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밤, 산책로 **
나는 생각이 많아져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플리가 들려준 녹음 속엔
해리의 자백이 들리긴 하지만,
먹먹하게 들려 해리라고 하기엔 애매했다.
( ( ‘ 범인은 해리가 맞는데... ’ ) )
( ( ‘ 더 확실한 증거가 없나? ’ ) )
생각에 잠겨 걷다 보니
플리 집 앞까지 오고 말았다.
“아… 언제 여기까지...”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플리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나는 플리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불이 꺼진 방.
플리는 이미 잠든 것 같았다.
깨어있었다면
“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나는 괜히
눈앞 울타리를 툭툭 쳤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플리…?”
순간, 가로등 불빛 아래
낯익은 뒷모습이 스쳤다.
어깨선, 머리 모양…
분명 플리 같았다.
나는 반가움에 플리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고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다.
“뭐야, 김플리 어디 가는...”
그때 불현듯 봉구가 해준
이야기가 스쳐 지나갔다.
MT 때 플리와 비슷한 사람
이야기말이다.
그땐 그냥 장난으로 넘겼는데...
“설마…”
나는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어
그 사람을 뒤따라갔다.
잘 보이진 않지만,
체구가 작은 사람인 건 확실했다.
** 학교 뒤편 골목 **
“아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날쌘 건지,
내가 따라가는 걸 알았는지,
수상한 사람은 이리저리
화단, 골목으로 도망쳤다.
중간에 내가 놓치는 바람에
길을 좀 헤매긴 했지만,
이 골목으로 나간 건 확실했다.
“여긴... 공대...?”
빠져나온 골목 바로 앞에 보인 건
공대였다.
플리 연구실이 있는 건물이다.
나는 바로 연구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환한 창문.
플리는 늦게까지 연구실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수상한 자가 노리는 건
플리같았다.
나는 재빨리 연구실로
뛰어 올라갔다.
( ( ‘ 제발 제발 제발… ’ ) )
올라가며 빌었다.
플리에게 제발 아무 일 없기를
“플리야!!!!!”
거의 다 올라왔을 때,
쓰러진 플리와
그런 플리를 때리려는 검은색 후드를 봤다.
놀란 내가 플리를 크게 부르자,
검은 후드는 바로 도망갔다.
“야!!!! 정신 좀 차려봐…!”
플리를 끌어안고 소리쳤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119를 불렀다.
** 어느 병원, 응급실 **
뚜-뚜-뚜-
소독약 냄새,
기계 소리,
새하얀 천장
내가 깬 곳은 병원이었다.
“은호야…?”
내 부름에 엎드려 자던
은호는 벌떡 일어났다.
“뭐야? 너 언제 깼어?”
“너 괜찮아?”
충혈된 눈,
진해진 다크서클
은호는 한숨도 못 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응, 나 괜찮… 윽!”
몸속 어딘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숨이 턱 막혔다.
“조심해, 너 갈비뼈에 실금 갔어”
“내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
은호는
나를 조심히 눕혀주었다.
...
...
...
잠시 후, 나는 은호에게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플리야, 내 생각엔 그 사람...”
“해리야”
“뭐야, 어떻게 알았어?”
"얼굴 봤어?"
“응, 해리가 날 정면에서
계단으로 밀었거든”
“뭐??? 아주 당당하네???”
“하… 이 자식을 진짜;;”
나는 분노하는 은호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은호야, 진정해”
“이건 내가 해결해볼게”
“야, 그 몸으로 뭘 한다는 거야”
“게시판에 이어서 이젠 대놓고
널 다치게 하는데!!”
“안 되겠어 지금 당장 내가
녹음기 들고 경찰서…”
“은호야, 그것보다 더 확실한 게 필요해"
"나 부탁이 있어"
** 몇주 뒤, 플리의 병실 **
“누나!!”
병실에 누군가
우르르 들어왔다.
“봉구야!”
봉구와 내 멘티들이었다.
“누나, 괜찮아요?”
“으응 많이 나아졌어”
“곧 퇴원할 것 같아”
“다행이네요”
“은호형한테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쫑알거리는 밤비와
걱정해주는 멘티들에게 고마웠다.
“퇴원하면 선배가 밥 쏜다!!”
“와아아아아앙”
똑똑ㅡ
노크 소리에 바라본
병실 문밖에는
노아 오빠가 있었다.
봉구와 멘티들이
다소 심각해진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후다닥 자리를 비켜줬다.
“어쩌다 다친 거야?”
“몸은 좀 괜찮아?”
“괜찮아, 여긴 어떻게 왔어?”
“어쩌다 들었어…”
“늦게 올려서 미안해”
오빠는 사과와 함께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보여줬다.
