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_
:: 너
"..."(여주
"제발. 채린이는 이곳으로 돌아와야 해..."(은우
"그게 사실인 거야...?"(여주
"...응."(은우
"...그럼 채린이는..?"(여주
"현실 세계에서 너인척하고 있겠지."(은우
"..."(여주
이렇게 여유 부릴 시간 없어 지여주. 당신이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의 답을 찾았으니까. 이젠 모든 걸 돌려내. 은우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결국 너도 가짜였으니까. 날 향한 시선은. 내 말에 은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난 널 제일 의지했는데. 넌 채린이 때문에 나한테 접근한 거구나. 하지만 난 뭐라고 하지 못했다. 결코 나도 당당하진 못하니까. 채린이의 몸으로 채린인 척 애들에게 접근하고 친해졌다. 만약 내가 지여주였다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내 대답은 아니었다.
서러움이 벅차올랐다. 뒤돌아 교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석진아."(여주
"그럼 니가 한말이 사실이었어..? 네가 빙의했다는 거?"(석진
"...그래. 맞아. 나 빙의했어."(여주
"채린아."(석진
"그래서 외면할려고? 그래. 해. 그냥 아예 쓰레기 보는듯이 봐. 너희가 원래 나한테 그랬듯이!! 그냥!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ㄱ..."(여주
"..."(석진
"...너 뭐 하는 거야."(여주
"상관없어. 니가 가짜든. 진짜든. 결국 난..."

너의 손을 잡은 거니까. 난 절대 외면 안 해.
석진이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말을 끊고 날 끌어안은 그는 내 어깨 부근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들키지 않을 것만 같던 내 비밀을. 이젠 내 입으로 모두에게 들어낼 때가 된 거 같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애들을 내 기숙사로 불렀다. 그저 행복하게 웃고 있는 그들에게 비밀을 말하기엔 무섭고 두려웠다. 과연 애들도 석진이와 같은 반응일까.
"린아. 그래서, 무슨 일이야?"(지민
"...나 린이 아니야."(여주
"...응?"(지민
"난 너희가 좋아하고 아끼던 채린이가 아니야...속여서..미안해..."(여주
"...그게 무슨 소리야."(지민
"나 빙의했어.. 채린이 몸에."(여주
모두가 믿지 않는듯한 눈치였다. 아니. 믿고 싶지 않겠지. 자신들은 감쪽같이 속았으니까. 은우는 아까와 같은 설명을 해주었다. 서서히 한 명씩 얼굴이 굳어가고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들의 얼굴을 더 이상 보긴 힘들었다.
"그래서?"
"...?"(여주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여주
"네가 채린이인 척 안 했다면 우린 그 여우 같은 년한테 빌빌 길뻔했잖아."(태형
"내가...원망스럽지 않아?"(여주
"결국 내 마음을 열었던 건.. 너잖아 여주야."(태형
"...!"(여주

"결국엔 너니깐."
너니까 가능했던거야. 여주야.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왔다. 태형이는 그런 날 살며시 안아주었고 석진이는 내 등을 토닥여줬다. 다른 애들도 은은하게 웃으며 날 "채린"이 아닌 내 진짜 이름, "여주"라고 불러주었다.
숨길 이유도 없지. 한여름이 최종 보스인걸.
기다려 한여름.

"너희 뭐 하는 거야?"
마지막은 너니까.
57_
:: 도서관
"너희...어떻게 안거야..."(여름
"너야말로 그렇게 남자애 눈이 멀었니?"(여주
"뭣도 모르면 지껄이지 마 박채린!!"(여름
"나 채린이 아닌데."(여주
"..."(여름
"난 지여주라고 해. 현실 세계에서 넘어왔어."(여주

"...그년이 보냈지."
"너한테 말하기 싫고, 책 어디 있어."(여주
"...왜 결말이라도 바꾸게?"(여름
"뭐?"(여주
"그런데 어쩌지. 곧 재앙이 닥칠 텐데."(여름
"야!!!"(여주
"내가 멍청하게 그냥 왔을까 봐?"(여름
한여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략 5미터 옆으로 큰 돌이 떨어졌다. 돌괴물. 호그와트에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쿵쿵. 한 마리가 아니었다.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괴물들이 내려왔다.
한여름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곧바로 한여름을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괴물들이 먼저였다. 한 명씩 기숙사를 빠져나가고 한여름은 순간 이동 마법을 쓴 건지 보이지 않았다.
"지여주."(은우
"응."(여주
"...넌 소설책을 찾아. 그리고 결말을 바꿔."(은우
"그게 어디 있을 줄 알고...?"(여주
"기억해 봐. 너 처음으로 소설책을 발견한 곳이 어디야. 제목이 프랑스어로 써져있던 책 말이야!"(은우
"...도서관. 도서관이었어!"(여주

