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형아, 오늘도 시간 안 되니? "
네가 바쁜 건 알아. 근데, 다른 의미로.
오늘도 너는 내 손을 뿌리치고 다른 여자에게 가겠지. 그리고 새벽에는 항상 술을 마시고 집앞에 찾아와 나를 덥석 안아. 근데, 난 너를 너무 좋아하는데 태형아. 너무나도 진하게 배어있는 그 향수냄새가 심장을 쿡쿡 찔러대서. 그래서 좋지가 않아.
왜 항상 나한테 이러는 건지. 결국 마음은 주지 않을거면서 새벽에는 매일 찾아오는 너였다. 처음에는 무슨 사정이 있으려니, 했지만 이제는 하도 자연스레 찾아오는 너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더럽게도 널 사랑하는 나였기에, ,,
아침이 되면 언제나 그랬듯 문자 한통이 와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어째서인지 써있지도 않은 '미안' 이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 그 문자를 보면 볼수록 살짝 열어둔 입술 사이에선 차마 담을 수 없는 욕짓거리가 흘러나온다. 이럴거면, 나한테 왜 그랬니.
너는 항상 이기적이었으며, 또한 매우 기분파였다. 제 마음에 쏙 들었던 여자가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은 날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또한 제 기분이 좋다 하면 평소에는 길에서 마주쳐도 아는체 하지 않던 네가 데이트를 하자며 나를 불러낸다. 하지만 이 바보같은 나는 너의 그 말에 헤헤, 바보같이 웃으며 나갈 준비를 한다. 다 준비를 끝내고 그에게 쪽박맞은 적이 몇번인지. 그래놓고서 좋다니, 나도 참 바보인 것 같다.
김태형은 사람은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제 기분이 안좋으면 그렇게 유지하고나 있을 것이지 . 남의 기분까지 썩은 듯이 만들어 버린다. 나는 네가 정말 밉다. 너와 관련된 일이면 전부 안좋은 결과를 초래한다. 네가 꼴도 보기 싫다. 정말이다.
" 정말? "
아니, 난 너없으면 살 수가 없어. 다 거짓말이야. 대체 어떤 힘으로 유혹한 건지 이제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너무 미운데도 미워할 수가 없어.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인지, 내가 전생에 무지막지한 죄를 지어 벌을 주기 위해 내려온 신인건지 . 그러니까, 나 한번만 바라봐줘. 나를 사랑해줘.
처음 네가 바람을 핀다는 것을 알았을 때엔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욱 충격이었던 것은, 나를 보았음에도 옆에 있던 여자의 손을 더 세게 붙들며 나를 향해 비소를 내었다는 것이다.
그것뿐이면 어찌 좋으리. 눈치 없이 여러번 울리는 휴대폰을 들어 보니 너를 클럽에서 봤다는 목격담이 수두룩 하고, 찍힌 사진에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허리춤을 붙들고 격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보기 싫었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감은 눈의 사이로 어렴풋이 그 상황이 상상이 갔다.
더러워, 진짜.
띠롱, 하고 알람이 울려 폰을 들었다. 박지민이라고 적힌 세 글자가 보이자 바보같게도 기분이 묘했다. 그와중에도 김태형이길 바랬던 걸까. 박지민은 내가 김태형을 만나기 전부터 친구였던, 말하자면 소꿉친구 였다. 내가 의심받고 모두에게 질타받을 때에도 내 곁에 항상 머물러줬던 친구. 박지민 같은 애를 만났어야 했는데. 왜 김태형을 만나게 된건지.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확인하자 너는 어떻게 안 건지 괜찮아? 라며 나를 위로한다. 새삼스레 그가 고마웠다. 1이 사라지고 나서도 답이 없자 내가 울고 있는걸 눈치 챘는지 술을 마시러 가자며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는 너는 그와 너무나 반대였다.
서둘러 외투를 챙겨 일어났다. 오늘 새벽에도 김태형이 찾아와 벨을 누르고 나를 찾겠지만, 오늘 저녁에는 내가 없을 예정이니까. 또 마음이 여려지기 전에 입술을 앙다물고 집을 나섰다.
슈가포차
여기가 지민이가 말했던 포장마차인가, 확실히 사람이 없기는 없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오고 나서 내가 울지도 모르니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고 전했다. 그러자 지민은 또 바보같이 응응 이라며 밝은 모습을 보여줬다. 착한 놈.
하도 우는데 질리지도 않을까. 이런 친구만 만날 수 있으면 어떻게든 잡아야 할텐데. 그런데도 너에게 마음이 가지 않는 건 내가 그자식의 늪에 푹 빠진 상태여서겠지.
눈앞에 갑자기 보이는 누군가의 손에 화들짝 놀라며 움찔하자 뒤늦게 정신차린 내 앞에는 피식 웃고있는 지민이 보였다. " 뭔생각을 하길래 이렇게 계속 불러도 몰라? " 라며 키득키득 웃는 지민에 미안이라 말하며 머쓱하게 뒷머리를 쓸었다.
내 분위기가 당최 풀어지려 하지 않자 너는 나를 응시했다. 또한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보니 또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함이 쏟아져나왔다. 코가 찡하더니 앞이 뿌옇게 흐려졌고, 이내 그걸 보는 넌 당황했더라.
" 복수해, 서여주. 나 더이상 너 그러는 꼴 못보겠어. "
이제, 걜 향한 마음좀 접어.
복수ㅡ... 복수라.... 내가, 할수는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