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얘긴,끝이 아닐거야 다시 만나볼테니까[BL/찬백]

외전 1. 슬픔은 반복되지 않는다. (-2

열매가 두살이되고, 백현이가 스물 여덟, 내가 서른 하나일때다. 
열매가 걷다 못해 뛰어다니며 우당탕탕 천둥벌거숭이처럼 돌아다닐때. 
백현이는 멍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따금씩 두통이 왔고, 오른쪽 눈이 뻐근하다고도 헸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너는, 우리는 그저 육아에 지쳐 그런것이라며 눈가에 입맞췄고, 그 입맞춤에 행복해했다. 
따듯한 스팀수건을 눈 위에 올려주고, 열매를 내가 데리고 나가 백현이만의 시간을 만들었었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열매를 씻기러 들어갔을 때였다. 
열매를 수건에 돌돌말아 안방에서 로션을 발라주고, 내복까지 입혀 내보내자, 열매가 별안간 천장이 찢어질듯 울기시작했다. 
샐쭉이 웃으며 장난치던 아이가 처음으로 그런소리를 내며 울길래 나는 놀라 거실로 나갔고, 나도 아이처럼 울뻔했다. 
온몸으로 발작하며 쓰러진 백현이가 보였다. 
거품까지 물고 쓰러진 변백현을 보고, 그 다음엔 엄마곁에서 우는 열매를 보고. 
열매를 떼어내 품에 안고 변백현을 옆으로 돌려 눕혔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울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무서울정도로 침착했다. 침착해야했다. 









* * * 








"수막종입니다. 종양이 너무 많이 퍼졌고, 이미 시신경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수술은.. 안되는건가요."
"원하시면 가능은 합니다만, 머리를 열었을때 깨어나실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의사는 항상 최악을 말하지만, 이미 지금도 최악입니다. 열었을때 최최악이 되거나, 열지 않고 최최악이 되거나."
"그럼,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식물인간이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취 자체가 엄청난 도박입니다. 수술 중 사망하실 가능성이 거의 100이에요."
"살 확률은요."
"2퍼센트. 이것도 모든 치료와 시술을 받았을때의 확률이죠."
"만약 머리를 열면요?"
"1퍼센트가 채 되지 않습니다."










* * * 








"내새끼 누가 이렇게 울라그랬어. 엄마 속상하게."

열매의 젖은 뺨을 살살 닦아주며 품에 안은 백현이 열매의 등을 토닥이며 재웠다. 

"백현아."
"찬열아,"
"열매 줘. 내가 재울게."
"그럴래?"

열매를 넘겨준 백현이가 하얀 침대위에 누웠다. 

"나 뭐래? 죽을병이래?"

킥킥대며 웃은 백현이 눈을 감았다. 

"백현아. 치료받자."
"싫어."
"변백현."
"나 오래 못산대지?"
"응."
"바로 대답하네. 상처받게."
"그러니까 치료받자."
"그러니까 안받을래."
"백현아."
"남은 여생 즐겁게 보낼래. 여기 갇혀있기 싫어."
"니가 구십먹은 노인네야? 스물여덟이라는 애가 무슨 그딴소리를 해."
"구십먹은 노인네나 스물여덟먹은 변백현이나. 오래 못사는건 똑같네."
"변백현!"
"쉬- 열매 깰라."

베시시 웃은 백현이 내게 향해 손짓했다. 
여전히 눈은 감은채로.
예쁜 손을 잡고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치료받자. 너 저 어린애 두고 갈거야?"
"찬열아."

그 낮은 목소리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앞으로 매일밤이 무서울거야."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는건 아닐까. 이 밤이 내가 보는 마지막 밤이진 않을까."
"그러니까,"
"그래서 난 치료 안받을거야."

"하루종일 아프고 힘든 치료받으면, 더 살고싶지가 않을거같아. 난 내 밤들이 무섭지 않길바래. 오늘은 이걸해서, 내일 죽어도 괜찮아. 라는 생각으로 살거야. 그리고 죽을거야. 오늘 이거 하고싶었는데, 못했다. 아쉬워. 그러니까 내일은 살아야지. 내일 이거하고, 그 다음에 죽어야지. 하면서. 난 미련이 많아서 못죽어 찬열아. 난 아직 하고싶은게 많아. 나는 내가 미련이고, 박열매가 미련이고, 박찬열이 미련이야. 내 세상의 미련은 너라서, 나는 죽지 않아."

그 견고하고 단단한 다짐에 나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아무말을 해줄수 없었다. 가장 두렵고 무서운건 너일테니까. 
남겨진 내가 무서운건, 네가 없는 밤이. 네가 없는 낮이. 네가 없는 세상이. 너 하나 사라져서 달라질 모든게. 그것들이 나는 무서웠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너니까. 

"열매, 성 바꾸자. 변열매로. 내가 너한테 남겨주고싶은게 많아. 책은 너무 오래걸리잖아."
"그러자. 열매 성 바꾸자. 그리고 책도 써줘."
"책 쓸바엔 둘째를 만들겠다. 어때 찬열아. 둘째, 만들까? 이번엔 딸로. 어때. 너닮은 딸래미 너무 예쁘겠다. 그지?"

별것 아닌 얘기로 시시덕거리며 우리는 병원에서의 밤을 하루 내어줬다. 
둘이 손을 꼭 잡고, 자주 입맞추고, 간간히 열매를 쓰다듬으며. 
우리의 하루를 병원에서 내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