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민여주,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성적도 딱 평균, 대인관계도 평균. 뭐든 평범한 나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 이름은 김석진. 소위 말하는 엄친아에 남여 상관없이 인기가 많다. 나와는 달리.
김석진은 내 첫사랑이였다. 모든 애들에게 친절한 김석진이였기에 나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줬다. 근데 김석진만 마주치면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빨리 뛰었다. 그게 내 첫사랑의 증거였다.
그날도 평범한 하루였다. 급식실에 먼저 가려고 전투를 치르던 중,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애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너무 놀라고 쪽팔려서 바로 일어나 아무 일 없단 듯이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내 무릎을 확인하니 피 범벅이 된 채 찢어져 있었고 다른 한 쪽 무릎에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나는 8반, 김석진은 7반. 쪽팔려서 보건실도 가지 못하는 상태에서 7반 애들이 우르르 급식실로 몰려갔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책상에 쳐박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 반도 급식실로 향했다. 무릎을 담요로 가린 채 급식을 받고 자리에 앉았는데 갑자기 김석진이 다가왔다. 너무 놀라서 또 넘어질 뻔 했다.
" ㅇ, 안... 녕? "
" 안녕, 너 민여주 맞지? "
" 아, 응. 맞아! "
" 아까 넘어진 것 같은데, 괜찮아? "
..... 와, 김석진이 괜찮냬... 인생 다 살았다 민여주.
" ㅇ, 어.... 아... 니? "
김석진이 갑자기 내가 허리에 두르고 있던 담요를 풀고는 말했다.
" 이게 뭐야... 예쁜 다리에 상처났네. "
" 아.... 고마워..! "
" 급식 먹고 보건실 가자, 8반 앞에서 기다릴게. "
...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쓰윽_ 돌려보니 김석진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나를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렇게 보니까 김석진 좋아하는 애들 엄청 많네. 하.... 내가 이 경쟁자들 속에서 김석진이랑 사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시선들을 피하려 급히 의자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피신했다. 화장실 제일 첫 칸으로 끌려가 듯 들어가 내 무릎을 확인하는데 밖에서 거슬리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 야야, 민여주 봄? "
" 봤지... 와, 민여주 그 여우년ㅋㅋ "
" 진짜 민여주 살인 마렵다. "
" 여우는 총으로 죽이는 게 나을까, 떨어트리는 게 나을까? "
" 패는 게 짱인 듯. "
" 와 아이디어 쩐다. "
.... 뭐야, 왜 다들 나 욕해? 나 잘 못한 거 없는데... 진짜 김석진 때문에 이게 뭐야. 짝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아무리 내가 짜증나고 미워도.... 그건 아니잖아...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나가버려야지.
" 헐 미친, 민여주다. "
" 쿨병 오지네- "
" 인정... 저년이 쿨병이라도 돌았나. "
김석진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모두 나에게 조준점을 맞춰논 채 단체로 쏘기라도 한 듯 날 향해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이 무서웠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 처럼 행동하는 애들 때문에 다리가 아려와서 더이상 서있기가 힘들었다.
" 쓰읍... 하.... "
결국 아까 김석진이 했던 말을 무시하고 내 발로 보건실에 찾아갔다. 다리가 저려오고 뒤늦게 몰려오는 따가움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지만 이제 더이상 김석진이랑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쉽게 변하는데, 내가 과연 김석진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걸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좋아하는 걸 외면하는 마음은 찢어진 무릎보다 더 아팠다. 분명 얼마전만에도 김석진을 떠올리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는데 이제는 심장이 아려온다.
보건실에 겨우겨우 몸을 이끌고 의자에 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났다. 보건쌤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 주셨지만 그냥 운동장에서 넘어졌다고 대충 둘러댔다. 또 김석진이랑 엮이기 싫어서. 무릎에 있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밴드와 붕대로 가려졌다. 오늘 하필 치마를 입어서. 그냥 내 인생이 이런가보다_ 생각하는 찰나에 아까 나를 욕하던 애들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저절로 깔아지는 눈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나이기 싫었다. 저 멀리 떨어져있는 포스트잇을 응시한 채 고개를 떨구고 오늘따라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걸었다. 포스트잇에 거의 다다를 쯤에 한숨 돌리려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주웠다.
김석진 좋아하는데 어떻게 고백하지.
라고 쓰여있었다. 김석진은 내 생각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다. 아까 내가 말 섞은 게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김석진의 인기를 실감했다. 그 자리에 서서 돌처럼 굳어있었다. 그냥 내가 이 애를 좋아하면 안 될것 같아서, 좋아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어서. 배는 고픈데 급식실에 가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5층에 있는 반을 꾸역꾸역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다다른 우리 반 앞에는 김석진이 서있었다.
" 어, 조금 늦게 왔네? "
"..... "
" 여주야? "
순간 김석진이 그 잘생긴 얼굴을 내 앞에 들이댔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 김석진 진짜 좋아하는 거 맞구나. 아까 심장이 아려왔다는 말을 취소하고 싶을 정도로 다시 심장이 쿵쾅댔다.
" 으응... 미안, 나 보건실 갔다왔어. "
" 그래? 힘들진 않았고? 다음부턴 나한테 말해, 같이 가자. "
" ...... 알겠어. "
솔직히 조금 망설였다.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들이대는데 망설인 나에게 실망했다. 내심 좋으면서 실제로 김석진이 내 앞에 있으니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바보 같았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실망도 더 클 걸 잘 알기에.
" 맞다 여주야, 나 번호 주라. "
" 번... 호? "
" 응, 번호. "
" 번호는 왜..? "
" 이따 연락하게! "
" 아... 응.. "
" 고마워, 이따 연락한다! "
김석진에게 번호를 따이고 다시 멀뚱멀뚱 서있는데 우리반 앞에 있는 스피커에서 종이 쳤다. 점심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걸 직감하고 급히 반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반에 들어가자마자 나를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눈초리들과 질문 세례들이 날 반겼다. 눈초리의 이유도 같을 것이고, 나를 향해 물어보는 질문들도 대부분 김석진에 대한 것이였다.
솔직히 대인관계를 신경 쓰는 나였기에 다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마침내 종례 시간이 찾아왔다. 원래도 기다리는 종례 시간이였지만 오늘만은 더욱이 간절했다. 종례가 끝나고 나는 베프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폰을 켰다. 폰을 키고는 곧바로 카톡에 들어가 연락을 하는 순간 카톡_ 하는 알람이 울렸다. 누구지 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알람이 다시 울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