지긴 했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밥을 위해 하는 요리는 질색이다.
물이 끓을 동안 간단히 씻고, 그동안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 냄비에 면을 넣었다. 그와 동시, 베개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폰이 시끄럽게 울린다.
"여보세영-"
어, 왜 전화했어? 발신자는 마마. 여주의 엄마였다. 통화버튼을 누른 뒤 폰을 귀에 갖다대며, 다시 냄비 앞으로 향했다. 폰 너머로 여주의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언제 일어났어?
"방금 일어났지."
- 얘는.. 좀 빨리 빨리 일어나-
"잔소리 한다고 전화 한 거야?"
-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얼른 용건을 말하시지요."
조금씩 풀어지는 면을 젓가락으로 휘휘. 김이 모락모락 나며 보글보글 끓는 냄비 위에 뚜껑을 덮었다. 김이 차 뿌얘지는 뚜껑을 뒤로 하곤, - 너 자취 얼마나 했니?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나 이제 1년 정도?"
- 잘 하겠네?
"음.. 그.. 렇지."
- 그럼 신세 좀 지자.
"응? 무슨 신세?"
- 동거하는 거.
"동거..? 누구랑?"
- 그.. 너 같은 학교 애 있잖아.
"우리 학교에 학생이 몇 명인데.."
- 아니, 너 친한 애.
"친한 애? 예림이?"
- 아니아니,
정국이. 폰 넘어로 들려오는 이름에, 두 눈을 깜빡. 잘못들었나 싶어 스피커를 누르고 다시 묻는다. 누구, 누구라고?
- 정국이. 너 어릴 때부터 친했잖아-
"... ..."
- 정국이 부모님이 해외 나가서 몇 년동안 못 오신대. 그래서 이왕 혼자 있는 거면, 학교 근처에 사는 게 낫지 않나 해서 자취 알아보는데. 얘기 나누다 보니까 너 자취 집도 꽤 크고, 학교도 근처고.
친하기도 하잖아. 그래서 동거 얘기가 나왔지.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였다. 아니, 내가 누구랑 친해? 누구랑 동거를 해야 된다고? 벙찐 얼굴로 폰을 가만히 보던 여주가, 눈을 깜빡깜빡 거리더니 헤- 벌어진 입을 움직여 말한다.
"나, 나 전정국, 걔랑 아, 안 친한데..?"
- 그래? 그럼 같이 살면서 친해지면 되겠네.
"아니 엄ㅁ,"
- 정국이 부모님하고는 얘기 다 끝났는데, 일이 바빠서 너한테 연락하는 걸 까먹고 있었다. 이제 곧 오겠네.
"ㅁ, 뭐, 뭐가 온다고? 뭐?"
- 뭐긴 뭐겠어. 정국이지.
"아니, 아, 엄마!"
- 어후, 얘는.. 엄마 바빠. 방금 호출 돼서 끊어야 돼.
"아니,"
- 사랑하는 여주 끊을게~
뚝. 전화가 끊기며 폰은 조용해졌다. 끓어오르는 여주의 속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라면은 어느새 다 끓어져 퍼지는 중이였고, 이게 무슨 경우지? 아니.. 뭐?? 방금 나눈 대화가 무엇인지. 복잡하게 꼬여 들어가는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만큼 어려운 상황이였다. 그런 생각들 사이에 크게 자리잡는 한 단어.
"나 삼일째 머리 안 감았는데!!"
떡진 머리카락 속을 손가락으로 헤집고, 불을 끈 뒤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제발 늦게와라. 아니, 내일. 아니, 방학 끝나고 와라. 아냐 그냥 오지 마. 머리를 허겁지겁 감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생각은 전화의 내용이였다. 덕분에, 머리에 비벼지고 있는 것이 샴푸인지 린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띵동- 띵동- '
다행이도, 머리를 감는 와중에는 화장실의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다 감고, 드라이기로 대충 머리카락을 말린 뒤. 다 퍼져버린 냄비 속 라면을 눈물젖은 마음으로 싱크대에 흘려 보냈다. 아, 내 아침.. 꼬르륵 소리가 들리기 직전. 집 안에 퍼진 소리는 꼬르륵 소리가 아닌 초인종 소리였다.
"설마..."
"집에 없나."
"... ..."
띵동, 띵동. 한 번 더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어딘가 낯이 익은 중저음의 목소리. 저건 분명히, 전정국이다. 몸이 얼어붙어 어벙벙하게 서있던 여주가, 천천이 현관으로 향했다. 문 밖에선 여전히 정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리릭- 문이 열렸습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복도에 서서 여기 저기를 보고있던 정국의 시선이 여주에게로 향했다.

"... 안녕.."
"... ..."
".. 들어올래?"
"... ..."

- 인물 소개 -

전정국/ 18
여주와 동거를 하게 된, 방탄고 대표 일진놈.
소문이 안 좋고, 실제로도 안 좋다.
지민과 친하다.

김여주/ 18
정국에게 집을 내어준, 방탄고 대표 귀요미.
생활애교가 넘쳐흐른다. 전정국 앞에선 제외.
예림과 친하다.

박지민/ 18
여주를 귀여워하는, 방탄고 대표 잘생긴 오빠.
댄스 동아리 부장. 근데 춤보다 노래로 유명하다.
정국과 친하다.

김예림/ 18
자취에 대한 로망이 있는, 방탄고 대표 천사.
여주의 자취집을 좋아한다. 집 청소 도우미.
정국을 싫어한다.

김태형/ 23
여주의 친오빠. 방탄고 대표 미남 전적이 있다.
여주와 맨날 싸운다. 술 주량쪽으론 수석.
정국을 아낀다.
* * *
- 얘야?
- ... ...
- 여주야.
- .. 흐으...
- ... ...
- 너 욕 좀 쓰지 마.
- .. 응?
- 뭐.
- ... 아냐, 욕 줄일게...
- 응.
달콤, 아니. 화끈살벌한 이들의 동거,
지금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