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온도

8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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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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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 이거 뭐야? 누가 올렸어!






하라가 나에게 보여준 사진은 어제 술 취해서 내가 지민 선배에게 입을 맞추는 사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카페에서 있었던 일들의 사진들도, 밤에 집에 들어갈 때 선배가 나를 업고 있던 사진들도 모두 떡하니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다.






━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하루 동안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정말 사귀는 거야?

━ 아니?! 아니, 이럴 때가 아니야.






나는 서둘러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화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전화할 곳은 단 한 곳. 아까 지민 선배가 찍어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선배!!

📞 깜짝이야. 뭐가 그리 급하실까.

📞 얼른 대전 봐봐요. 그렇게 한가롭게 있을 때가 아니라고요!

📞 대전? 잠시만. 여주야, 이거 뭐야···?

📞 누가 우리를 몰래 찍었나 봐요. 어떡해요?

📞 ...어떡하긴. 그냥 사귀어야지.

📞 네?!

📞 뭐 사진으로 다 저렇게 해놓고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한 눈초리 받을 거 같지 않아?

📞 그건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어요?

📞 너 초반에 나 좋아했지?

📞 그건 갑자기 왜···.

📞 좋아했어, 너. 지금은 좋아해?

📞 갑작스럽게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 아니라고는 안 하네. 그럼 나도 너 좋아하니까 그냥 사귀면 되겠네.

📞 네··· 네?! 선배가요?






놀랐다. 나는 매일 놀라는 거 같은데 정말 진심으로 놀랐다. 그동안 나만 속으로 좋아하고 있었는데 선배가 나에게 잘해주는 거 같기는 했지만 그게 좋아함의 표시였다니.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 눈치 그렇게 빠르면서 왜 나만 몰라. 나랑 사귀자, 박여주.

📞 좋아··· 좋아요!

📞 뭐야. 대답 엄청 빠르네.

📞 그래서 싫어요?

📞 좋다고. 나 수업 시작이다. 이따 보자, 내 여자친구.

📞 네···!






.






━ 뭐야, 뭔데!

━ 사귄다···. 이제 가짜 아니라 진짜로···.

━ 그렇지? 사귀는 거 맞지? 뭐야 언제부터인데. 빨리 어제 일어났던 일 말해봐.

━ 됐어.

━ 아, 왜. 알려줘.

“수업 시작한다.”

━ 교수님 오셨다. 가자.

━ 아, 박여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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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시가 끝나고 처음 보는 다른 무용과 여자 선배들이 갑자기 나를 다짜고짜 찾아왔다. 나는 영문을 모르니 당황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네가 박여주지?”

━ 누구···.

“따라와.”

━ 아니! 누구신데 그러···.

“박지민.”

━ ㄴ, 네?

“지금 안 따라오면 박지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지민 선배의 이름이 나오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여자들이라고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라갔는데 학교 뒤편에 들어서자 여자 선배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박지민하고 사귀는 거 진실이야?”

━ ···네?

“박지민하고 사귀냐고 너.”

━ ···네.

“헤어져.”

━ 그게 무슨···.

“나 박지민 좋아해. 그러니까 헤어져.”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본인이 좋아한다고 나보고 헤어지라니. 오늘 사귀었는데 헤어지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혔다.






━ ···싫어요.

“싫어?”

━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너 대학 생활 망하고 싶어서 그렇게 대드는 거야?”

━ 대드는 게 아니라 묻는 거예요.

“싫으면 박지민 다쳐. 그래도 싫어?”

“박지민 다치는 게 보고 싶은 건가?”






권력 하나면 뭐든지 포기해야 하는 이 세상.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작아지고, 포기해야 하는 이 세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방법이 없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다치는 건 죽어도 싫으니까.






━ ···헤어질게요.

“똑똑하네. 결정도 빠르고.”

“박지민 조금 있으면 여기로 올 거야. 다 듣고 있을 거니까 허튼짓할 생각 말고. 잘 말해.”

━ ···네.






그러고는 여자 선배들은 안 보이게 숨었다.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허무하게 연애가 끝이 나는 건가 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그래서 눈물이 흘렀다. 곧 지민 선배가 보였다. 난 서둘러 흐르던 눈물을 옷 소매로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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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여주야!






지민 선배가 멀리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나에게 빨리 뛰어왔다. 그런 지민 선배를 보니까 진짜 너무 슬펐는데 터지려는 울음을 겨우 꾸역꾸역 넣었다. 얼굴을 보니 진짜 미쳐버릴 거 같았다.






━ 안에서 보지. 왜 밖에서 보자고 했어? 네가 나 불렀다고 그러던데.

━ 선배···.

━ 응?

━ 우리···.

━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얼른 얘기해. 우리 갈 데 있어.

━ 우리··· 헤어져요···.










***

어쩌면 뻔한 스토리도 쓰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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