내가 본 건
자신과 해리의 바람을
자백하는 게시물이었다.
그 게시물엔
오빠와 해리가 데이트하며
같이 찍은 사진,
이전에 올린 게시물의 여자가
내가 아닌 해리라는 증거,
둘이 주고받았던 연락,
마지막으로 오빠가 녹음한
해리의 자백까지
범인이 해리라는
증거들이 가득했다.
“아...”
나는 해리에 대해 통쾌함보다
쓸쓸함이 더 컸다.
직접 오빠와 해리가
주고받은 연락을 보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게시물의 댓글은 예상대로
오빠와 해리를 향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실은 게시물 보자마자
해리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았어"
"해리를 설득해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
"늦어서... 미안해"
지금 가슴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사고 때문인지, 사건 때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고개를 떨군 채 오빠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이렇게까지 할 이유 없잖아”
"이러면 내가 용서할 줄 알았어?"
예상과 다른 나의 반응에
오빠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용서 받으려고 한 거 아니야"
“그냥 사과...하고 싶었어”
“그 게시물도, 너를 아프게 한 것도”
“다 내 탓이니까”
“나는… 플리 너를 질투했어”
“처음엔 너랑 나,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좋았어, 많이 좋아했어.”
“그러다 난 군대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SNS를 볼 때마다..."
"밝게 웃는 너를 볼 때마다...”
“질투가 났어”
“난 군대에 갇혀있는데”
“그렇지 않은 너는 점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교수님께 더 인정받고”
“그런 네가 미웠고, 응원하지 못했어”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미안해”
오빠는 그동안 나에게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
난 울먹이는 오빠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빠는 감정이 진정됐는지
이어 말했다.
“나 유학 가 플리야”
“...뭐?”
“이거 진짜 주고 싶지 않았는데...”
오빠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사진 몇 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뭐야?”
“MT 때 너랑 도은호를 찍은 사진이야”
“물론 너를 찍으려다 걔까지 찍힌 거지만”
“플리야, 너... 도은호, 좋아하지?”
나는 오빠의 물음을 듣고,
사진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은호를 보는 내 표정,
은호와 같이 웃는 내 얼굴,
그리고 나를 보는 은호의 눈빛,
( ( ‘ 나 은호를 진짜 좋아하나...? ’ ) )
“네가 영원히 몰랐으면 좋겠다.”
“응? 뭐라고?”
“나 간다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
"오빠"
나는 뒤돌아선 오빠에게 말했다.
"나 고맙다는 말을 못해"
"그치만, 오빠도 잘 지내"
오빠는 살짝 돌아 쓴웃음을
짓고 병실을 나갔다.
그게 내가 본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플리의 병실 앞 **
나는 플리가 부탁한 일로
학교에 갔다가
곧장 병원으로 왔다.
병실에서 나오는 한노아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도은호, 나 방금 너 도와주고 오는 길이거든?”
“그러니까 인상 좀 풀지?”
“네가 날 뭘 도와주는데?”
“나중에 알고 고마워하지 마라?”
“근데 왜 너는 나한테 반말하냐?”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ㅎ 왜? 지금이라도 존대해드려요?”
“아오 됐다;;”
“괜히 도와줬네”
한노아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너한테도… 미안했다.”
“플리… 잘 부탁한다”
그러곤 툭툭 토닥이듯
두드리고는 가버렸다.
“뭐야… 재수 없어”
나는 병실 문을 벌컥 열고
플리에게 말했다.
“김플리! 한노아가 무슨 말 했어?!?!”
플리는 내가 들어가자마자
급하게 무언갈 숨기는 듯했다.
“뭐야! 뭐 숨기는데!”
“한노아가 준 거지!!! 나도 보여줘!!!”
플리는 끝끝내 뭘 숨겼는지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아 궁금해ㅠ
** 삼일 뒤 **
오늘은 내가 퇴원하는 날이다.
몇 주 동안 병원에만 갇혀 있어
뻐근했는데,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김플리, 짐 다 챙겼지?”
은호는 트렁크를 닫기 전
나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응! 집에 가자!”
아침부터 은호가
퇴원하는 나를 도와줬다.
입원 중에도 수업이 끝나면
곧장 병원으로 왔었다.
내가 먹고 싶다던 음식이랑
간식까지 사 들고
매일 매일 나를 보러왔다.
은호는 나의 지루한 병원 생활에
힘이 되어주었다.
“플리야”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적색 신호등 아래에서
은호는 나지막하게 나를 불렀다.
“응? 왜?”
“우리 집에서 지내는 거 어때?”
“…뭐?!?!”
💙💜🩷❤️🖤🤍
은호 : 우리 집으로 가자~🎶🎵
은호의 훅 들어온 플러팅 어떠셨나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민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