"가서 무조건 결말에 괴물들부터 없애. 그래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어."
"..."(여주
"얼른 가!"(은우
너희는 어쩌고. 퍽이나 절절한 목소리가 기숙사를 채웠다. 한 마리 처치하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어쩌려고. 갑작스러운 내 눈물에 놀란 건지 남준이는 빠르게 달려고 선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여주야."(남준
"끅..."(여주

"꼭 돌아올게. 우리 주인공들이라며."
그러니까 달려. 얼른. 남준의 말이 끝나고 일어나 달렸다. 등 뒤로 큰 소리가 들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애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 하나는 결말을 바꿔버리는 것.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도서관에 도착해 큰 문을 열었다. 득실득실한 괴물들. 한여름이 막아둔 거겠지. 살금살금 괴물들을 피해 도서관으로 들어갈 땐 가. 툭. 내 옆에 꽂혀있던 책이 떨어지고 모든 괴물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ㅈ됐네. 시발. 빠른 속도로 촉수들이 내 쪽으로 날아오고 눈을 질끈 감았지만,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빨리 가."
"...정국아."(여주
"얼른."(정국
"너...피.."(여주

"이 정돈 버틸 수 있어."
"..."(여주
"얼른, 여주야."(정국
"너 혼자...어쩌려고.."(여주

"혼자 아닌데."
"지민아!"(여주
"가. 여주야."(지민
"...너무,"(여주
"얼른!"(지민
달달 떨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고 다시 달렸다. 몇 번이고 들려오는 신음 소리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어느정도 달렸을까. 괴상한 소리와 동시에 무언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괴물들이 쓰러진 거겠지. 애들이 해낸 거겠지. 근데...
"...멈추지 마..여주야...."
툭...
어째서 느낌이 좋지 않은 걸까.
58_
:: 희생

"찾았다..."
"마지막...마지막 챕터..."(여주
"..."(여주
난 다급하게 마지막 페이지를 찢고 새로운 결말을 써 내려갔다. 괴물들은 손쉽게 처리됐다는 내용부터 한여름은 징계를 받고 나머지 주인공들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그런 뻔한 해피엔딩을. 마지막 마침표를 찍으려는 때. 누군가 날 세게 걷어찼다.
"안돼!! 이건 안돼...안된다고!!"(여름
"한여름!!"(여주
"외로워지기 싫어...또다시 외로워지긴 싫어.."(여름
"너만 행복하려고?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여주
"...내가? 이기적이라고?"(여름
이기적이던 건 박채린이잖아.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순식간에 한여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에도 난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너 때문에 지금 이 소설이 망가지고 있다고. 그러자 갑자기 배를 부여잡으며 키득거리는 한여름.
"애초에 시작은 박채린이었어."(여름
"개소리,"(여주
"날 먼저 외면했어."(여름
"..."(여주

"평생 나랑 같이 있어준다면서.
나보다 그 7명을 먼저 챙기고,
나와 있을 땐 그 7명 얘기밖에 안 했어.
그래서 궁금했어. 그 7명이 뭐길래. 날 매번 뒤로하는지."(여름
난 차라리 모두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럼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을 거야. 욕심. 한여름은 욕심 때문에 애들을 뺏은 거라고 은우한테도, 소설에서도 나와있었다. 근데 과연 그게 맞을까. 그냥 자신의 외로움을. 그 누구도 채우지 못해주던 빈자리가 싫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 해도, 이 방법은 틀렸다. 이대로 결말을 유지한다면 모두가 처참한 결말을 맞이할 거다. 책을 꼭 쥐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한여름에게 손을 내밀었다.
"니가 외로웠다고 한들, 이 방법은 아니야."(여주
"..."(여름
"..책 줘."(여주
"...싫어."(여름
"여름아...!"(여주
"싫어...싫어..싫어. 싫어!!! 그냥 다 싫어! 다 없어져 버려!!!"(여름
한여름에 지팡이에서부터 보랏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내 주위를 둘러쌌다. 저주다. 애타게 한여름의 이름을 외쳤지만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듯했다. 제발 여름아! 닥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정전이 된 듯 온몸이 저릿거렸고 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워프친덴리!!*"
*워프친덴리: 특정 인물과 자신의 위치를 뒤바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난 보라색 마법진에서 빠져나왔지만 익숙한 목소리의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심장이 멈췄다. 설마. 아니지. 아닐 거야.
"으으윽..."
"...안돼."
"여,주..."
"이 미친놈아!!!"
이 일이 뭐라고
내가 뭐라고
날 위해 희생하는 거야.
_
저 마지막 장면. 여주랑 자신의 위치를 바꿔서 대신 저주를 받는 사람 있죠? 걔가 이 글의 남주입니다.
아마 다다음화에 완결...

그리고 제일 중요한!
구독자 305명 너무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