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 나폴리탄 호텔
어딘가 익숙한 호텔 앞, 나는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내가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이 호텔을 향해 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긴 어디지?''
그렇게 정신을 차릴때쯤, 낯선 호텔에 도착했다.
사실 호텔이라고 했지만 호텔치고는 매우 작았다. 외관은 마치 유럽 중세시대 누군가의 저택과도 같았다.
나폴리탄 호텔,
그 기묘한 간판만 아니였어도 이곳이 호텔인줄 몰랐을것이다.
''내가 왜 도대체 이곳에 있는거야?''
나는 그 대문과도 같은 호텔앞에 멈춰서 말했다. 무심코 고개를 숙여보니 내 손엔 종이가 두 장 있었다.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모를 그 종이를 말이다.


''아, 나 여기 알바하러왔지.''
이제서야 기억이 났다.
나는 오늘 이 호텔의 호텔리어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보러왔다. 비록 3개월짜리 단기 알바였지만 수입은 꽤나 짭짤하기에 덜컥 지원했다.
''이렇게 1차 서류에서 붙을줄 몰랐지만 말이야...''
나는 다시 한 번 근무조건과 공고문을 찬찬히 읽었다. 무의식적으로 마치 몸이 기억하는것처럼, 무언가에 홀린듯이 말이다.
''도망칠까...''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
분명 이른 오후였지만 어째서인지 하늘은 어두웠다. 나폴리탄, 그 이름과 아주 걸맞는 그런 환경이었다.
나는 결국 문고리를 찾아 살살 내리쳤다.
콩- 콩-
민망할 정도로 매우 작은 소리가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이게 과연 소리가 들리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할때쯤,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열린 문으로 한 잘생긴 남자가 나왔다.
그 남자는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붉은 입술 때문인지 생기없어 보이진 않았다. 안경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분위기 때문인지 꽤나 똘똘해보였다. 날카로운 무쌍이 검은 뿔태안경과 조화를 이루는 그저 너드남의 정석이었다.
''들어오시지요.''
아, 그의 외모에 빠져 인사를 하는 것을 까먹었다.
''아... 안녕하세요...?''
뒤늦게 인사를 건냈지만 이미 많이 늦은 상태였다.

그를 따라 호텔 안으로 들어가보니 깜짝 놀랐다. 마치 판타지 세계에 온 듯한 그런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물건들은 낡아보이고 그것들이 모이니 기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제 이름은 전원우, 이곳의 지배인입니다. 부디 절 편하게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 잘부탁드립니다! 제 이름은...''
내 이름?
''쉿,''
전원우가 급하게 내 입을 막았다. 당황한 나는 그의 눈만 끔뻑끔뻑 바라만 볼뿐이었다. 사실 제일 황당한 부분은 내 이름을 잠시 까먹었다는 사실이다.
여주연
어떻게 그 이름을 까먹지?
''이곳에선 절대 당신의 이름을 말해선 안됩니다. 그리고 이걸...''
전원우는 내게 종이를 건냈다.
행동수칙이라 크게 적혀있던 종이는 마치 오래된 타자기로 작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타자기라니, 의아했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박물관에서 볼듯한 물건들을 보니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가면서 천천히 읽어보시죠.''
나는 그를 따라가며 행동수칙 1번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11번째 행동수칙은 읽을때쯤 그가 입을 열었다.

''위 행동수칙을 어기지 말아주세요.''
마지막 12번까지 읽자 나는 당황스러웠다. 11번과 12번은 서로 반대되는 상황인데, 그럼 난 무엇을 지켜야하는 것인가?
''도착했습니다.''
그에게 질문을 하려할때쯤, 100이라고 적혀있는 문앞에 도착했다.
벌써 시작되는건가? 난 아직 합격했다는 소리도 못듣고 왔는데? 근데 애초에 내가 면접보러 왔다는 소리를 했던가?
''축하드립니다. 당신은 이곳, 나폴리탄 호텔의 호텔리어로 근무하게 되실겁니다.''
''네...? 아직 면접을...''

''괜찮습니다. 당신이라면 잘 해낼겁니다.''
전원우는 확신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한치의 망설임없는 목소리로, 흔들림없는 눈동자로, 마치 오래된 진실을 말하는 이처럼.
''아, 혹시 포기하실 건가요?''
''아, 아닙니다!! 열심히하겠습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몇가지 주의사항을 이야기 하자면 노크가 2번이 울리고 문을 여세요. 밖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꼭 노크 2번 후에 문을 여십시오. 10시 이후에는 무슨일이 있어도 방밖에 나오시지 마세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전원우는 내게 키를 건내며 말했다.
''오늘은 이만 쉬십시오, 간단한 저녁거리를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호텔 매뉴얼은 내일 드릴테니 부디 아무것도 하지도, 건들지도 마세요. 당신을 위한 충고이자 당부입니다.''
''자, 잠시만요!!''
나는 다급히 그를 붙잡으며 물었다.
''제가 당신을 이름으로 불러도 되는건가요?''
''그럼요.''
''왜 당신은...''
이름을 말해도 되는건가요?
나는 뒷말을 삼키고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절 뭐라고 부르실건가요?''
''흠...''
그는 생각도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꽤나 진지한 얼굴로 고심했다.
''무엇이라 불러드리면 될까요?''
그때 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백영.''
그 이름이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꼭 이 이름으로 불려야할거 같다.
''백영... 좋은 이름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